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을 본 사람들 (행 2:5~8, 주일예배 20220605)
성경본문: 사도행전 2:5~8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설교: 성령강림을 본 사람들
어떤 분이 예수를 믿고 난 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방언”을 경험했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뿐인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구원을 위해서 늘 기도했는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녀의 동생에게 무슨 일로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엉겁결에 된 일이라 그녀가 말을 중단시키려고 했는데, 하지 못하겠더랍니다. 그녀의 방언이 끝난 후, 동생이 “누님! 뭐라구요? 뭐라구요?” 말하면서 놀라더랍니다. 그래서 그녀가 말을 했습니다. “미안하다. 그걸 방언이라고 하는데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냥 성령 받고 난 다음 내 입에서 나오는데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너에게 전화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전화에 방언이 나왔다. 미안하다.” 그러자 그가 그녀에게 “아니 미안할 것 없어요. 누님이 분명한 이탈리아 말로 나보고 뭐라고 말씀했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너희 죄를 용서하고 너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니 더 지체하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 분명하게 이탈리아어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누님은 이탈리아어를 한글자도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탈리아어를 이렇게 잘합니까?” 그래서 그녀는 기뻐하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어찌 알 수가 있겠느냐? 그걸 방언이라고 한단다.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서 방언으로 말한 것인데 나는 못 알아들어도 네가 알아들었으니 좋구나.” 이런 일이 있은 후로 그녀의 동생이 그 누님께 일어난 기적을 보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언은 하는 자에게도 듣는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약하고 인간적이었던 제자들을 세계선교를 위해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하심을 우리가 볼 수 있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예수믿는 자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6~8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때, 방언의 역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보기에는 갈릴리 사람이 분명한데 언어는 천하 각국의 말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 무식한 사람들이 확실한데 어떤 유식한 언어학자들보다 더 유능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큰일을 예언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만큼 이었냐면, 많은 사람이 모여 소란할 만큼 놀랐다는 것입니다.
6절에 “큰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 듣고 소동하여” 이 말씀 가운데는 사람들이 놀랐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웬만큼 놀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소동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7절에 “놀라 기이히 여겨”의 ‘놀라’라는 말은 ‘엑시스탄토’라는 말로서 ‘정신이 나가다’, ‘미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방언하는 제자들을 본 사람들이 놀라도 매우 놀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조차 이런 일에 놀라워했을까요? 성령께서 주관하셔서 그 모임을 이끌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그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성령 충만의 역사가 언어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소망함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제가 러시아어 방언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한국어 방언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 ‘시골농촌봉사’로 작은 시골교회에 학과 친구들과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의 새벽예배는 항상 아침 5시였습니다. 낮에 일하고, 밤늦게까지 토론했던 저와 저의 친구들은 정말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5시마다 꼭 새벽기도회를 가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그 마을 80세 할머니의 기도를 들으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꼭 새벽종을 울리시고, 목사님 오시기 전에 가장 먼저 교회문을 열고, 기도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후, 그녀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정말 그 깊은 시골에서 들을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영어 방언이었습니다. “Heavenly father, you are almighty, I believe you are listening my prayer! you are so good!”
그 할머니는 초등교육도 못 받아서 한국어를 쓰지도 못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성령의 증거가 우리 신학생들 앞에 보였습니다. 그 할머니의 놀라운 방언이 계속되면 그녀의 뒤에 앉아 우리가 모두 성령 충만을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이런 성령충만을 경험한 사람들 즉,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사람들을 본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행 2: 11-13)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늘라고 신기해하기는 하지만 믿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놀라고, 이 소동의 주인공들이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었다는 사실을 신기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두 번째 반응은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하나님의 큰일’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능하신 일들’임을 그들은 압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120명이 모두 배워본 적이 없는 각 나라의 언어로 유창하게 말을 하는 사실을 하나님의 작품 이외에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고, 오직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백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세 번째 반응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면서 제자들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술에 취하였다’라는 것을 NIV 성경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메시지 성경은 ‘싸구려 술에 취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술은 묵은 것일수록 더욱 비싸고 맛이 좋습니다. 그러니 ‘새 술’은 덜 성숙한 값싼 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사람의 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그것을 악의적으로 ‘별일이 아니라는 듯, 놀랍지도 않다는 듯’ 깎아내리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싸구려 술에 취했다고 깎아내린다고 해도 제자들이 땅끝을 향해 복음 들고 나아가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36절에 보면, 그날 하루에만 3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생명 역사 앞에서 사람들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놀라기는 하지만 믿지는 않는 사람, 하나님의 역사를 고백하며 믿는 사람, 그리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악의적으로 헐뜯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지 않음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해 공작이 있다고 물러서면 안 됩니다. 주님의 증인은 박해의 위협에도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의 권능으로 방언하는 능력을 보아주신 것입니다.
1877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존 로스라는 분이 조선에 오는 선교사들을 위해 조선어교본을 만든 것이 있습니다. 에든버러에서 제가 유학할 때 이 조선어교본을 대학 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보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존 로스는 이렇게 중국선교사였지만 인삼 장수들과 고려문으로 왔다 갔다 하는 조선인들을 보고 복음의 열정에 불타서 조선인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서 첫 한글어 언문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1882년 누가복음을 완역했고, 이것은 최초의 한글어 성경이었습니다. 이후 고려문을 왔다 갔다 하던 보부상 서상륜은 1884년 존로스에게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함경도에 설립하게 됩니다. 이렇 듯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는 것은 존 로스 선교사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의 모습은 바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전하고 전도된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함께 알게 된 “오순절 성령강림”은 복음을 전하라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은 각 나라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였고 그래서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이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주의 복음을 우리도 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성령 받은 자로서 주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 안에서 살아갈 때 성령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헛된 성령의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용사로, 하나님의 말씀 선지자로, 주의 복음 전도자로 이 세상에서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진정한 성령을 충만케 받아 축복받는 인생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