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로마서 강해 9) 마음의 할례 (수요예배 20161116)

온누리선교 2016. 11. 15. 21:11


  

성경본문: 로마서 2: 25~29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설교: 마음의 할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1:37-44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정결법과 같은 외적 규례는 잘 지켰지만, 마음의 정결을 지키는 데는 소홀했고, 진심을 담지 않은 구제로 내면의 탐욕을 가렸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정결이나 구제와 같은 선행도 내면의 부정을 감추거나 자신을 치장하는 외식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철저히 말씀에 비추어 내 속사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면의 어둠을 다 볼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사소한 부분까지 철저히 지키려고 애썼지만 율법의 정신인 공의와 사랑은 버렸습니다. 덜 중요한 것을 지키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쳤고, 형식에 치우치다가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위선은 겉만 꾸며놓은 무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특권을 누리고 존경받는 자리에 있지만 다 가식덩어리, 위선덩어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심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의 문제에 대해 본질은 모르고 엉뚱한 주위의 것들로 중요하다하면서 할례의 축복을 흩어버리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에 대해서, 이면적 유대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기만 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속으로 진실되게 믿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오늘 말씀 통하여 마음의 할례받는 축복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할례의 흔적을 지닌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율법을 행하는 삶이 없으면 그 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는데 그 할례라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표시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710절과 11절을 보면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할례는 남성의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이기에 그 흔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죽는 날까지 그 증표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언약의 증표를 다른 곳에 새기게 하셨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과시하고 다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팔뚝에 새겨놓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내 팔뚝 봐라하면 사람들은 속으로 그래 니 팔뚝 굵다그랬을 것입니다. 또한 다리에 새기게 하셨으면 한겨울에도 반바지 입고 다니며 내 다리 봐라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래 니 다리 굵다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증표를 은밀한 곳에 새겨 놓아 자랑할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할례를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들만이 받았다고 세상에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못합니다. 그 축복이 자기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내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로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답니다. 이 사람들은 장사꾼들로, 광주리에는 과일과 채소가 담겨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배의 모퉁이를 붙잡고 간신히 버텼습니다. 이 여인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승객들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여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여인은 한참을 버티다가 힘이 빠져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 때 선장이 달려왔습니다. 선장은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화를 내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여인이 물에 빠지고 있는 데 구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단 말입니까?" 그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함께 말했습니다. "만약에 도와주면 우리 과일과 채소는 어떻게 하구요?" 선장은 사람보다 야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이기심이고, 정작 중요한 것을 내버리는 저주입니다. 저주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좋은 것을, 중요한 것을 버리고, 그 버린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셨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어떻게 큰 힘이 있는지를 모른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축복을 부어주시지도 않으시고, 결국 도로 그 축복을 가져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28~29절입니다.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9절을 보면 할례를 마음에 할지니라고 말씀하는데 그렇다면 마음의 할례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욕망과 혈기와 악한 본성으로 인해 먼저 자신에게 깊은 실망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에 칼을 찔러 옛 사람을 잘라 내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할례의 흔적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할례에 따르는 삶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날 신약 시대에도 세례의 흔적만이 아니라 세례에 걸맞은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시대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건, 신약시대의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건 관계없이, 그 행위로 보자면 우리는 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 하나도 네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쏟아내면서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 우리의 속사람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면적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에 엎드리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힘입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내 멋대로 산다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같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 진격했을 때, 어느 날 러시아 병사 한 명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에게 자기를 황제로 섬기면 후한 대접을 해 주겠다며 전향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포로된 그 러시아의 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러시아 황제 폐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소.”

거절하는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화를 내며 부하에게 지시했습니다.

저 놈에게 거룩한 황제의 표시를 새겨 주어라.”

그러자 한 병사가 달려들더니 그 러시아 병사의 팔에 불 인두로 “N”자를 새겼습니다.

. 봐라. 이미 네 팔에는 이 나폴레옹의 인()이 있느니라.”

이 말을 듣자마자 이 러시아 병사는 옆에 서 있던 프랑스 병사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어 자기의 팔을 뚝 잘라 버렸습니다. 피가 튀기며 하얀 눈밭에 떨어진 자기의 팔을 바라보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충성은 오직 한 분, 그 분에게만 바칠 것이오. 나의 황제 짜르여.”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면.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할례의 흔적이 나의 마음에, 나의 삶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까? 기적을 원하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풍요로운 영광과 드라마를 원하십니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표적을 지닌 삶을 살아라.”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할례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중심에 이미 지워지지 않는 하나님의 도장이 세겨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단이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도장을 찍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사단의 도장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축복 받은 우리는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한 것을 모두 견디고 능히 이겨나갈 힘과 능력을 덧입혀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살아 저 천국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시고,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끊없는 축복을 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마음의 할례를 받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말씀처럼,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오늘 이 한 날도 우리의 중심과 속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시며,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는 시간을 가지며, 말씀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힘입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마음의 할례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은혜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