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58) 브리스가와 아굴라 (수요예배 2019041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6:19~20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설교: 브리스가와 아굴라
전 세계 큰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들은 거의 교인들이 동역자가 된 교회입니다.
미국의 뉴호프 교회라든지, 새들백 교회라든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는 거의 교인들이 수천명씩 목사의 동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목회 전담 동역자는 몇 명 없습니다. 교인들이 시간을 내어서 교회에 와서 자기 은사에 따라 돕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주보를 접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식당 봉사, 가르치는 일, 양육하는 일, 안내하는 일 등 자기가 할 수 있는대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동역자로 일할 수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사람도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느 정도로 동역자였느냐 하면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사도 바울의 목숨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동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형태로 사도 바울의 목숨을 구했는지에 대해 기록된 문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사도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죽을 위기,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두 부부가 살려주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교자 동역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충성스러운 가정과 함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문안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 부부에 대해 알아보면서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 시켰던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고 또한 그 안에 흐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를 알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19절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브리스가는 아내이고, 아굴라는 남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사도행전 18장에 처음 그 이름이 나옵니다(행18:2,3).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사도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본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천막 만드는 것은 단지 부업으로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원래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를 떠나라' 하고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정처 없이 갈 곳이 없었지만 가까운 고린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 가서 저들은 텐트를 치면서 살아갔는데 마침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을 만나서 업이 같으므로 텐트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귀한 가정으로 함께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를 떠날 때 아무런 생계의 보장이 없었습니다. 저들을 맞이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저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떠났고 낯설은 땅에 가도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함께 한 가족이 되어서 사귀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특별히 자기가 살던 집을 교회 처소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큰 빌딩이 세워져서 교회 건물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문안 편지는 건물 교회가 아니고 성도들이 교회였습니다. 특별히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은 예배드려지는 교회당으로 처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신자들은 도시에 몇십 가정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개인 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자기들이 살던 집을 예배 처소로 만들어놓고 교인들이 거기에 와서 예배드리고 잔치하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브리스가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다가 교인들 먹이고, 예배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하는데 썼던 것입니다. 이 가정은 오직 교회를 섬기는 일에 다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도도 아닌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평신도였습니다. 또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말씀으로 훈련을 받았고,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말씀으로 잘 도와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볼로라는 목회자도 이들 부부를 만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란 사실을 올바로 알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행18:24-26).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면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사도 바울의 선교일을 도와주었습니다. 로마서 16:3~4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동역이 참으로 하나님의 사역에서 귀하고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는 목사 혼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또 부흥되면 다 또 ‘목사님 때문에’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동역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 많은 영혼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일을 함께 하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동역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하게 당신의 일이 이루어지게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완벽하게 하는데 왜 동역, 함께 일하는게 중요하냐고요?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잦은 허리케인으로 해마다 큰 고통을 받는 나라인데, 우리나라에서 도미니카에 최초로 파송된 최광규 선교사님은 현지에서 교회를 8군데나 개척해 어느 교회는 현지인 주일학생이 1,500명, 청년 450명, 장년 30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고, 한국과 도미니카 앞자를 딴 ❛한도초중고등학교❜도 설립해 명문 학교가 되었습니다. 최선교사님은 2014 언더우드상을 수상했는데, 그분의 간증집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허리케인에 대해 하나님께 해결 방법을 달라고 기도하는 도중에 ❛기도❜가 바로 해결 방법임을 깨닫고 엘리야를 도왔던 7천 명처럼 그 목표로 기도의 동역자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7명으로 시작된 이 기도운동은 불일 듯 번지기 시작했고, 2009년 10월 10일 7천 명이 모여 허리케인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허리케인이 발생했다가 소멸되거나 도미니카를 비켜 미국 동부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도미니카 전역에 이 소문이 돌자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연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허리케인이 계속해서 도미니카를 피해갔고, 이제는 정부에서도 이런 기적이 바로 기도의 효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기도군을 창설하여 최선교사님이 대장으로 임명되고 공영방송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1시간 기도시간을 정규방송으로 편성해 줬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드릴 기도가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동역하십니다. 함께 일하셔서 완벽하게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더 이루어지시길 원하시는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아시아의 교회들과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문안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서 모인 것입니다. 이들이 고린도교회에 안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이런 사람들이 물질로 성도를 섬기고, 자기의 집을 성도들이 모이는 모임의 장소로 내어놓고 하는 일들이 무엇 때문에 하였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시기 질투로 한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랑이나 나중에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으로 한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랑을 전할까' 그 생각으로 집을 예배당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하는 것 자체가 은혜요, 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복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문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형제들이 바로 거룩한 하나님 안에 있음을 우리는 서로서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섬기려고는 하지 않고 아주 나에게 맞는 이상적인 교회만을 찾으려고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교회에서 교회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를 찾자면 먼저 이상적인 교회가 어떤 것인지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에베소 교회가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 조건 -좋은 위치, 문화적·경제적 중심지, 훌륭한 창립자와 훈련받은 지도자- 을 다 갖춘 곳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본문을 보면 에베소 교회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인 중에 거짓말쟁이들과 혈기 부리는 사람, 도둑질하는 사람, 쌍소리나 음담을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성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실망합니까? 교회에서 천국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혈기 부리고, 술 담배, 노름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변화 받는 치료의 장소가 바로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교회는 병원이기 때문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나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치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병원에서는 아픈 사람이 제 구실을 못한다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인격이 모자란다고 나무라면 안 됩니다. 치료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의 분위기가 가족적이어야 합니다. 가정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허물이 용납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고 살지를 보여주십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사람이 있는 교회를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되어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고 하나님의 일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동역자로서 쓰임받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뜻 가운데 함께 하여주시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거룩한 안부를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나누며 우리의 모든 자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