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 3:16~18 주일예배 20190602)
성경본문: 다니엘서 3:16~18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설교말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은 3단계로 나눠질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3가지로 구분한다면 ‘그러므로 신앙’, ‘그렇게 하실 줄 믿는 신앙’,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믿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간증거리가 있는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야 한 단계 한 단계 믿음이 자라나는 신앙입니다. ‘그렇게 하실 줄 믿는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에 지금은 초라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주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라는 약속을 하셨을 때, 이것이 언제 이루어질지 몰라도, 꼭 이루어질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미래에 함께 하시며 복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신앙’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정말로 아무 조건없이 믿는 것입니다. 복을 주신다는 약속도 없고,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도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시기에 믿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믿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어떠한 말이 없어도 하나님이시기에 믿고 따르고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 번째인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신앙’이 가장 좋은 신앙이고, 차원이 높은 신앙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신앙을 지키다가 풀무불에 던져져 죽임을 당할 처지에 있으면서 설령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지 않을 지라도 신앙을 지키겠다고 하였는데 이들의 신앙이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신앙’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차원 높은 신앙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자신만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예배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함을 진심으로 깨닫고 좀 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통치할 때에 유대 나라가 바벨론 포로가 되었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느부갓네살 왕은 유대의 젊은 청년 중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을 구비하여, 학문에 익숙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들을 따로 선별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여 갈대아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잘 길러서 수준 있는 노예로 쓰기 위해서, 거기에 다니엘을 비롯하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뽑혔습니다. 그들의 처음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냐 즉, 여호와의 자비", "미사엘, 누가 하나님과 같을까?", "아사랴, 여호와께서 도우시리"입니다. 이 이름들만 보아도,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세가 되어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온 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환관장이 이들의 이름을 각각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 바벨론식 이름으로 바꾸어 부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사드락, 악의 명령" "메삭, 악'과 같은 이가 어디 있을까?“ "아벳느고, 바벨론 이방신 느고(神) 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바꾸었겠습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섬기라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완전히 인생을 바꾸고, 영혼을 죄악 가운데 빠뜨려서 사단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어 부른들 하나님을 향한 세 사람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유대에서 잡혀온 다른 소년들과 달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아니하고, 오로지 야채나 식물만을 먹었습니다. 영양가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얼굴이 아름답고 윤택하였고 지혜와 총명이 바벨론 박수와 술객들보다 십 배나 나아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갈대아인들이 이들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큰 금 신상을 만들어 절하게 하는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왕을 높이며 숭배하게 하는 큰 금 신상을 만들어 그 앞에 절하게 하고 만약 누구든지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넣기로 하였다.
거기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걸려 들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자 갈대아인들은 이들을 왕에게 고발했습니다. 왕은 이들을 사랑하고 총애했기에 기회를 주려고 불러서 신문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대답은 변함없이 한결같았습니다.
16~18절입니다.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들은 두려움과 겁은커녕 오히려 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이 말씀의 상황으로 보면, 느부갓네살왕의 말을 듣지 않고, 만약에 그것 때문에 죽더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먹으라고 준 진미와 포도주는 세상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기를 먹으면 힘이 납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살아있는 생명의 피를 본 것이라고 합니다. 소고기가 어떻게 나옵니까? 소들을 가두고 키우고, 소들이 고기로 만들어지려고 도축장으로 끌려갈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들은 생명을 먹는 것이라면서 단백질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에서 얻지 않고 콩같은 식물에서 단백질을 얻겠다고까지 합니다. 포도주는 어떻습니까? 물이 귀한 곳에서는 알코올이 조금 들어가서 오래 갈 수 있는 포도주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성을 잃고 갖은 인간으로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면, 대부분 살인사건이나 강력범죄 사건을 저질러놓고는 형량을 좀 덜 받으려고 ‘술취해서 그랬다~, 소주 먹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는 변명들을 많이 늘어놓는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술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려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도 똑같이 형량을 내린다고 합니다.
다른 생명을 빼앗고 이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야채나 식물만을 먹으면서 정욕을 일으키지 않으며 탐욕을 만들지 않는 욕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었던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세속적이며 정욕적인 이방나라의 음식을 먹지 않고 구별된 음식을 먹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세속의 유혹을 물리치고 세속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은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세상과 구별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물리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기에 탐욕스럽고 먹음직한 음식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육신적은 유혹을 물리친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탐욕적이며 육신적인 것들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셋째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믿음, 즉 신앙의 순결과 절개를 지키는 믿음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을 신이라고 절하면 모든 게 다 편하고 좋았을 텐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칠 배나 뜨거운 극렬히 타는 풀무불 앞에서도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입니다.
인천순복음교회 한 구역장님의 간증입니다. 치유은사가 계신 은혜로운 구역을 인도하고 계시던 구역장님이 계셨습니다. 그 구역장님의 구역모임에 어느 날 한 가정이 찾아 들었습니다. 그들은 처참한 표정으로 찾아들어왔습니다. 구역모임이 끝난 후 개인적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어렵게 갖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멀고, 말도 못하는 그런 아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사업이 안좋아지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절망하였습니다. 아이는 장애인이고, 이 아이를 위해 재활도 해줘야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마련해줘야하는데 가정형편은 계속 나빠지기만 합니다. 이 부부는 아이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때 신앙심깊은 친구가 우연치 않게 구역모임을 소개하였고, 죽기 전에 한번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며,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 구역모임에서 아이의 장애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낫게 해주시기를 바라며 온 것입니다. 구역장님은 부담이 컸습니다. 그러나 40일을 함께 기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30일 되는 날, 하나님께서 이 구역장님에게 다니엘서 3:18절의 말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그들에게 물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역장님은 당황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말한단 말입니까? 34일째 되는 날 어쩔수 없이, 구역장님은 그 부부에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40일 기도가 끝난 후에도 낫지 아니한다면, 그리할지라도, 계속 하나님을 믿으며,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겠습니까?” 갑자기 이 부부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였습니다. 구역장님의 마음을 덜컹했습니다. “아.. 하나님.. 이들이 40일을 채우지 못하고 함께 다 자살하면 어떻합니까?...”
그러나 그 다음날 그들은 함께 기도회를 갖았고,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0일을 채우던 그 기도회 날 그들은 기쁨에 차서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아이를 사랑하시는지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를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실 것이며, 이로인해 영광받으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아이를 소중히 키울 것입니다.”
정말로, 신기하게 이후로, 저렴한 재활 문화센터에 이 아이가 다니게 되면서 집안형편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하였고, 이 아이의 병은 낫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고 정상인 아이들보다 더 현명하여서 다른 아이들이 배우는 속도보다 2~3배는 더 빨리 배우고, 더 빨리 습득하고, 더 빨리 알아내는 영특한 아이로 점점 성장하였습니다.
이 구역장님은 이를 통해, 40일동안 인간적으로 구했던 기도제목들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물음에 응답하여 온전히 주님께 순종했던 것이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온전히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역경을 당해도 그때 주께서 도와주지 않고 건져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떠나지 않으며 끝까지 주를 믿으며 따르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 뿐 만 아니라 내 병을 고쳐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망한 사업을 일으켜주지 않아도, 빚을 갚아주지 않아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세상이 하나님을 등져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믿음, 아무 조건 없는 신앙,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들이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들이 하나님으로 더욱 더 높여지고 더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합니다. 이 “그렇게 하지 아니시할지라도”의 굳건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인생에 새겨져서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자로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큰 은혜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늘 연약하여 주님의 곁에 있지 아니하고 우리의 방식대로 주의 곁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늘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늘 젖과 꿀이 흐르며, 늘 푸른 초장과 같은 하나님의 품에 있고 싶습니다. 그 곳에 있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과 같이 마음을 다 비우고 아무 조건없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이러한 신앙 속에서 세상이 알수도 없고 줄수도 없는 평안과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는 오직 주께서만 주실수 있는 것이오니, 이러한 축복 속에서 주님을 경배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