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0~52, 주일예배 20200614)
설교본문: 마가복음 10:50~52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설교: 보기를 원하나이다
우리들은 살면서 소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소원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루십니까? 이 질문의 답을 위해 이야기를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떤 천사가 묵을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두 집이 있었습니다, 한 집은 크고 화려한 부자의 집이었고, 다른 한 집은 아주 누추한 가난한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천사가 첫 번째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부자가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천사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습니다. 아주 거지같이 입고 있는 것을 그는 보고서, 그 천사를 내쫒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나와서 환영하며 따뜻하게 접대했습니다. 천사는 매우 기뻤습니다.
이튿날 천사는 주인에게, "여러분이 이렇게 친절하며 정성스러우니 감사합니다. 나에게 가장 원하는 것 세 가지를 말하시오. 내가 반드시 여러분의 원함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 만약 그렇다면, 첫 번째는 영원히 사는 것이고, 둘째는 건강하고 매일 필요한 음식이 있는 것이고, 세 번째는 새 집을 갖고 싶은 것입니다.”라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다음 날 부자가 일어나 창밖을 보니 이웃의 낡은 집이 화려한 새 집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새 집 주인에게 갔습니다. 그 새 집 주인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새 집 주인은 어제 천사 손님에 대해 부자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부자는 "만약 이럴 줄 알았다면 반드시 그 사람을 우리 집에서 묵게 했을 텐데."라며 후회했습니다. 아내는 부자에게 "빨리 달려가세요. 혹 따라 잡을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을 타고 달려가 보시오."라고 재촉했습니다."
부자는 천사를 만나 열심히 변명했습니다. "어제 제가 열쇠를 찾으려 들어간 사이 당신이 가 버렸더군요. 접대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이 오래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저희 집에 갑시다. 환영합니다."
천사가 그러겠다고 하자, 부자는 곧 천사에게 세 가지 것을 자기에게도 약속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천사는 "할 수는 있지만 당신에게 좋지 않을지 모르니 그만 두시는 것이 나을 텐데요. 당신이 꼭 원한다면 그렇게 해 드리기는 하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을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부자는 무엇을 원해야 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말고삐가 헐거워져 말이 심하게 뛰는 바람에 생각이 산만해졌습니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는 "차라리 죽어버려라, 네 목이 잘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말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고 그의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부자는 그 말안장이 아까워 등에 메고 걸어갔습니다. 한낮의 태양이 몹시 뜨거워지자 그는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안장은 그의 등뼈를 내리 누르는데 아직 그가 무엇을 원해야 좋을지 아직 결정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계속 무엇을 원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지만 그것들은 성에 차지 않는 너무 적은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만족해할만한 것이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집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데 혼자 시원한 곳에 쉬고 있다니. 애라! 나 모르겠다. 내 맛 좀 봐라. 이 안장에 앉아 다시는 내려오지 못했으면 속 시원하겠다."하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말안장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집에 급히 돌아와 보니 아내가 그 말안장에 앉아 울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는 수 없이 아내를 위해 마지막 소원을 써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욕심 사나운 부자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힘만 들었고 놀라기만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늘 평생 하나님의 기적을 기다린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거지 바디매오가 주 예수님께 가서 어떻게 그의 소원을 이루었는지를 함께 보기 원합니다. 겸손히 주님의 능력을 확인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50절의 말씀입니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오거늘
바디매오는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눈을 뜰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거지노릇을 하며,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옷입니다. 그것도 낮에는 뜨거운 햇빛을 밤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겉옷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재산이며 생계수단인 겉옷마저 내팽개치고 바디매오는 예수님 앞으로 달려 갔습니다. 오직 주님이면 충분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만이 자신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바디매오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치료해주셨습니다. 단지 바디매오의 믿음만을 보고 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치유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 생각해보고 적용할 것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주셨을까요?
첫째, 보지도 못하는 맹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이적들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47절을 보면,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라는 말을 보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만을 듣고 그는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유명하였습니다. 문둥병자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다는 예수... 그 소문만 듣고도 이 바디매오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소망함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나를 살리실 분이다! 그 분만이 나를 구원해주신다!”
그러나 반면에 바디매오가 소리 지르던 그 순간에 있던 사람들과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눈을 뜨고 있었고, 볼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간절히 부르거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자들은 가까이서 많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보았지만 주 예수님을 간절히 원하기 보다는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막10:35~44을 보면, 제자들은 서로가 능력 있으신 나사렛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고 서로 생각하여,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요구에 심히 기분나빠하며 화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세속적인 욕망이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이러한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 두 사람에게만 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표현만 아니했다 뿐이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그들과 별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과 달리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그의 소원을 어떻게 이야기 합니까? 51~52절입니다.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과 제자들과 수많은 무리에 에워싸여 여리고를 빠져 나가고 있을 때 디메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다윗의 자손으로 온 메시아 예수께서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잠잠하라며 꾸짖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바디매오를 불러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맹인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니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 하시니 맹인 바디매오는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랐습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끄럼 없이 자신을 내던졌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주님만을 찾았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는 유대지도자들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당시 유대지도자들은 율법에 있어서 해박한 전문가였습니다. 제자들도 다들 낮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리하여도 메시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며, 성경에서 오래전부터 예언한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했을 때 오직 한 사람, 베드로만이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즉 메시야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쭉 말해왔던 그 메시야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면, 맹인 바디매오는 아주 정확히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고 애절하게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다윗의 자손은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가 나오는 가문의 자손이며, 또한 이것은 바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왕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을 어두웠으나, 영혼의 눈은 바르게 뜨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간혹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 상황들이 정말로 개인적으로는 아주 절망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얼마나 절망적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부르짖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여져서 세상의 풍파와 헛된 바람들이 다 보이지 않거나 작은 것으로 나타나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께서 주시는 축복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디매오를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주 예수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아갈 때 그는 눈이 뜨여졌습니다!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도 뜨여졌습니다. 그 눈을 누가 뜨게 했습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간절히 부를 때, 바디매오처럼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주님을 부를 때 와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심으로 영적인 눈이 뜨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진 후에도 예수님을 따라 갔던 바디매오처럼 소원보다 더 큰 행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주님의 자녀로서 복을 받고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도록 늘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안에 어두움을 몰아내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굳건히 서서 우리의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치유의 손으로 바디매오처럼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 영혼의 눈까지 뜨여져서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