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후서 강해 20)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수요예배 20190911 )

온누리선교 2019. 9. 10. 14:08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6:14~18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설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1:28~3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멍에는 무엇을 뜻할까요?

'멍에'는 밭을 가는 소들에게 매는 것입니다. 보통 멍에는 두 마리에게 씌웁니다. 이런 멍에는 보통 땅을 힘있게 갈아야 할 때도 쓰이지만, 어린 소에게 멍에 메는 법을 가르칠 때도 쓰입니다. 멍에에 숙련된 소와 어린 소를 함께 보통 채웁니다. 그럼 아무래도 숙련된 소가 리드하면서 가게 되고 어린 소는 숙련된 소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멍에 메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 '멍에를 멘다'는 것은 같이 일한다는 말이고,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소와 같이 예수님께서 함께 멍에를 메셔서 이끌면서 어린 소와 같은 우리를 감당하시며 일하신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믿지 않은 자들과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고 합니다. 분명 여기서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고 가야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세상의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과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의 법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오늘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4~16절입니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9세기 덴마크 사상가였던 키에르케고르가 오리에 대하여 재미있고 뜻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오리들과 함께 하늘을 날아가고 있던 야생오리 한 마리가 집에서 키우는 오리들을 발견하고는 내려와서 그들과 함께 오리 우리에서 있었습니다. 몇달 동안 주인이 주는 것을 잘 먹고 편하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머리위로 날아가는 야생오리들을 보고 그들에게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늘로 날고자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몇 달동안 집오리들과 함께 먹고 살며 편히 지내다보니 이제는 하늘로 날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야생오리는 집오리들 틈에서 만족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향해 날아가던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빠져버린 상태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고린도지방은 타락이 극심한 지역이라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오리처럼 된 그리스도인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은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라는 뜻은믿지 않는 자들과 너무 감정적으로 깊게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신자와 동업을 한다든지 결혼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서 실패하게 된 대표적인 경우가 '솔로몬왕'입니다. 믿음없는 이방여인들과 정략결혼하여서 이방신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솔로몬 왕도 말년에는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은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 그 이상입니다. 여기서 '불신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 뿐 아니라 바울의 사도성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는 거짓교사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거룩한 구별된 인생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구별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까?

첫째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담 안에서 원치 않게 마귀의 종노릇하는 하나님과 원수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어두움의 종노릇하던데서 해방되어 그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이는 금이나 은이나 업적이나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값을 대신하여 그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그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진리요 복음입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서 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온전히 내려 놓고 주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가면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벨리알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흔한 표현으로 그 뜻은 '무가치함'입니다. (19:22 삼상 1:16,. 욥기 34:18) 러므로'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사탄이 어찌 조화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가장 천하고 무가치하며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와 사탄이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7~18절입니다.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철저히 세상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이런 일에 가장 모범이 되는 사람이 성경에 나옵니다. 바로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했을 때 느부가네살 왕은 유다 자손 중 왕족과 귀족의 아들을을 포로로 삼아 바벨론으로 데려 갔습니다.

여기에 십대 소년이던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소년들은 황량한 벌판으로 끌려가면서 '이제 우리 인생은 끝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편안하고 부유했던 왕궁생활이 이제 끝이 난 것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이방 땅은 우상숭배로 혼란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아직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유다소년들을 철저하게 바벨론화시킬 생각으로 이 소년들의 이름들을 완전히 바벨론식으로 바꾸어버리고 바벨론 사상과 교육을 시켜서 바벨론에 철저히 충성하고 사용할 자들로 키우려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최고의 교육과 우상제사를 지내고 남은 진미와 고기,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다른 유다 소년들은 환경에 굴복하여 바벨론 궁에서 하라는 대로 하며 우상의 제물도 먹고 마셨습니다. 현실에 안주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우상의 제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들은 감독관에게 열흘 동안 고기와 술먹는 소년들과 채식과 물을 먹는 자기들을 비교한 후 처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0일 뒤에 보니 이들의 얼굴이 우상제물인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나아 보였습니다.

다니엘 1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에게 더 큰 지혜를 주시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하셨다고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만 향했던 이 소년들을 크게 축복하시고 높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상들이 가득한 바벨론 땅에서, 타락한 고린도 지방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까요?

멍에를 누구와 함께 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답은 사도 바울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보혈로 산 귀한 영혼들입니다. 이 귀한 영혼들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말씀을 따라야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서 억울하게 매맞고 당하고 배반당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법대로 따르셨습니다. 그러자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있지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대로 순종하며 따르게 하소서! 우리가 어떠한 일이 있든지간에 주님의 놀라운 축복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결코 세상에 무릎 꿇지 않게 하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