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20) 서로를 문안하는 교회 (수요기도회 20210203)
성경봉독: 빌립보서 4: 2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설교: 서로를 문안하는 교회
2010년 8월 5일 칠레의 산호세 광산 갱도가 무너졌습니다. 33명의 광부가 지하 622미터 지점에 갇혔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두려움에 빠졌고, 광부들끼리 많은 갈등이 있어서 치고 받고 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이스 알베르토 우르수아라는 리더의 지시대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질서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서로 인사하고, 격려했습니다. “잘 될 거야. 힘 내!” 이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17일 만에 외부 세계로부터 문안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 살아 있습니까? 건강합니까? 힘내세요. 우리 국민 모두는 당신들을 구출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후 작은 구멍을 통해 산소와 음식이 공급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갇힌 지 69일만에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바깥 세상으로부터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광부들끼리 인사하며 서로 격려했다고 했지요? 그러나 여러분, “잘 될 거야, 힘 내” 그 안에서 나누는 이런 인사가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약간은 도움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인사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땅 위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 인사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전해진 인사는 어떻습니까? “모두 살아 있습니까? 건강합니까? 힘내세요. 우리 칠레 국민 모두는 당신들을 구출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는 그동안 광부들끼리 주고받은 숱한 인사말을 모두 합친 것보다 위대한 인사였습니다. 그 인사 한 마디가 광부들 모두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제. 우린 살았어!!!” 그들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게 진짜 능력 있는 인사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사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말 상대방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인사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을 보면, 천사들이 와서 인사를 전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인사는 위대한 평안의 인사였습니다. 이 거룩한 인사와 함께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칠레의 광부는 땅속 갱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만,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 더 깊은 멸망의 구덩이, 즉 무서운 죄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깊은 죄악의 갱도에서 꺼내 주셨습니다. 칠레의 광부들은 비록 갱도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다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갱도에서 죽을 목숨을 조금 연장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단지 수명 연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한 편지를 마무리하며 끝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에게 보낸 몇몇 편지에서 우리가 발견할수 있는 것은 그는 항상 편지의 끝을 맺으며 서로에게 문안을 할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1절). 그리고 그들에게 문안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22절).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며 편지를 끝을 맺고 있습니다(23절). 주님 주신 말씀을 통해 진정한 평안의 인사를 우리가 깨달으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1~22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문안한다는 것은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서로가 문안한다는 것은 단순히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안부의 개념보다는, 주 안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신앙적인 안부를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는 서로를 돌보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함께 하는 신앙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반드시 서로가 함께 안부를 묻고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주며 공감하며 나아가야 하는 예수님의 몸된 공동체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빌립보 교회의 상황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좋을때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안아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부둥껴안고 갈 수 있지만, 빌립보 교회처럼 서로의 생각이 나뉘어져서 다투고 분쟁이 있는 상황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워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는 그일을 행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주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주님밖에서 살았고 주안에 거하지 않았을때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 문안의 여부를 결정하며 살아갔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 안에 거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화목케하신 주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기분이나 감정에 의해 서로를 문안할수 없고 문안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안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일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인임이 분명하지만 주안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임은 더욱 분명해보입니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그의 곁에 있는 동역자들이 빌립보 교회를 문안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그들을 문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빌립보 교인들은 의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에게 문안하고 안부를 묻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겁니다.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그 관심에 대해서 너무너무 고마워할것 같습니다. 때론 그런 생각을 합니다. 교회안의 지체들 가운데는 어쩌면 세상보다 외로운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말입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지친 손을 잡아주고 흔들거리고 있는 발을 내 발에 함께 묶어 걸어가야 하는데, 누구도 그분의 손과 발이 되려고 하지 않으니 분명 외로울겁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외롭지 않을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빌립보 교회가 볼 수는 없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함께 아파해주고 공감하며 빌립보교회의 안부를 물어주고 기도하고 있기에 외롭지 않을거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만큼 다시 일어서는 큰 힘이되는 도전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끝인사를 합니다. 23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이제 사도바울은 그들을 축복합니다. 축복의 내용은 ‘은혜가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가 그들 각각의 심령가운데 있기를 소원하며 있게 될것을 확신하며 선포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바램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저 그 약속을 선포해주는 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지체들에게 이런 축복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을것입니다. 먼저 당신의 심령에 가득 넘치게 될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와 교회에게 분명히 그분의 은혜가 넘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축복하며 각각의 삶에 터전으로 서로를 파송해줄수 있다면 그일을 통해 그 지체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흔들리는 우리들을 붙들어주시고 격려해주실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근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고 기쁨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고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인생을 과감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쳐진다면 우리는 모든 것에서 차이가 나는 명품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흠없고 온전하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늘 그리스도 안에 서있고, 그 분의 은혜로 강화되고 유지된다면 어찌 흔들리는 나약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빌립보서를 써내려가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그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안에서 놀라운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축복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흔들림없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성도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서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