사도행전 강해 103) 위기의 상황에서 내린 결단
성경본문: 사도행전 25:1-12
1.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설교: 위기 상황에서 내린 결단
미국에 해피네스 존스(Happinesessce Jones)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두뇌가 명석했고, 특히 피아노에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16세의 나이에 텍사스 대학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손목을 다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손가락에 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음악의 자질을 주셨는데 손에 힘이 없으면 다리로 연주할 악기를 찾아야지~ 아~ 그렇다 오르간이 있지 않은가!"
해피네스는 오르간 페달을 공부하기 시작하여서 오르간니스트로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버트 슐러 목사가 목회하는 크리스탈 교회에 미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1백만달러의 파이프 오르간이 바쳐질 때, 이 해피네스 존스가 초청되어 연주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낙심하고 절망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해피네스 존스와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보니, 사도 바울이 주위의 모든 상황들이 전부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당당히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위기의 상황에서도 오로지 주님을 향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또한번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1.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유대 총독이었던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바울에 대한 문제를 곧장 처리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바울을 2년이나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합니다. 그가 유대 총독으로 오자 유대인들이 벨릭스 당시에 해결하지 못했던 바울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베스도에게 여러 가지로 간청도 하고 압력도 넣어서 어찌하든지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베스도가 부임하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바울의 재판에 관한 문제를 다시 제기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다른 계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갈 때에 그 노정에서 죽이려고 베스도에게 이러한 간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자신이 가이사랴로 내려 갈 것이며 이들도 함께 동행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바울이 후송될 때를 기다렸다가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이 되어버립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적하는 무리들의 계획을 흩으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가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떤 경우에도 항상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믿음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귀는 오늘도 이 유대인들과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끈질기게 계략을 세우고 함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마귀의 계획을 무산시키며 도우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믿고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해서도 안되고 절망해서 안됩니다.
하루는 A 지구에서 성업중이던 악마가 활동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B 지구로 옮기면서 평소 사용하던 갖가지 소장품과 장비들을 경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경매값은 절반가격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악마의 도구들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가장 높은 가격이 붙여져 있는 도구 앞에 걸음을 멈추곤 했습니다.
바로 그 도구는 ‘절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이것은 왜 이렇게 가격이 비싼가”
그러자 악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 절망이라는 도구로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을 넘어뜨렸고 온갖 해악을 끼쳤으며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 도구야말로 내가 가장 아끼고 애용하던 것이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절망! 이것은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면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하나님은 희망을 만들고 악마는 절망을 만듭니다. 그러기에 절망이 있는 곳에는 기대도 생명도 영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늘 붙어 있어서 빛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망의 안개 속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믿음과 소망의 빛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이러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9~12절입니다.
9.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며칠 후에 가이사랴에 내려간 베스도는 재판 자리에서 바울에게 묻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9절). 그러자 바울이 대답하기를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10절)고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무슨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6:32에 의하면,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바울)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뻔 하였다.”
만약 바울이 눈치가 있어서 정치적인 문제를 빨리 간파하였다면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아그립바 왕에 의해 놓임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 때문에 바울은 로마가 압송되어 가야 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스도를 통하여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상황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감사하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용하셔서 그분의 목적하신 것은 뜻을 이루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주시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까지도 복음을 위해 선으로 행복으로 승리로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왜 로마로 가야 하는지를 주님 편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 때문입니다. 즉 바울을 통해 로마에까지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단단하고 거대하고 이방신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가 바로 사도 바울의 자리인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도요,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도로 오직 바울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드리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독수리 새끼를 사로잡아 자기 집 닭장에 넣어서 키웠답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크면서도 날개를 펴서 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한 조류학자가 들렸는데 날지 않는 독수리를 보고서는 "그럴리가 없다. 분명히 독수리라면 날아오를 것이다"라고 말하며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사람은 독수리를 그 집 지붕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독수리는 여전히 날지 않고 비틀거리며 걸어서 지붕에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조류학자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이 독수리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독수리가 걸어서 내려오기 어려운 높은 바위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독수리는 거기에 앉아 자기의 눈 아래 보이는 넓은 천지를 여러번 둘러보더니 그 큰 날개를 활짝 펴고 날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고 먼 지평선 뒤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독수리의 날개짓은 높은 바위위에서만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독수리가 될 수 있는 위치는 닭장이 아니라 산꼭대기 높은 바위 끝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존재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험하고도 높은 바위위에 올려놓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기가 닥칠 때 그것이 우리를 더 멀리 더 넓은 곳으로 날아가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끄시는 주님!
우리가 오늘 주님의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위기의 상황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더 상황이 나빠지고 끝이 안보이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일이 우리 안에 영원히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 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주님의 백성으로 살게 해주심을 우리가 아오니, 그 은혜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계획대로 이끄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