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24) 율법에서의 자유 (수요예배 20170301)
성경본문: 로마서 7: 1~6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설교: 율법에서의 자유
오늘은 3월 1일 3.1절입니다.
과거 일본이 당시 우리나라였던 조선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1910년부터 일본은 우리 나라를 자기 나라로 만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힘들었지만 나라가 없어지고 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억울한 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러시아로, 또 일본 심지어 미국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또 일본 정부에서 속여서 일본 사람들은 가지 않는 탄광촌, 전쟁터들을 한국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또 자유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참다참다 못한 사람들은 1919년 오늘 자유를 위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으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계십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바울을 통해서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법에서 자유를 찾으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본문 1절에서 ‘형제들아’는 바울의 편지의 수신자인 로마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법 아는 자들’이란 율법을 알고 이미 예수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로마시민들도 잘 알고 있는 혼인에 대한 법 규정을 예로 들어 법이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 효력을 미칠 수 있듯이 율법의 지배 또한 사람이 율법에 대해 살아 있는 동안만 효력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유대의 율법, 즉 모세오경에는 자기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이혼요구의 권리를 규정한 곳이 없으므로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부부 관계를 규정한 율법에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이 죽으면 더 이상 남편과의 법적 관계가 끝납니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재혼할 수 있으며,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게 됩니다. 당시 로마 세계의 세속 법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원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성도에게도 적용됩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율법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으므로 우리를 구속하는 율법의 효력이 폐지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율법에서의 자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있어서 율법에서의 자유란 무엇일까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서 같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20년 전에 베들레헴 교회에 부임했을 때, 이상한 교회 서약 (church covenant)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술을 음료로 사용하거나 파는 것을 삼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지도자들은 교인이 되려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주로 모시고 살려고 하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정식으로 침례/세례를 받았으며, 우리의 신앙고백에 진심으로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파티에서나 친척을 방문할 때, 포도주를 마신다면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 규정이 왜 율법주의적 배타주의인지 교인들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습니다. "율법주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동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위해 인간 자신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태도이다. 성경의 율법을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바리새인이 십일조를 바치고 금식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의 형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경에 있지도 않은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만들어 내고 여기에 맞춰 교인이 될 자격을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성경적 배타주의가 나온다. 첫 번째의 경우는 우리 자신의 성화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고 두 번째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성화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데 실패를 초래한다. 또한 이들의 공통점은 두 형식의 공통된 뿌리가 불신앙이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또 “하나님은 이러한 율법주의를 알코올 중독만큼 싫어하신다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알코올 중독이 초래한 파멸이 아무리 거대하다 하더라도 율법주의가 알코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었는데 이것은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은 사람들이 술병을 의지하게 만든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사람들이 자만하여 아무도 의지하지 않게 만든다. 율법주의는 알코올 중독보다 더 위험한 질병인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주의는 질병처럼 보이지 않고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환영받으며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사람으로 실패하게 만든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우리는 할례나 무할례, 절대금주나 사교적 음주, 율법주의나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가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베들레헴 교회의 절대금주 서약을 고쳤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부당한 해를 끼치거나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든 약물과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관습을 삼간다.” 이것은 더 철저한 헌신이면서 그리스도 안에 누리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보다 성경적인 위상을 가진 교회서약이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처음부터 절대금주라는 교회 서약이 율법주의적 배타주의에 속하며 성경의 원리와는 대립된다는 확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임 후 가장 먼저 이 문제를 다루었고 그 때문에 교회전체가 더욱 성숙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어떠한 조항에 얽매어 있는 것보다 온전히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복을 얻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술 안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모든 일, 예배하면서 ‘술먹고 싶다. 술먹으면서 재미나게 하나님 없다하며 놀고 싶다’라는 모든 일들까지 금해야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4~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를 믿음으로 죄와 율법에 대해 죽은 자로 만드시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리신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성령님의 열매입니다(갈5:22-23). 우리가 율법 아래 있을 때, 즉 죄와 짝이 되었을 때에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가운데 역사하여 죄와 사망의 열매를 맺었습니다(5절).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에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고 율법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예수님과 재혼하게 된 것입니다(엡5:23-25). 따라서 문자로 기록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새 생명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의 법 안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 안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자기 스스로의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의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해야합니다. 내가 믿는 것을 다른 사람 앞에서 보이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도 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열매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먼저입니다. 예수님보다 내가 먼저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죄에서도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어떤 청년이 우연히 소원성취의 요정이 들어있는 요술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나와서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소원을 말했습니다. “나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한다.” 청년의 소원을 들은 요정은 곤란한 듯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세 가지 소원을 한꺼번에 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하세요.” 세 가지 모두를 갖고 싶었던 청년은 꾀를 내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돈 여자 결혼!” 청년의 짧은 대답을 들은 요정은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소원이 이뤄졌는데 그 청년은 돈 여자(실성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세상의 욕심과 죄 가운데에서, 율법으로밖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믿던 우리들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주 예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세상 성공’ 세 가지를 다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율법에서 자유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을 신랑으로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직 주 예수님이 구원이십니다. 오직 주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우리가 늘 주 안에서 살기를 바라며 주님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성령 가운데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