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진짜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 8:10~12, 주일예배 20210926)

온누리선교 2021. 9. 26. 08:13

성경말씀: 요한복음 8:10~12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설교: 진짜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진짜 같은 가짜도 보고, 진짜이긴 한데 의심이 가는 진짜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공인기관들이 생겨났는데, 특히 기네스북(guinness book) 같은 세계기록공인기관들은 늘 그 이름의 신뢰성을 걸고, 까다로운 조건으로 매해 기이한 기록들을 자신들의 기록서에 넣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기관의 명성을 믿고 그 기록을 인정하고 거짓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드립니다.

왜 오늘 우리는 가짜냐 진짜냐를 두고 고민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육신의 인생은 단 한번뿐이고, 세월을 화살과같이 빨리 흐르며, 그 안에서 방황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참되신 예수님 그리스도의 진실하심과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으시고, 영적인 분별력으로 큰 은혜받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10~11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르면 간음은 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판단하실 것인가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어떠한 사람도 그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8:7)

맞습니다. 그 어떤 누구가 죄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손에 든 돌은 버리고 그 자리에서 가버렸습니다. (8:9)

율법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만지신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의미를 알게 하셨고, 그 여인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시험도 멋지게 넘어가시었고, 또 하나님의 지혜로 간음한 여인에게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행하신 뒤, 예수님의 진실을 그대로 담아 자신을 무조건 거부하는 바리새인들과 반신반의하며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진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날 랍비가 말하기를, "진리는 길에 널려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그렇게 흔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합니까?" 랍비는 다시 대답합니다. "그거야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돌을 주울 수가 없단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허리를 굽힐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그들의 구원자를 알아보는데, 너무나 교만하여 조건을 붙이고, 과정을 붙이고, 명분을 붙이다 보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분명한 많은 증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마음에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을 때 무리들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을 던졌던 것과도 같습니다.

 

요즘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어 방과후 프로그램에 많은 러시아계 부모님들이 우리 교회를 찾습니다. 그들은 우리 교회의 프로그램을 마치 고려인문화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나 학원 프로그램으로 오해하여 마리나에게 문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이고, 교회의 자녀들을 위해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의 예산지원이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님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사역을 비디오로 보여주어도 아이들이 이렇게 한국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것을 보니 놀랍다!“라고 할 뿐 주일에 교회예배를 참석하고 입학원서를 쓰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 답을 압니다. 하나님도 알고, 교회도 알지만 바리새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믿을 존재가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내가 능력이 없다면 난 어쩔 수 없어!’라며 포기하는 인생을 사실 겁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다면 진짜 능력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말씀가운데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짓되다는 바리새인들에게 응하여 말씀하시고 행하신 예수님의 모든 증거는 참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의 참 빛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었으나 인격적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입술로는 하나님을 많이 언급했으나 그들은 기도와 말씀을 통한 교제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하나님과 함께 말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고 입술로는 거창하게 하나님을 말하나 실제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그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지 않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습니까? 참된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습니다. 그 지식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이르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만듭니다.

 

이런 예수님을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없었을까요?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은 신령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이런 일은 성령이 함께 하셔야 깨달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고전 2:14)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도 바리새인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종종 저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만 한계에 부딛칩니다. 그러면서 저는 좋은 설명만으로 그리스도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증거할 때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도록 간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전할 때 내 논리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말보다는 행실로, 논리보다는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많은 거짓들 속에서 참된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진리를 가장한 거짓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짓은 처음에는 아주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때론 사람들이 거짓을 참된 진리로 생각하여 속아 넘어갈 만큼 멋지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진리와 거리가 먼 것들은 점차적으로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경우의 거짓은 처음뿐만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진리인 것처럼 가장하여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수많은 이단들이 사용했던 방법과 그 마지막 결과의 모습은 결국 거짓은 진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더 예수님화시켜 가공된 형태로 인간의 구미에 맞게 논리적으로 만들어 버린 많은 이단들이 망하고, 오직 우리가 그 안에서 굳건히 예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거짓을 멀리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뭐가 진짜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아시기 위해서 나 자신의 목소리는 작게, 성령님의 음성은 더 크게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마을에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불쌍한 고아 소년이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마을 장터에서 구걸을 하던 소년에게 하루는 어떤 사람이 큰돈을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세상엔 너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분명 너같이 불쌍한 아이들을 이렇게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으실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그러자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 분명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저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말라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실 거예요.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마음속에 성령의 감동이 떠오르면 우리는 그것에 순종하기 보다는 감추려고 합니다. 현실적인 이유들을 갖다 대며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는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따를 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에 민감하십시오. 그리하여서 바리새인들이 오늘 말씀에서 교만한 죄를 저지르지 마시고, 빛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귀한 생명의 복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혼탁한 세상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우리들을 주님께서 이끌어 이 자리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영 내려주셔서 주와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어, 교만하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이 세상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