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11) 존귀히 여김을 받을만한 에바브로디도(수요기도회 20201125)
성경: 빌립보서 2:25~30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설교: 존귀히 여김 받을 만한 에바브로디도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 입니다.
파나이섬에서 선교하고 있는 강요한 선교사와 함께 50여명의 선교사를 대접할 일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대형 버스에 모시고 나는 승용차로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이 무척 심해 나는 강요한 선교사 운전기사인 현지인에게 버스를 추월, 앞장서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 강선교사가 뒤따라오라고 하였다면서 결코 앞장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인의 형이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주인이 말한 대로 뒤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차가 멈추었을 때 동생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자 동생은 웃으면서 이 기사는 자기 말 외에는 누구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라고 하였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아주 충성된 종, “에바브로디도”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충성된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25~27절입니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존귀케 대접하라고 부탁한 사람이 디모데 외에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그는 로마감옥에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 교회가 사랑의 헌금을 걷었을 떄 그 헌금을 전달하고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먼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마게도냐의 빌립보로부터 로마까지는 육지로 1300마일, 바다를 질러가도 800마일이나 되는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치안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강도와 도둑이 길마다 득실 거렸던 2000년 전에는 돈주머니를 들고 1300마일을 홀로 걸어 여행한다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사도바울을 보살피기 위해 그 먼거리를 생명을 내놓고 걸어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로마에서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생명을 잃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 당시 로마에 온 외국인들 중에도 열병에 걸려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장거리 여행을 하고 몸이 약해진 에바브로 디도가 로마에 가자마자 열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걱정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병세에 대해 듣고 염려하고 있을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심히 근심할 정도로 에바브로디도는 자기보다 남을 더 귀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컸습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큰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봉사하고 헌신하며 염려하고 도와주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다른 형제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보아 오히려 에바브로디도처럼 근심하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놀라운 주님께 대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28~30절 말씀입니다.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병이 나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냈습니다(28절). 병에서 회복되자마자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을 위해서 에바브라디도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건강해진 그를 보는 것이 빌립보 교우들에게 기쁨이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가 안정됨으로 자기도 근심에서 벗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빌립보 교회에 사역자가 비어있음으로 사도 바울이 많은 근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라디도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을 바울은 알지만, 그래도 다시 빌립교 교회에 에바브라디도를 영접하고 존경하도록 요청했습니다. (29절). 사역자를 존경하고 섬기는 것은 여러번 들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교회의 사역자를 더욱 존경할수록 교우와 교회에 덕이 되기 떄문입니다. 복음의 신실한 일군이 복음의 사람에게 마땅한 존귀를 받습니다. 세상의 사람에게 복음의 사람이 무엇으로 존경을 받겠습니까? 그것은 선한 행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사람에게 복음의 일군은 복음을 전하는 역할로 존경을 받습니다. 이 복음으로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웠기에 빌립보 교회는 복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픈 중에도 교우들을 걱정하는 에바브라디도를 직접 보았습니다(30절). 에바브라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 죽음에 이르러도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빌립보 교우들을 돌보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 충성하는 에바브로디도의 열정으로 지금 자신이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 교회에서 자칫 부족해질 수 있는 자신의 자리를 채워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하나님꼐서 자신을 사용하셔서 세우신 교회로 todrkrg고 또 그 교회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역자가 바로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각각 전임과 후임으로 서로가 사역의 갈등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에 충성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아직까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두터운 신임과 형제로써 깊은 사랑 가운데서 교제하고 있었지만 바울이 칭찬한바와 같은 놀라운 일꾼이란 사실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에바브로디도는 주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하면서 사도 바울 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존귀함을 받는 사람이었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31살 김 집사는 딸 셋을 남기고 천국간 남편으로 인해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살아야겠다는 믿음과 의지로 농사일이며 갯벌일이며 노점이며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합니다. 큰딸은 음악을 전공해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둘째딸은 초등학교 교사에 임용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막내 또한 음악을 전공해 교회 반주로 봉사한답니다. 김 집사는 권사가 되어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딸들 모두 고향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족들만 충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의 충성도 있었습니다. 그 진돗개가 새벽기도 갈 때는 항상 앞장서 동행해주고, 새벽기도 끝나면 기다렸다 집까지 호위해주고, 밤이면 잠들지 않고 대를 이어 가며 15년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철철이 새끼를 낳아 아이들 학비도 보태고 교회 헌금도 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진돗개를 보고 사람보다 더 많이 헌금하는 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헌신하는 자들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존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존귀히 여긴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존경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며 칭찬이 나오면 헐뜯기가 일수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분쟁이 오고 미움과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일꾼을 아끼고 사랑하며 존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충성된 주님의 일꾼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늘 시기 질투로 교회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충성된 주님의 종들을 귀히 여기고, 우리도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 하나님꼐 영광을 드리고 주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