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12) 주의 날을 기다리자! (수요기도회 20211013)

온누리선교 2021. 10. 12. 15:40

 

성경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1~1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설교: 주의 날을 기다리자! 

 

199210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한 다미선교회라는 이단을 기억하십니까? 이 다미선교회가 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지요. 종교 문제인데도 9시 뉴스에 매일같이 다미선교회와 휴거 문제가 보도되었고 급기야 법원이 다미선교회를 이끌어온 이장림 목사를 시기혐의로 구속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공언한 1992102824시가 지나고 휴거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미선교회는 해체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다미선교회가 끼친 나쁜 영향이 너무도 컸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수많은 성도들이 이 이단 사상에 미혹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온 정든 교회를 떠나고, 그 가운데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고, 가정을 팽개치고 다미선교회에 들어가거나 아예 산으로 올라가 기도에 전념하며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신앙이 파괴되고 인생이 파괴되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가정이 깨지고 가족이 파탄을 맞았습니까? 과연 이 분들이 다미선교회가 해체된 후에는 다시 교회로 돌아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가정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했겠습니까? 그러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된 인생, 파탄을 맞은 인생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나아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공격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신났습니까? “거봐라, 예수 믿는다고 저 난리를 친다, 미친놈들이다, 당신도 교회 가지 마라소리를 예수 안 믿는 남편이나 가족, 주변 사람에게 들은 분도 여러분 중에 많을 것입니다. 이단인지 아닌지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모든 교회와 기독교를 싸잡아 비난하고 공격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는 점은 공감이 가지만 이렇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이 망하는 이런 일은 주님께서 결코 바라는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주의 재림의 날을 위해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성령충만하게 주의 날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도둑 같이란 정해지지 않은 시기에 불현 듯 임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예언자라도 주의 재림의 정확한 때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한 일은 하나님의 고유한 소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와 시기에 대하여 지나치게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되며 또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것은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역사를 통해 살펴 보면 실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이 일어날 년, , , 시를 확정적으로 발표함으로써 많은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12:3) 경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헛된 욕구과 미혹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참 인간이 미련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때와 시기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시기에 대해서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주의 날의 징조로, 우선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고(24:14),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11:25), 또한 그와 더불어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재림의 선행 조건으로 언급합니다.(11:25,26) 또한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할 것을 말합니다.(24:23,24) 그리고 말세에는 전쟁, 기근, 지진과 같은 대재난이 번번하게 발생하며 난리의 소문이 날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는 대박해가 일어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24:6-11).

어떤 성도들은 자신은 오직 교회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지금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교회일 열심히 하고, 자기일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내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는 우리들에게 이 시대의 징조들을 살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지금 바른 길을 가려면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고 바른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기원 후 70년 로마에 대한 유대인 반란 중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유대들은 몰살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신대로 펠라(데가볼리의 소도시)로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하고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도 성령의 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에 거의 다다랐기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세가 다다오는 상황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3~4절의 말씀입니다.

3.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4.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데살로니가는 그리스 마게도냐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주의 수도이며 로마 총독이 주재하던 중요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테살로니키라고 불리는 이 항구도시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이어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크고 번화한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같은 대도시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과 실루아노(줄여서 실라라고도 부름)의 전도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지난주일 말씀 나눈 것처럼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설립한 바울과 실라 일행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후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 일행은 유대인 회당에서 전도한 결과 유대인과 경건한 헬라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이를 통해 데살로니가교회가 설립되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도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작당을 해 소동을 일으키고 바울 일행을 고발하는 바람에 그들은 베뢰아로 피신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늘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교회가 확장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합니다. 결국 복음전파와 전도는 마귀 사탄과의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이렇게 부랴부랴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된 바울은 꼭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하기 원했지만 뜻대로 안 되어 아들과 같은 제자인 디모데를 대신 보내는데 이 과정이 데살로니가전서 217절부터 310절에 걸쳐 나옵니다. 잠시 이 부분을 펴서 함께 살펴봅시다. 217~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얼굴()로는 데살로니가를 떠났지만 마음으로는 떠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얼굴 다시 보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사탄이 막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32절에 보면 디모데를 대신 보내서 박해와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에 굳건하게 서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려 했는데 디모데가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그 좋은 소식이 뭐라고 말합니까?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랑 위에 굳건히 서서 믿음 생활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좋은 소식이지요. 그리고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바울 일행을 진심으로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도 전해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너무도 기뻤습니다.

지금 바울이 너무 궁핍하고 환난 가운데 있지만 이 소식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비록 자신은 가난하고 배고파도 자녀가 잘 되었다는 소식, 자식이 잘 산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든 힘든 것을 다 잊고 너무 행복하고 기쁜 것처럼 영적인 지도자들은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영적인 자녀라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믿음생활 잘 하고 서로 사랑하며 지낸다는 소식만 들으면 힘이 나고 너무나 행복한 법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소식을 들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더불어 데살로니가교회가 겪고 있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도 적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재림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은 재림신앙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5~10절의 말씀입니다.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종말이 있고 재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를 붙여라 권면합니다. 여기서 흉배'란 목에서 허리에 이르기까지 가죽이나 두텁게 누빈 천 혹은 놋쇠나 철로 만들어 대적의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가슴을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병사에게 흉배는 그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필수적인 방어 장비입니다. 그리고 병사가 속한 군대의 앰블럼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과 사랑입니다. 믿음이란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내맡기는 결단을 말합니다. 사랑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입니까? 사랑은 어려운 때를 극복하는 묘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크고, 지속적으로 몰려 온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 교회 안에서 교우의 사랑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의 힘이요, 방패요 자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이 우리의 모든 삶의 전부입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했습니다. 그리스에서 투구는 머리만 보호하는 것이 아닌 얼굴 안면부 전체를 보호하는 중요한 보호장구입니다. 소망이 없는 전투는 패배한 전투입니다. 전쟁에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소망입니다. 소망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하나는 현실의 구원이요. 또 하나는 미래의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의 투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이렇게 죄로 가득한 어두운 곳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즉 성도들은 자신을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대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11절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피차 권면은 서로 위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의 교회공동체를 크게 위로하는 지체들이 됩시다. ‘피차 덕을 세우라는 말씀은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서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 서로 위로하며 삽시다. 서로 서로 영적인 성장을 위해 끝까지 도와줍시다. 신약, 구약성경 속에는 많은 부분이 재림의 약속에 관한 기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17권의 책들 속에서 1845번 재림에 관언급이 있으며, 전체 신약성경 중 260장의 내용 속에 318번 재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매 30절마다 한 번씩 재림의 약속에 대한이야기가 나오는 셈입니다.

신약성경 27권 중 23권속에 재림의 약속에 대한 기사가 있는데 나머지4권 중 3권은 특정한 제목 아래 보낸 개인적인 편지를 담은 책이고, 마지막 한 권은 갈라디아서로 사실상 예수님의 재림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처음 이 땅에 오심을 예언했던 기사와 다시 오심을 약속하는 내용의 비율은 1:8정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반드시 주님의 재림은 성취됩니다.

주님의 날에 가장 복된 자들로 하나님 앞에 섭시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초림이 성취되었듯이, 주님의 재림도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성취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은 갑작스럽게 홀연히 이루어진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의 삶에 충실하며, 영적으로 항상 깨어 근신하는 믿음으로 삽시다. 이 놀라운 은헤가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다시오마 약속하신 주 예수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언제라도 주님 오실 수 있고 언제라도 내 인생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준비하고 살겠습니다. 그 재림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되 재림 때 주님 앞에 서서 어떤 부끄러움도 아쉬움도 후회도 없는 준비된 삶이 되게 하옵시고, 오늘도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