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강해 8) 평강의 주 안에서 사는 것 (수요기도회 20220112)
성경말씀: 데살로니가후서 3:16~18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설교: 평강의 주 안에서 사는 것
김영민 목사님의 [친구]라는 시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평안하냐!”
주님 부활하시고 첨 하신 말씀
일하라 선교하라
아니 하시고
제자들에게 첨 하신 말씀
“평안하냐!”
최고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사명에 충실하며, 복음에 반응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 있다면 바로 ‘평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것은 “평안”이었습니다.
그런데 “평강” 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진정한 평강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평강”이 무엇인지 함께 보시고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16절의 말씀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찌어다.
일반적으로 평강이란, 모든 일들이 원하는 대로 잘되어갈 때 느끼는 잔잔함, 고요함, 기쁨, 만족 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들은 진정제를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낮잠을 자거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확신을 주는 말을 들을 때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평강은 겨우 그런 정도의 평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사람의 수준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평강은 어떤 것이든 깨어지기 쉽습니다.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이 주는 평화는 상황이 잘못되거나 불안해질 때 즉시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삶의 여러 상황에 의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천국이 우리의 목적지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강을 늘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가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이 평강으로 우리는 네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평강은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점입니다.
먼저 “평강의 주께서 친히”라고 말씀합니다. “친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본성 중에서도 아주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속성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 은혜, 자비, 공의, 거룩, 지혜, 진리, 전능, 전지함, 불변, 영원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평강 역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평강이십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있는 온전한 평강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트레스를 절대 받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불안해하지 않으십니다. 걱정하지도 않으시고, 의심하지도 않으시며, 두려워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런 평강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그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평안은 “관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생각나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우리가 함께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입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상관없이 진실로 주님께 당신 자신을 완전하게 맡겼는가 하는 말입니다.
‘평안’하면 늘 저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매우 좋아서 여러분과 참 많이 불렀던 찬양입니다.
무디와 함께 사역했던 평신도 스패포드(Spafford)가 시카고 대 화재에서 재산을 잃고, 여행 중이던 자식들을 바다에서 다 잃고 나서 그 죽음의 바다에서 고백했던 찬양 말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최고이신 그분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도, 큰 풍파로 무섭고 험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평안하지 않은 우리가, 번잡스러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평안하뇨?”
그러므로 둘째로, “평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평강은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인 동시에 또한 선물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할 때,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즉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잘해서, 또는 일한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속한 사람들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자꾸 떠난다고 하시니까 그것에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 14:27)
염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화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거짓된 평화를 통해 자신들의 염려를 없애보려고 시도합니다. 이사야서 57장에 보면, 하나님은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당신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평강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선포하십니다(57:19-21).
참된 평강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른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셋째로, “평강은 계속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어떤학자는 "샬롬"를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것" 이 평안 안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여호수아 리프맨이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인 '마음의 평안(Peace of Mind)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젊은 주인공이 어떤 노인을 찾아가서 자기의 소원을 말합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젊은이가 말합니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미모이고, 넷째는 재능이고, 다섯째는 권력이고, 여섯째는 명예입니다.”이 소원을 말하는 청년을 지긋이 지켜보면서 이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청년! 그러나 평안이 없이는 아무 것도 즐길 수가 없다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평강은 선물인데, 그것도 한두 번 주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때마다 일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마다”라는 것은 평강이란 우리에게 언제나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보면, 이것은 중단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해줍니다. 하지만 평강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중단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당사자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육신에 굴복하여 평강의 흐름을 끊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갖 염려에 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앞날에 대한 불안감, 질병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할 때 행복해진다고 할 것 같습니까? 성경에서는 어떻게 할 때 진정한 평강을 누린다고 할 것 같습니까?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눈을 세상으로 돌릴 때, 평강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염려를 누립니다.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초점을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 맞추고 이웃을 섬길 때, 진정한 평강을 누립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좋은 것인가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은 상황을 뛰어넘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또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때마다 일마다” 즉 ‘언제나, 어느 방식으로든지’ 평강을 누리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평강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나 어떤 방식에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강은 어떤 인간관계나 환경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틀림없이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모든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빌리 그레함 (Billy Graham)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남미의 안데스 산맥 위로 비행을 하던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안데스 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변화가 심한 기류가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그곳에 헬기가 추락해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air pocket)를 만나 500 feet 이상 뚝 떨어지며 급강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며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놀랍게도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는 비행기가 쿵 떨어질 때마다 오히려 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20분쯤 후에 비행기가 안정을 찾고 날아가게 되자 사람들이 그 아이에게 질문했습니다. “얘, 넌 무섭지 않았니?” “아니오,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다들 무서워하는데 어떻게 너만 무섭지 않았니?” “그건요, 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내 아빠거든요.” 이 아이는 조종사인 자기 아빠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 무서운 상황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평강의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상황과 관계없이 누리는 평강이 진짜 평강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러한 평강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 마지막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18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찌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고, 염려를 극복하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무한대로 주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시고 날마다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평강의 주님! 주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지속적인 평강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능력의 주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믿음위에 굳건히 서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