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자가 받는 하늘의 복 (눅 6:36~38 주일예배 20191006)
성경본문:누가복음 6:36~38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설교 : 자비로운 자가 받는 하늘의 복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길, 인간을 세 단계로 보아 첫 번째는 받는 단계 두 번째는 소유하는 단계 세 번째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신앙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단계, 은혜받는 단계 은혜받은 다음 주는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다 나눠 주셨습니다. 젊음도 몸도 피도 그리고 생명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누라 그리하면 후하게 넘치도록 안겨 주겠다!“ 빈틈없이 꾸꾸 눌러서 흔들어서 넘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라는 것은 참으로 맞기도 하고 감동적입니다.
남에게서 뺏고 남을 밟고 일어서면 잘 산다는 세상의 법과는 다른 주 예수님의 하나님의 법을 오늘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축복보다 더 크고 넓고 끊이지 않는 복이 바로 하나님의 복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놀라운 하늘의 지혜를 알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6절의 말씀입니다.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자비’의 뜻은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36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자비”라는 뜻이 정확히 무엇일까요?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이야기가 하나님의 자비를 가장 잘 알려줍니다.
요나 선지자는 당시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 성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방 나라 수도였지만 그곳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백성이 12만 여명이나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셔야 하는데 그 전에 요나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방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고,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그냥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요나 선지자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멀리 도망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명하여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 땅에 내려놓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했기 때문에 사흘 동안 걸어야 할 만큼 큰 니느웨 성에서 단 하루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방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것도 왕부터 시작하여 짐승들까지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나 선지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요나는 자신이 외친 그대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인지 그 결과를 보기 위하여 니느웨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4:5절)
그러나 이미 요나는 니느웨 성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성을 내면서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저는 이미 고국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 사람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는 것이 보기 싫어서 도망을 한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셔서 심판하실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 줄 내가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4:2) 그리고는 말합니다. “주여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세요. 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하시기 위하여 박넝쿨을 준비하셔서 뜨거운 햇볕이 내려 쪼일 때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 선지자가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하나님은 박넝쿨에 벌레를 보내셔서 갉아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해가 뜨면서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다가 요나의 머리에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혼미해질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려 쪼이니 견디지를 못합니다. 요나는 다시 외칩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까짓 박넝쿨 때문에 성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성내어 죽는 일이 있어도 나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요나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지 않느냐.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수도 니느웨 백성들도 멸망당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고 해서 모든 백성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셔서 바벨론에 의해 멸망은 당하게 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앗수르 사람들이 다 심판 가운데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두시지는 않으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비로운 자가 될 수 있을까요?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참과 거짓 그리고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견을 가지고 무분별하고 성급하게 의견을 제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자비를 베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정죄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아서 재판관이 되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금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지만 심판이나 판결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정죄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타인을 정죄하거나 심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자신도 동일한 죄를 범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또 나를 정죄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2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몇 구절 연이어서 보겠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 11:25)
이 말씀들에는 공통된 뜻이 있습니다. 내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의 잘못을 하나님께 용서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부터 용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또한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38절입니다.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의 힘들고 가난한 것을 돕기 위하여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선물로 주라는 뜻입니다.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받기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구제사역을 꼭 반드시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구제(救濟)는 건질 구(救), 건널 제(濟)로 어려운 형편에서 구해줘서 그 어려움을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 ‘물에 빠진 놈 건져주면 보따리 내로라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줘 봐야 이상하게 얽혀서 손해 본다는 말입니다. 이 속담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대박이 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그러므로 남을 돕고 구하는 ‘구제’는 축복의 시작이고, 축복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라는 사람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 100명을 이끄는 백부장이었습니다. 유대인이 개돼지 취급하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로 그의 집에 찾아가 성령을 부어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최초의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0:4절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이라고 정확히 나옵니다. “기도와 구제” 때문에 고넬료와 그 가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는데 노인과 과부를 많이 도운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다비다라는 이 여인은 부자라 도운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직접 만들어 주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다비다가 죽자 마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다비다의 구제사역 때문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며 슬피 울고 몇몇 제자들은 베드로 사도에게 간절하게 부탁해서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에게 가서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했고, 다비다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다비다가 주를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구제하고 도운 것을 잊지 않으시고 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고 둘째, 가난하고 고통 받는자에게 대가없이 주라하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고는 아버지 앞에 나갈 수도 없고 우리 이웃과 화목을 이룰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으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됩니다. 그래야 부활의 능력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으로 살려면, 죽음을 생명으로 독을 중화시켜서 단물로 만들어 주시는 주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자비로운 자가 되셔서 하늘의 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을 알게 하시고 또 자비로운 자의 복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복을 받을 수 없사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 능력으로 우리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하늘의 복을 받게 하옵소서! 그래서 사단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세상으로 이 세대가 변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