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강해 3) 바른 교훈 ( 수요기도회 20220126)
성경말씀: 디모데전서 1:3~11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설교: 바른 교훈
전에 어떤 나라에 젊은 재상이 나이 많은 왕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아직도 젊은 몸인데 유혹에 들지 않는 좋은 무슨 교훈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이 가만히 잠깐 생각하더니 그 옆에 있는 신하를 불러서 얼른 안에 들어가서 금 잔에 기름을 가득 부은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젊은 재상에 주면서 "자, 이 금잔에 기름이 가득하지 아니하냐? 이 가득한 기름을 가지고 이 궁전에 나가서 아무 거리, 아무 모퉁이, 다 돌아오되 한 시간 이내로 다 돌아오라. 돌아올 때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안 된다. 한 방울이라도 그 기름이 흘러내리게 될 것이면 곧 자네 목을 베겠노라. 그런 줄 알고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곧 다녀와라." 그러면서 그 뒤에는 군인 한 명에게 칼을 뽑아서 뒤를 쫓아가게 했습니다.
한 방울을 흘리면 목을 자른다고 하니까 이 젊은 재상이 금 잔에다 기름을 가득 담아서는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한 시간 안에 돌아오라고 하니까 서둘러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그 모퉁이를 돌아서 어느 거리를 돌아서 겨우 한 시간 만에 다시 가지고 왔습니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아니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차서 가지고 돌아 왔단 말입니다.
"한 방울도 안 흘렸는가?" "네 안 흘렸습니다."
그때 왕이 묻기를 "그 아무 거리에서 아무 상점들을 보았나? 거리를 가다가 아무개를 보았나? 어디쯤 가면 누구가 있는데 보았나?" 물어 보았습니다. "그만 못 보았습니다." "아니 못 보았다니, 지나오면서 못 봐?" "이 기름 잔만 보려고 다른 것을 볼 사이가 있어야지요." 그때 노 왕이 웃으며 하시는 말이 "그러면 자네 유혹에 들지 않는 비결을 배웠나?"
우리가 다 배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 가운데 제일 좋은 비결은 우리가 열심을 품어 하나님이 내게 맡긴 사명을 부지런히 하고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나, 내 가정에 있어서나, 내 직장에 있어서나 내가 맡은 책임을 충성되게 부지런히 전 정력을 다해서 하는 가운데 자연 유혹이나 시험에 들 사이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공격이 언제든지 최선의 방어라는 전법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고 또 교회 안에서 이단사상에 ᄈᆞ지지 않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직 복음, 오직 예수만 바라보는 법을 오늘 이 시간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6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2년 정도 옥살이를 하다 석방되어 디모데와 함께 아시아에 있는 에베소에 왔다가 사도 바울은 다시 유럽지역인 마케도냐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떠나면서 디모데는 에베소에 머물게 하고 그에게 부탁한바 있었는데 다시 마게도니아에 도착하여 마게도니아로 부터 편지를 보내 디모데에게 다시 부탁하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이 아닌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막으라는 것입니다.
바른 교훈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따라 복음을 듣고 믿어 죄 사함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또 죄 사함 받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훈이란 믿음을 낳게 하거나 구원을 낳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말다툼만 낳게 하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이야기라 했습니다. 그 당시의 신화란 어떤 사상이나 철학, 또는 세상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 자랑이나 자기 과시 용이라 하겠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알며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떠벌림으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스스로 높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족보란 자기가 누구의 후손이라는 자랑으로 자기 선조가 위대했기 때문에 자신도 자동적으로 위대해지는 것 같이 족보를 자랑하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려하는 풍조를 지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서 믿음을 낳게 하여 구원을 이루게 하는 복음에 자신들의 의견을 더하거나 빼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나 또는 세상 철학이나 신학 이야기 또는 족보이야기로 재미보는 자들을 교회에서 중지시키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7절에서 11절의 말씀입니다.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에베소 교회에는 또 율법을 강조하면서 율법을 잘 아는 것 같이 남에게 율법을 가르치려는 자들이 있는데 실상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스스로 모르는 자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란 율법을 거스리는 모든 자는 하나님 앞에 다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임으로 죄를 깨닫게 해주는 율법 자체는 선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죄인인 인간들이 그 죄에서 사함 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복음을 받아드리도록 하는 몽학 선생의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역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 같이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가르치고 있는 율법의 기능이나 능력도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와, 불순종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하는 자와 죄인들이며, 거룩하지 아니하는 자가 죄인임을 들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또 망령된 자와 아비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자와 음행자와 동성연애자며, 또 도적질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바른 교훈을 거슬리는 자들이 다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인간들이 모두 죄인임을 판정해 주는 도구이지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는 도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죄인들은 복음을 통해 구원받도록 하나님께서 구원의 경륜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믿는 믿음에 따라 구원받는 복된 소식에 맞는 것은 바른 교훈이려니와 이 복음에 어긋나는 어떤 가르침도 다른 교훈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변론이나 일으키게 하는 신화나 족보 이야기를 위해 보냄을 받은 자도 아니요 또한 죄만 깨닫게 해주고 죄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율법을 가르치도록 보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받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을 분별할 줄 알고 바른 교훈 안에 뿌리를 내린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주님은 먼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셨습니다. 사실 주님이 부르시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이 오셔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러도 소용없고, 가르쳐줘도 깨닫지 못하며, 자기 믿음으로, 자기 열심으로, 자기의 인간적인 사랑으로 살다 갈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잘 믿는 것 같고, 아무리 열심히 믿는 것 같고, 사랑도 꽤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러셨습니다.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 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만 고쳐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뒤집으면,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도 못 고쳐주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무엇으로 고치실까요? 그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제물과 내 열심과 내 노력과 내 믿음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영혼이 치료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인인 것만 인정하면,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쳐주시고,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물결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목적이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일찍이 이렇게 증거한 바 있습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2:4). 여기서 믿음이란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인정할 줄 아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이 의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사람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그리 유명한 말씀은 아니었지만, 바울이 재차 인용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롬 1:17). 여기서 믿음이란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해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나, 바울 사도의 말은 모두,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려고 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인정하는 것이요,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것이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간단한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허물이 많은 사람인지 시인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무가치한 사람인지 통애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몹쓸 죄인인지, 내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무거운 것인지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치료해 주시고, 우리의 삐뚤어진 것을 고쳐주시며,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생명력으로 풍성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만나를 먹었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주님의 말씀의 은혜를 한없이 내려주시어 주님의 구원을 날마다 맛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