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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강해 16)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수요기도회 20210106)

온누리선교 2021. 1. 5. 18:22

 

성경: 빌립보서 4: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설교: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69:28)

 

4세기의 교부 크리소스톰이 체포되어 로마 황제 앞에 끌려갔을 때의 일입니다. 심판석에 앉은 황제의 질문과 크리소스톰의 대답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네 재산을 몰수하겠다.’ ‘저의 재산은 하늘에 있습니다.’ ‘너를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떼어놓겠다. 평생 외톨이가 되는 거야.’ ‘친구는 예수님입니다.’ ‘너를 이 나라에서 추방하리라.’ ‘제 나라는 하늘 나라입니다.’ ‘목숨을 잃어도 좋으냐?’ ‘제 생명은 벌써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 안겨 있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저로부터 빼앗을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저의 모든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과 적들은 자기들의 권세를 동원하여 우리를 위협합니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때론 협박을 통해 신앙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런 것으로 동요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 나라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 기록되었으며 그곳에 한번 기록되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하고 달라질 수 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 없는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함께 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생명책에 쓰여 있는 사람들이니 한마음으로 동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주의 은혜를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성숙한 교회, 좋은 교회라고 해서 그 중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17~2:18을 보면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 또한 빌립보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1:28). 또한 빌3:2,3에서는 개들, 행악하는 자들즉 거짓교사들로서 유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때 믿음 뿐만 아니라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3:18)고 하여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3:19)들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빌립보 교회에 있었고 교회에 어려움을 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성숙하고 좋은 교회, 복음에 힘쓰던 교회였지만 그 안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회에게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4:1)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 서라는 말은 주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로마 군인들에게 익숙한 용어입니다. 로마시대가 배경인 전쟁 영화를 보면 군사들이 자신의 키만한 방패를 들고 대열에 맞춰 서서 적군과 싸웁니다. 반드시 각자 자신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두려움에 물러섰다가는 진영이 깨져 전쟁에서 지기 쉽습니다. “굳게 서라는 말은 그와 같은 상황을 가리킵니다. 교회도 외부의 공격이 있습니다. 대적들이 교회를 흔들려고 하는데 피하지 말고 그 자리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빌립보 교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 이후의 모든 교회들을 공격합니다. 교회가 굳게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충실하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사단은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굳게 서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핍박하거나 대적하기도 하고 진리를 잘못 가르치기도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이나 진리와 유사한 것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내부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성도들 개개인을 향해 사단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무너뜨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단의 공격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굳게 설 수 있을까요?

 

종교 개혁자 죤 낙스는 평생을 가톨릭과 싸우고, 그의 임종 직전에 다

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나의 인생 중에 자주 사탄으로부터 오는 많은 습격을 받았소. 그러나 지금 그는 가장 무섭게 나를 공격하고 있소. 그리고 자기의 모든 힘을 다해 나를 멸망시키고 죽이기 위해서 쏟아내고 있소. 전에는 사탄이 나의 죄들을 나의 앞에 제시하고 나를 유혹하여 실망에 빠뜨리려고 노력했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부숴지고 적들은 패했소. 지금 그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소. 교활한 뱀이 나에게 내가 목회활동을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하늘 나라와 영원한 축복을 받을 만하다고 설득하려고 시도했소.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나에게 번쩍이는 화살을 쓰러뜨리고 피하도록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제시함으로써 힘을 주셨소. '네게 있는 것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고전4:7)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 말씀으로 그는 정복되었고, 나를 떠나갔소.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승리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소. 나는 유혹하는 자가 다시는 나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과 잠시 후에는 육체적인 고통이나 마음의 격적 없이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비참한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하도록 축복 받을 자리로 옮겨질 것을 확신하고 있소."

낙스가 죽었을 때에 그의 나이 불과 67세였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로서는 장수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엄청난 일과 엄청난 근심과 걱정이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많은 위험을 겪으면서도 자기의 인생을 평화스럽고 명예스럽게 마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말씀위에 굳게 서고 믿음의 반석 위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공격에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굳게 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굳게 선 사람들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3절의 말씀입니다.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립보교회의 치명적인 결함은 한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시기합니다. 그들은 그릇된 방법으로 경쟁합니다. 심지어 바울까지 경쟁의 대상으로 보고 바울이 갇힌 것을 이용합니다.(1:15) 동일하게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지만 세속적인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러한 그릇된 생각들은 빌립보교회를 분열시키고, 제대로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듭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들입니다. 제랄드 호돈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단순한 두 사람이 아닌 두 부류로 봅니다. 즉 유오디아파와 순두게파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초대교회 안에 흔하게 일어났던 분열중의 하나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은근한 자부심을 갖으나 바울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된 사람들은 철저히 바울을 따랐고 존중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사람들이 갈려 누구는 바울을 좋아하고, 누구는 베드로는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열심 있는 믿음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종의 시기였습니다.

 

마음(φρονέω)’은 빌립보서 안에서 무려 7번이 넘게 사용된 바울의 마음을 잘 드러내 주는 단어입니다. ‘마음(φρονέω)’은 프넨(φρήν)에서 왔으며, 프넨의 뜻은 생각하다’ ‘이해하다는 뜻입니다. 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상황을 분석하여 바른 생각을 갖는다는 뜻을 갖습니다. 즉 이성뿐 아니라 믿음으로 한 의지를 갖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권면하면서 2절에서 유오디아순두개라는 자매들에게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있고, 3절에서는 교회 차원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오디아는 순두개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순두개는 유오디아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는 이들이 복음에 함께 힘쓰던 여인들이라고 했습니다(3).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던 자매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에 있어서 다른 견해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열심과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마음이 갈라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 되지 못해서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성령께서 이미 교회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한 팀입니다. 이 하나됨을 지키는 것,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주님의 명령으로 세우는데 한 마음 한뜻으로 나와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연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을 가슴에 품고 주님의 능력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세상에서 사단의 공격으로 늘 쓰러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의 말씀위에 든든히 서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