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후서 강해 6) 그리스도의 향기 (수요예배 20190605)

온누리선교 2019. 6. 4. 13:4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2:12~17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설교: 그리스도의 향기

 

어떨때는 외마디의 큰 소리보다 냄새가 큰 영향을 주는 때가 있습니다. 백과사전에 보면 냄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각은 시각에 대한 빛이나 청각에 대한 소리와 같이 냄새를 내는 물질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이것을 감각할 수 있다.개는 냄새를 맡아 목적물을 추적할 수가 있고, 나방이나 초파리는 수 km나 떨어진 곳에서 내는 암컷의 유인성 물질의 냄새를 맡고 거기까지 도달한다.’

또한 인간의 후각을 이용한 향기는 병을 치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미 허브나 라벤더 등의 들꽃이나 약초를 이용한 아로마 쎄라피가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청각이나 시각보다도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향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향기를 점검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2~13절의 말씀입니다.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당시, 에베소에 있던 바울이나 고린도의 공동체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분쟁에 휩싸여 있었으며, 그 가운데 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야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지도력은 도전받고 있고 있어서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심히 반대하고 비난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10, 11).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장을 비추어 보면, 고린도교인들이 부름을 받을 때 "지혜로운 자"(ՓՏՖՏՒ), "능력 있는 자"(ՄՕՍՁՔՏՒ), "집안 좋은 사람들"(Յ״ՃՍՅՉՒ)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교육받지 못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도 없고 가문도 좋지 않던 고린도교인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위상의 역전을 경험했던 것입니다(7:14-24과 비교).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은 자신들의 부름 받음을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관련시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48절에 보면, 바울은 그들이"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바울) 없이 다스린다." 라고 표현할 정도였고, 그들은 바울의 십자가의 도보다는 말이나 지혜의 탁월함와 함께하나님의 영으로 완전케 된 자을 더 주장하고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린도교회교인들의 교만함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습니다. 요즘도 보면, 여러 기독교유사이단들이 있는데, 그들은 십자가의 도보다는 유창한 성경암송실력과 지식, 또는 수준높은 교리들에 빠져 자신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완전한 자, 예를 들면 계시록에 나오는 14,400명 중의 하나가 된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고린도를 방문했으나 그 노력은 실패했고 바울을 반대했던 세력의 주동자는 바울을 크게 모욕했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하나의 엄중한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습니다(2:3, 4; 7:6-16). 그 편지는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쓰인, 지금은 없어진, 한 편지입니다. 돌아온 디도의 보고는 바울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소망의 내용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은 마게도냐에 있었고 거기에서 그는 본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2:13; 7:5-8; 8:1; 9:2-4).

이런 배경 가운데 고린도 후서의 내용은 바울의 사도 직분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직분을 향기에 비유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14~16절입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사람의 삶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악한 영향을 미치는 인생이 있고 또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인생이 있습니다. 악한 영향을 주는 인생은 모든 삶이 말씀처럼 죽음의 냄새 즉 썩은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항상 괴롭고, 경쟁과 싸움, 그리고 항상 불안한 그 마음속에는 평안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생명이 늘 함께할 수 있는 후자의 삶은 늘 사랑을 생각나게 하고 기쁨이 느끼는 삶이 됩니다.

 

구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중에 번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물에 죄 지은자의 손을 언지고 그것이 제사 드리는 자를 대신하여 불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어떤 의미로 받으셨냐하면 그 제사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민수기28: 1-2)로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그것은 온몸을 불살라 바치는 즉, 온 마음을 주께 바치는 그 사랑과 열정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불살라지는 가운데, 그 열정이 바쳐지는 가운데, 당연히 그에게서 나오는 향기는 퍼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 받으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온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그 순간 기대하지 했으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향기는 온 세상에 퍼지고 또 적셔지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구원의 사랑이 사망의 냄새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전해지고 또한 그 전해짐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악한 세상 속으로 퍼져 악의 세상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께서 갖게 되실 새 언약과 성령과 의의 직분, 위로와 기쁨을 얻는 직분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을 명심하고 기도하며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말로 행동 전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동안에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삶의 방향과 꿈을 보여주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살아오면서 안개속같던, 힘들었던 삶속에서의 불안함을 깨끗이 없애주시며, 자신의 삶에 전환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힘있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나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가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향기가 바로 예수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향기로 인하여 주의 말씀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온 세계 열방으로 퍼져나가 주님의 영광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우선 자신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어떤 기대를 하기보다는 평화와 화평 그리고 사랑만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만을 나타내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계속 가질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나누어 보며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소녀가 카나리아 새 한 마리를 얻었습니다. 카나리아 노래소리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봄이 되자 소녀는 카나리아 새에게 따듯한 봄볕도 쬐어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여러 종류의 새들이 찾아오는 정원의 나무가지에 새 초롱을 걸어 놓았습니다. 초롱 속의 카나리아는 날마다 찾아오는 친구 새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와 날씨가 차가워지자 소녀는 카나리아 새장을 다시 집안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바로 그때에 소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카나리아는 전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짹, , 짹 하며 참새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참새들과 지냈던 카나리아는 그의 순수한 목소리를 잊고 참새 소리를 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카나리아같이 하나님의 성령의 소리보다는 세상의 복잡한 논리에 동화되어 우리의 믿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세속에 동화되어 그들의 믿음의 순수성과 온전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카나리아가 그 자신의 아름다운 소리를 잃어버리고 참새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어버리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전한 믿음의 생활로 예수의 향기를 발하는 우리의 모습을 세상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하워드 켈리박사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발티모어의 외과 의사이며 크리스천이었던 켈리 박사는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면 항상 그의 양복의 옷깃에 언제나 싱싱하고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를 꽂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장미는 하루 종일을 시들지 않고 그 싱싱함을 유지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 비밀을 묻자 그는 옷깃을 들추어 그 밑의 물이 담긴 작은 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아름답고 향기나는 생활의 비밀은 예수님의 생수를 날마다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 생수가 우리를 세상에서 빛나게 하는 에너지 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 하는 바로 그 근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며 그 결과 그 분을 닮아가고자 하는 그 노력의 향기가 우리 안에서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쁘고 힘들며, 좌절의 시간을 보내기 까지 했던 한주일을 지내고 다시 새로운 한 주의 첫 아침을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7일을 되돌아보며, 우리 자신이 온 몸과 마음으로 그 분의 향기를 품어냈는지 생각해봅시다. 지난주간 온전한 향기를 퍼트리지 않았다면, 주님께서 직접 공급하시는 특별한 향기, 아름다운의 향기, 사랑의 향기 즉,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시간 가득히 담아 새로운 한주간의 우리의 삶이 예수의 향기로 승리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축복이고, 행복해 지는 지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주님!

우리가 사는 목적이 단지 물질이 아니요, 건강이 아니요, 성공이 아닙니다. 바로 그 물질과 건강과 성공을 통해 주의 향기를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 퍼트리기 원합니다, 우리의 온전한 신앙과 행위도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트리기 위함입니다. 지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주의 커다란 은혜와 감동으로 극복하게 하시고 더 많은 복으로 채우시고 당신과 동행하는 최고의 축복을 경험하게 하소서. 우리는 당신의 증인이며 당신의 향기를 전하고 퍼트리는 존재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