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행 5:29~32)
성경본문: 사도행전 5 : 29~32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설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때로 만용을 용기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린 아이가 시퍼런 칼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칼날을 만지다 손을 다치는 것은 지식이 없는 이유로 생긴 만용의 결과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칼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근거한 것입니다. 만용은 상황에 따라 금방 두려움으로 바뀌는 변덕입니다.
그러나 용기는 먼저 나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지식에 근거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험악할지라도 연약한 나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에 굳건히 서는 것이 용기입니다.
예수님 잡히시던 밤에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믿고 만용을 부리며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연약한 계집종 앞에서도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베드로가 당시 유대 최고권력기관인 산헤드린공회의 서슬푸른 위협에 굴하지 아니하고 선언하는 용맹한 한 마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니, 질투하는 사두개인 당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인데, 지금 유독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화가 나고 이런 하나님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 사도들은 더욱 더 하나님께 순종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사탄이 사람들의 질투를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지를 보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앞 절, 12-17절은 사도들을 통해 일어난 많은 표적과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통해 일어난 기적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초대 교회 공동체에 들어옵니다. 날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꾸 모여듭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제자, 갈릴리 촌사람들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인기가 높아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꾸만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자, 대제사장들과 그 무리들 안에 질투심이 가득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을 방치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전에도 제자들을 불러다가 겁을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자꾸 성전,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솔로몬 행각에서 기적과 예수의 도를 전합니다. 질투심에 가득한 대제사상과 그의 무리들은 분노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다시 옥에 가둡니다. 질투는 분노를 낳고, 분노를 폭력을 낳습니다. 만약 질투하는 자가 힘이 있는 자라면, 자기들의 힘을 사용합니다. 바로 종교적 지도자이고, 사회적, 정치적 권력자였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힘과 권위를 사용해서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죄목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금한 예수의 복음을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죄목은 성령님이 그들의 통해 기적을 일으키는 행위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의 질투심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수없이 읽었던, 구약 말씀.. “너희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나의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리라...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 61:1~9)말씀을 기억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들의 질투심은 무엇과 똑같았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질투와 분노가 이제는 예수의 제자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구약성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사울 왕이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고, 다음의 새로운 왕이 다윗인 것을 알았습니다. 사탄이 들어가 사울 왕에게 시기 질투를 심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무슨 짓을 했습니까? 바로 다윗을 죽이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다 이러한 과정을 겪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다 같습니다. 자멸이고 멸망입니다. 결국 악한 일만 행하고 하나님께 처참히 버림받는 것입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이제 사탄이 그 틈을 타서 서서히 자근자근 사람 스스로 죽어가게, 망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탄의 공격을 막아야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29절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또 한번의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자, 베드로와 그 사도들이 또 한번 주의 은혜를 입어 옥문이 열려 다시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도, 사탄이 아무리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막아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어떤 일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 5:20)라는 주의 사자의 명령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보내어, 사도들을 풀어준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사도들은 당연히 또 나가서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들을 잡으러 간 부하들이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행 5:25)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을 대제사장들과 사도개인들이 무시하고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이 사도들을 강제로 데리고 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함부로 박해하려 한다면, 백성들이 자신들을 돌로 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자들입니다. 사탄의 어둠의 세력에 눌리고 짓밟히고 두려워 떨어도, 생명의 말씀을 듣는다면,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서 살아서 용기 있게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사탄의 억압에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들입니다. 세상이 힘듭니다. 사탄이 악한 영이라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신앙생활하면서 세상에 속하여 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사탄을 경계해야 하나 무서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만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계속 복음을 전합니다. 30~32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어떻게 복음이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되었습니까?
베드로와 사도들이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람을 두려워하고 따르는 자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은 멈추지 않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권력 가진 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멈추지 않고 전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는 말씀이 있습니다. 순종!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종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30~32절에 말한 것입니다. 짧게 말하지면, “너희들이 예수를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죄 사함을 베푸셨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요. 성령님도 이 일의 증인이다.”
순종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위협 앞에서도, 때론 경제적인 손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성령 부어주시고, 그 성령님이 또한 복음을 증거하십니다. 순종은 성령님이 일하시는 길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질투심을 통해 은밀히 공동체 안에 숨어들어왔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기에 두 가지 직업이 있습니다. 둘 다,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직업은 여러분은 2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1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고, 두 번째 직업은 여러분이 4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떠한 직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두 번째 직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너무 쉬운 질문인가요?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적게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남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심리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낫고 싶고, 내가 많이 받을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받는다면은 참을 수 없는 무엇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것은 오로지 자신이 전문가이고 특권이라고 여겼던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이용한 것은 영적으로 사탄의 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들은 예수님에게 뿐아니라 사도들에게도 질투하였습니다. 이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해야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들의 질투심을 통해 사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복음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그 복음은 계속해서 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시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 가운데에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삽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베드로와 그 사도들처럼 우리들도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