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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13) 사도 바울이 버린 것과 얻은 것 (수요예배 20201208)

온누리선교 2020. 12. 8. 17:21

 

성경: 빌립보서 3:4~9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설교: 사도 바울이 버린 것과 얻은 것

 

전북 전주의 한 교회에서 한 해의 초부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란 푯말을 붙인 상자를 만들고 신자들로 하여금 그 안에 그 같은 물품들을 넣게 했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내용물이 수집됐습니다. 고급 양주에서부터 외설테이프, 추잡한 액세서리, 불량서적 등이 쌓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이것들을 매월 정기적으로 불에 태워버리고 각자 새 생활을 다짐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경건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부흥운동도 일어나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버렸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우리 모두 함께 말씀을 보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바울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4~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자신이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게 무슨 자랑거리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냥 아무 때에나 할례를 받았으면 되었지, 팔일 만에 받았든지, 아니면 사정이 생겨 보름 만에 받았든지, 아니면 나중에 개종해서 어른이 되어 받았든지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할례는 그냥 다 똑같은 할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도 더 세분하여 따졌다고 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아기가 태어나면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율례에 따라서 정확하게 할례를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것을 아주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형식주의의 특징입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하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그런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는 팔일 만에 정확하게 할례를 받았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 다음에 바울은 자신을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 중에서도 '베냐민 지파'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단일민족이라고 말은 합니다만, 사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다른 민족의 피가 섞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혼혈인에 대해서 심한 편견을 가진 나라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도 우리와 참 비슷합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외적의 침입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기도 했고, 완전히 망해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피가 섞이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어느 지파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은 순수혈통의 이스라엘 족속이요, 특별히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이 배출된 유서 깊은 베냐민 지파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과는 다른, 정말 정통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자랑입니다. 이는 형식주의 신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랑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또 바울은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줄 아는 그런 유대인이라는 자랑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도 고향이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당시의 세계 공용어였던 희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아스포라이면서도 히브리어를 제1언어로 사용할 만큼, 철저하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교육되었고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자신을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소개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여러 종파가 있었는데, 그 중에 바리새파는 가장 엄격한 종파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에 대해 연구하며 철저히 따르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따라서 철저하게 신앙생활하는 데에는 타 종파와는 구분된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울은 바리새파 가운데 가장 존경받던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습니다. 이것은 가짜 학력이 아닙니다. 진짜였습니다.

바울은 정말 완벽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다 유대인이 아니고, 할례를 받았다고 다 똑같은 할례가 아닌데, 헬라파 유대인과는 다른 진짜 히브리파 유대인이고,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서 훈련받았고, 율법을 지키는 데에는 물불가리지 않는 열심이 있었고, 정말 한 가지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랬던 바울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7~9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서는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를 소원했고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을 했습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서 잃은 것을 기뻐했습니까?

 

첫째로는 이런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잃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그보다 못한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을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얻기 위해서 순교자들은 순교를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장애가 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친구를 잃게 된 것을 걱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 취미 잃는다고 신경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얻는 길 이 길만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영광이며 최후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했습니다. 한 때 사도 바울이 바울 되기 전 바울은 자기 도취에 빠져서 참된 자기실존을 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한다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그 순간 바울은 자기의 못난 자아를 바로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참으로 용서 받지 못할 악한 죄인이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어리석었고 또 가장 못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이전에 그는 자신을 육체적으로 보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럼으로 자기를 잃지 않고 자기를 발견하고 사는 것,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유대인의 율법에 매이고, 자기 의로움에 포로가 되고 자기 열심에 사로잡혀서 뛰어다닐 때에는 자기를 잃어버렸으나 이런 것들을 버리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기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잃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롭게 여기고 배설물 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잃고 얻는 삶의 소신과 철학과 믿음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권능과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잃고 얻는 삶의 결단을 실천한 자만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가를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껍데기에, 형식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외적인 자랑거리들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 잃어버린다고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배설물입니다. 그냥 쓰레기입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그런 쓰레기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내 죄를 대속하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여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만 하면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이게 바울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수님 이야기만 합시다. 더 이상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세상적인 자랑거리들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자꾸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너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같다는 걸 자꾸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모두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발견하고 주안에서 기뻐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께서 오늘 주신 말씀으로 우리가 더욱 힘을 얻어 놀랍도록 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