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주일예배 20160925)

온누리선교 2016. 9. 24. 17:12

성경말씀: 요한일서 4: 7 ~12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설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사랑을 받으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말을 안해도, 아니 반대로 사랑한다 말을 한다해도, 사랑받고 있다면 그것만큼은 분명히 압니다. 하다못해 동물들도 주인이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압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강아지는 너무도 더러웠고 못생겼습니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던지 강아지는 굶주림에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아지 목에 달린 이름표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개를 붙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름표를 보았습니다. 그 개의 이름은 "밥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왕의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곧 경찰에 보고되었고 잘 보호되어 주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왕의 부처가 에딘버러 성에 휴가를 왔다가 이 개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는 왕궁으로 돌아갔고 무서운 숲속에서의 경험은 그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백 킬로나 멀리 떨어진 왕과 강아지를 연결시켜 준 것은 바로 이 이름표였던 것입니다. 그 이름표는 왕의 사랑을 받는다는 표시였습니다. 바로 왕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4장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을 두 번씩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8절 끝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임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사도라 불리는 요한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 받들 어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8절입니다.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헬라어에는 사랑을 나타내는 네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육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eros)가 있고, 친구들 사이에 나타나는 우정을 말하는 필레오(phileo)가 있습니다. 또한 가족 사이에 나타나는 혈통적인 사랑을 표시하는 스톨게(stolge)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agape)가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사랑 중에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등의 아가페적인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5:29-30, 6:24). 이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는 사람인 것을 알지 않고서는 이런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8절의 말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랑일까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의 400m 준결승전 때였습니다. 5번 라인에는 영국의 데릭 레드몬드(Derek Redmond) 선수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최고기록을 갈아치운 강력한 우승후보였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150m 지점에 이르렀을 때 데릭은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고통으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오른쪽 허벅지 뒷근육 힘줄이 끊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는 ‘4년 동안 준비하고 기대해온 경기를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며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절뚝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누군가 데릭을 향하여 뛰어왔습니다. 저지하는 진행요원에게 그가 소리쳤습니다.

저는 데릭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는데 보고만 있을 수 없어요.”라며 절뚝거리는 아들을 부축했습니다. 그는 데릭의 아버지인 짐 레드몬드였습니다. 그는 아들아, 우리 같이 레이스를 끝내자.”며 함께 뛰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65,000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중석 펜스를 넘어 경기장 안으로 뛰어와서 아들과 함께 경기를 완주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뛰어 이 세상에 뛰어 드셨습니다. 9~10절입니다.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관중석 펜스를 넘을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사랑. 고통 속에 있는 아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아버지의 사랑. 이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기꺼이 우리의 고통을 함께 하시려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한없는 고통을 당하시고 끝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로 인한 질병과 고통과 죽음까지 다 가져가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견디고 이겨내며 꿈꾸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으로 나타난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두 가지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원래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하나님을 계속 대적해 온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 보아도 참으로 엄청난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이 같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으시려고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는데 있습니다. 이 사랑은 너무나도 엄청난 사랑이기에 인간의 언어로 그 사랑의 표현을 할 만한 낱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이처럼'이란 말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1~12절입니다.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사랑할 줄 하는 사람은 사랑받을 줄도 압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사랑을 잘 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날마다 퍼주고 또 퍼주다보면, 사람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아 메마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날마다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넘치는 멈출 수 없는 사랑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부어주셔야 우리도 그 사랑을 모자라지 않고 많이 많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 박사는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 주간만 나의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처방이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그걸 실천하면 됩니다."

값비싼 약이나 까다로운 처방을 내릴 걸 기대하고 찾아온 많은 환자들은 대부분 이 싱거운 처방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을 따른 사람에게는 당장 특효가 나타났습니다. 이 환자들 중에 애들러 박사의 처방대로 남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했더니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세상을 향해 사랑의 부메랑을 날려보십시오. 그러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 당신의 마음속으로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기에 11절의 말씀 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 12절에 나오듯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말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이, 사랑의 축복이 우리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어려운데~’ ‘~ 너무 피곤한데 남 생각할 것이 어디있어?’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우리를 향해 엄청난 사랑을 넘치도록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꼭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럽다면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어느 부자가 롤스로이스로 사막을 횡단하는 모험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신이 그를 저버렸는지, 사막 한가운데서 차가 고장나 버려 완전히 못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어쩔 수 없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챙겨둔 무전기로 롤스로이스 측에 고장신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자 저~ 멀리 수펑선 너머에서 대형 헬기가 나타나더니 이 부자에게 번쩍번쩍한 새 롤스로이스 신차를 내려준 후, 고장난 차를 싣고 떠나버렸습니다.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그 엄청난 대응속도와 일처리에 감탄한 이 부자는 그대로 무사히 사막횡단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롤스로이스 측에서 아무런 연락이나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새 차를 헬기로 보내준 만큼 분명히 비싼 돈이 청구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의심스럽게 생각한 이 부자는 롤스로이스 측에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담당자는 그런 서비스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했던 그는 아니 분명히 내가 사막에서 여행할 때 차가 고장나서...” 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 담당자는 그의 말을 가로 막으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고객님, 저희 롤스로이스는 고장나지 않습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세계 최강의 명예와 자존심을 자랑하는 최고급 초호화 수제 자동차이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6천여 대만 생산해서 1천여 대밖에 팔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자동차 값부터도 수십억을 호가하는 비싼 가격이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매자의 신분이 자격 미달이면 팔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번 고객에게 판매된 차는 폐차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회사가 그렇게 자기네 명예를 걸고 끝까지 책임진답니다. 이러한 차로 불리는데, 오지에서 다른 자동차라면 몰라도 롤스로이스가 고장으로 뻗어 버린다는 것은 롤스로이스를 만든 회사의 경영 철학상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회사의 관점에서는 자기네 명예를 걸고라도 고장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걸 초월하여, 아예 애초에 고장이 나지도 않은 것처럼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당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죄지은 우리를 위해 보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다만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걸 깨끗이 잊어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까지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 개개인을 롤스로이스보다 훨씬 더 귀중한 인격체로, 아예 예수님의 형상으로 반드시 만드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은 꼭 우상숭배만은 아닙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도 역시 배반이며 교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신뢰한다면 그 사랑을 내 삶 속에서 실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늘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살펴주시고, 넘치는 사랑으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이웃과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