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강해8)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수요기도회 20200415)
성경: 갈라디아서 3:6~14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설교: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예전에 한 대기업의 손자가 큰 사고를 내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이 한 걸로 하고 그 손자가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손자의 태도는 너무나도 황당했습니다. 자기는 원래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내가 이것을 돈으로 해결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며, 억울해 했다는 뉴스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태어날 때 받은 부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그 행태를 보고 그 대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을 사람들이 시작했고, 이에 대기업이 사과성명을 내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고, 절대로 우리는 망하는 일이 없다고 자신하고 다니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로마인들을 무시하는 그런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이런 유대인들에게 주눅이 들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참진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놀라운 진리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6~9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그 진리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대로 믿음위에 율법을 지켜야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여겨 율법을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도 율법을 지키면 받을 수 있다고 여겨 율법을 지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는 것은 듣고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아브라함을 통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의롭게 보셨다는 창 15:6절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육적인 조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신앙의 모범으로 여기는 대상입니다. 구약 외경 가운데 집회서 44:19-21절에서는 아브라함을 모세이전부터 계명과 율법을 지켰던 사람으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으로는 모세 이전 시대에 살았던 아브라함이 모세의 율법을 지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만큼 의로운 인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의 전통과는 다르게 아브라함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점은 바울도 강조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아브라함이 신앙의 모범인가?’에 대한 개념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과 계명을 잘 지킴으로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바울의 이해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율법적인 모범을 높이 생각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에게는 행위의 의가 있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은 그 어떤 사람도 본받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의 기준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제사는 율법과 계명에 따른 행함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예가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본받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창 12:3절의 이 기록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하실 것을 성경이 먼저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인정받는다는 복음”을 먼저 알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율법을 먼저 알고 지킬 수 없었듯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도 먼저 알고 지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중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킨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내용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이 복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라는 성서적인 개념을 “마치 우리가 많은 복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그 복의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나누어주는 복이 아니며, 우리가 나누어 주는 복이 아닙니다.
본문 9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었듯이, 하나님을 믿는 그것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킨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입니다. 행위로 의롭게 되고자 사방팔방으로 노력했던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사람을 의롭게 한다는 바울의 주장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는 구약성경의 기록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롭다 함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하며, 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에 대한 바울의 최종적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라는 대답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율법에 의하여 저주 받은 사람으로 규정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에 의해서 율법이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사람을 의롭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경건한 삶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장로들의 전통과 관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관습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행동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핵심을 지적하셨고, 우리가 생각할 때에도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원리는 율법과 같은 규칙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지키고 따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사도바울처럼 바르게 성경을 알고 배웠다면 그들도 지금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우리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그래서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도 원조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이 그 원조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에 근거해서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을 지킨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복음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알지도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고 믿는 그것을 통해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신 이 놀라운 일을 계속 말하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의롭게 인쳐시고 구원의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높이 기림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르게 알 때 더 빛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지식은 참된 신앙의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을 때 성령을 받은 이 복을 계속 전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이 시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이어지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리석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