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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59)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수요예배 20171115)

온누리선교 2017. 11. 15. 15:54


 

성경본문: 로마서 15: 8~13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설교: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존 해거이라는 미국의 전도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존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존은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버지가 설교를 하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를 고쳐 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22년 간을 지내다가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죽은 후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거이 인스티튜트’(Haggai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3세계의 선교를 연구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을 보내는 휼륭한 기관입니다.

해거이 박사는 자기 가정의 실망과 낙담과 좌절을 통해, 선한 일을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만 바라볼 때 우리는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에 새 소망의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을 생각하면 소망이 샘 솟듯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벽에 부딪칩니다. 하나님 믿고 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온 나라와 온 민족들이 다 예수에게 소망을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새 힘을 얻으시고 새롭게 일어나시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0~12절입니다.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초기 기독교 당시에는 로마가 유럽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달려갈 수는 없습니다. 일단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에 후원금을 전달해야만 했습니다. 그 일이 예정대로 잘 처리되면 로마를 방문하려고 했습니다. 그 뒤로 스페인까지 가고 싶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설립한 교회는 아닙니다. 그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교회입니다. 기원 후 40년대에 유대 기독교인들이 로마로 이주해오면서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었고, 50년대 중반부터는 이방 기독교인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게 바로 이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원후 56년 고린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로마 교회 방문에 앞서 자신의 신학적 입장과 선교계획을 밝히려고 로마서를 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에게 더욱 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알리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도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12)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열방이라고 하면 이방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이고, 이새의 뿌리라고 한다면 다윗 왕의 후손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지파이면서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난 왕족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 사람들까지도, 온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게 될 것을 말한 것이고, 진짜로 2,000년 넘게 교회공동체가 이루어져서 우리조차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방인들한테까지도 그리스도가 소망이 되게 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사람들로 바꾸시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맞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꼭 필요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같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언젠가 변하는 것들, 없어질 것에 대해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더 좋은 것을 입고, 더 좋은 것을 먹고 사는 것에 소망을 두면서 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끝이 있게 만드셨습니다. 변하고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드실 때도 언제가 죽어야 할 존재로 만들었습니다만 영혼만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없으면,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으면 너무나도 허무하고 왜 사는지 모릅니다.

한때 테니스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보리스 백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윔블던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했습니다. 그중 한 번은 가장 나이 어린 선수였습니다. 나는 부자였습니다. 필요한 모든 물질을 소유했지만 아주 불행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였습니다. 이런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만이 아닙니다. 유명한 소설을 쓴 한 작가는 소년 시절에 알았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정상에 도달해 봐야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도 여전히 불만스럽고, 자살까지 기도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오직 그분만이 만족시켜 주실 수 있는 의미와 목적과 희망을 갈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때 주님께서는 이 갈망을 채워 주십니다. 성공을 했든 안했든 누구든지 이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주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소망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땅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이방인들이 구하는 자신의 복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절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삶을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들의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것이, 이 땅에 풍요와 건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몸은 유한합니다. 건강하기도 하고 병들거나 다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주는 복들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빈독에 물붓기와 같이 세상에서의 복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성령의 능력 가운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면 우리의 영혼이 기쁨을 얻고, 주안에서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풍요가운데 처하던지 가난가운데 처하던지, 건강한 가운데 있던지 연약한 가운데 있던지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다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혼이 평강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평강을 얻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평강은 세상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날 영국왕이 백성들이 어떻게 사나 나라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조그마한 동네에 이르렀을 때, 동네 모퉁이에 있는 물레방앗간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듣고 왕이 발걸음을 멈추고 물레방앗간을 들여다보았더니 한 할머니가 혼자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하도 아름답게 여겨져서 왕이 할머니보고 한 번 더 나를 위해 불러달라고 간청을 했더니 부끄러워하면서 할머니는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할렐루야 찬송이 절로 나네."

이 찬송을 듣고 왕은 너무도 기뻤습니다. 다시 부탁하기를 2절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 찬송은 내가 만든 거라서 2절은 없습니다. 1절뿐입니다." 합니다. 왕은 가슴에 우러나는 생각이 있어서 "내가 2절을 만들어 부르겠습니다. 지어 드릴 터이니 앞으로도 2절도 꼭 부르세요"하고 즉석에서 작사를 하여 불렀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왕이 날 부러워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 할렐루야 찬송이 절로 나네."

 

세상이 예수만 바라보고 사는 우리를 부러워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하나님 섬기는 우리보고 별 신경 안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돌릴 때마다 우리에게 내려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아주 정상이고 아주 축복된 길입니다. 이것을 잊지말고 주 예수만 바라보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온전히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게 하겠습니다.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 주시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그 축복 받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