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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44) 방언과 예언 (수요예배 20181121)

온누리선교 2018. 11. 20. 18:3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4: 13~25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23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설교: 방언과 예언

 

유명한 선교 일화가 있습니다. 쿨민 선교사가 식인종이 살고 있던 지역인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토인들의 추장이 쿨민 선교사를 잡아먹기 위해 사무실을 습격하겠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당한 선교사는 두려운 나머지 그의 아내와 함께 사무실에 꿇어 엎드려 생명을 보호하여 달라고 불붙는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아내가 방언이 터지면서 기도하고 선교사도 방언이 터졌습니다.

바로 그 때에 토인의 추장이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이상하게도 갑자기 사무실에서 꿇어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선교사는 너무나 신기해서 기도를 멈추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추장이 하는 말이 지금 당신네 기도를 들어보니 나의 과거와 현재의 지은 죄를 다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 아닙니까?’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만일 나를 해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라고 하자 추장이 승복하고 그 때부터 선교사업에 적극 협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언을 통한 여러 가지 기적의 이야기들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언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참으로 중요함을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주님의 뜻을 전한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도 커다란 깨달음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15절의 말씀입니다.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900년대 들어서 미국의 교회들에 소위 방언 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의 창시자는 찰스 파렘(1873-1927)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찰스 파렘은 성령세례를 받으면 자연히 방언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언을 받아야만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믿게 되어서 열심히 방언을 구했습니다. 당시 미국전체가 이 운동으로 들썩거렸는데, 미국의 언론들은 이 운동을 가리켜 신교와 구교를 넘어선 제3의 세력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운동은 이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여 전 세계의 교회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 우리 한국교회도 영향을 받아서 한때 성도들 가운데 방언을 사모하는 열기가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자주 이 방언을 신비한 기적같은 능력으로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주시는 건지, 왜 주시는 건지, 어떻게 쓰라고 주시는 건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42절에 보면 방언은 남들 앞에서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며 영으로 하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이어서 3~5절을 보면, 예언과 비교하면서 방언이 예언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예언이 방언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방언을 받겠다, 예언을 받겠다 하여 은사를 내맘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맘대로 주시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도 아무나 원한다고 하나님께서 다 주시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은사를 받기를 원하고 구하는 것을 해야하지만 어떤 은사를 주실지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시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사실 그 유명한 설교자요,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방언을 하지 못한다 하여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방언의 은사를 가졌다면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은사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방언자체가 신비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역하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의 덕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요한 방언은 자기가 원하는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보통 미신적인 문화에서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인간, 사람인데, 이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은 혼을 거치지 않고 영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여기서의 영은 인간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입니다. 물론 나의 영이라는 표현 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성령을 내가 모셨기 때문에 나온 표현입니다. 영어 성경(N.E.B.)내 속에 있는 성령께서는 기도하시나 내 지성은 쉬고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성령의 말씀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도 아니고 자기가 일부러 무엇을 하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의 입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령님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20~25절의 말씀입니다.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23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바울은 방언하는 능력을 성령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성령의 은사가운데 하나로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나누어주시는데,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셨다”(고전 12:10). 그러나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다면”(고전 14:28) 아무도 그 방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믿음의 길로 가려고 열심인 사람들을 방언을 통역하는 자로 세워야 마땅합니다. 바울이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고전 14:22)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지만, 지혜에 대해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특히 방언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언은 개인적으로 조심해서 해야지 온 성도가 전 교회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23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오해할 것입니다.

방언은 교회의 질서를 위하여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방언을 받은 자들이 가장 주의할 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은사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무리 가운데 있다면, 그가 회개함에 이르기보다는 도리어 방언하는 자들이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방언은 믿지 않은 자들을 위한 표적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예배드리는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그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다는 표적입니다. 예언은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책망의 메시지를 주어 죄를 깨닫게 하며,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며,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온전히 사용되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있었던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부흥집회 때 고린도 전서 12장을 가지고 은사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어떤 여자분이 설교가 끝난 다음에 이 목사님에게 와서 "나는 아무 은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목사님은 아무런 해석도 붙이지 않고 그대로 12가지 성령의 은사를 읽어주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서로 돕는 은사"에 대해 이 여자분이 갑자기 "잠깐만요~ 그 은사가 뭘 말하는 거죠?"라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께서 " 서로 돕는 은사란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특별히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하는 신령한 은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분이 "맞습니다! 제가 남을 돕는 것을 기뻐합니다. 특히 바라는 것 없이 교회 안에서, 전도할 대상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좋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가 있으면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의 은사를 받고, 구제의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은사를 받았든지 그것을 자랑하거나 마치 그것을 구원의 조건처럼 으스대며 내세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것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사랑 가운데서 잘 사용하게 하시어, 아직 복음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은사를 헛되이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방언을 하는 은사를 주셔서 감사하고 그 방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널리 전할 수 있도록 통역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의 은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는 귀한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