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고전 6:19-20, 주일예배 20220619)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설교: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알리루예바가 1969년 4월 21일에 미국으로 망명을 한 사건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공산주의권 최고 권력자의 딸인 그녀가 망명한 것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만나고 나서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존귀한 인간들이 서로 사상이 다르다고 미워하고 피를 흘리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인간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 개인으로 존중받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소련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스탈린이 국가적, 역사적으로 매장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부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아버지의 명성에는 누가 되더라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망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와 가치가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2:7에 보면,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범죄한 하담이 주어진 심판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흙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모두 흙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운명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병마로, 사고로, 심지어 우연히 죽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육신을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이라고 말입니까?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몸은 값으로 산 “성령의 전”입니다.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육신이 왜 "성령의 전"이 되는지를 함께 아시고 그 안에서 지혜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9~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보르네오 섬의 네펜데스은 벌레를 잡아먹는 명수로 꼽힙니다. 네펜데스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벌레를 유인합니다. 그 꽃잎의 아름다움에 취한 벌레가 꽃잎에 끌려드는 순간 벌레의 목숨은 끝장이 납니다. 특수한 소화액을 내뿜어 벌레를 녹여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러한 네펜데스가 없다는 보장은 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마냥 화려하고 풍기는 냄새는 더 없이 향기롭지만 이웃을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방종”입니다. 유혹에 빠진 사람은 그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육신은 욕정의 노예가 되어 사망에 이르는 음행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음행은 영혼을 죽이고, 이성을 마비시키며, 육신을 타락시킵니다. 음행하는 자는 살아도 죽은 자입니다.(딤전5:6)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음행을 저질러서 다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는 죽음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이상하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하나님께 붙어서 살아야 하는데, 세상에 붙어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세상과 하나님 나라는 생활양식이 다릅니다. 불의한 세상은 몸이 중심이고, 몸에 모든 가치를 둡니다. 몸에 쾌락을 준다면 음행도 피하지 않고 즐깁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십니다. 땅에서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령의 전으로 삼고 통치하십니다. 주님과 우리는 연합된 '한 몸'이고,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로서 주님과 우리는 한 인격체를 이룹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가해도 우리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 해서 음행하면 음란한 세력에 얽매이는 인생이 됩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자기 몸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자유로운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유를 받는 은혜를 받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미국에 '히티 그린(Hity Green)'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미 191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 사상 최대의 구두쇠'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할머니는 가스값이 두려워 평생을 차가운 오트밀을 먹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들이 다리에 상처가 났는데 치료비가 아까와 치료하기를 미루다가 결국은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통장에는 1억불이 예금되어 있었습니다. 억만 장자가 극빈자로 살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롬 3:23-24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사람이 영광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그럴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시고 죄 없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죄가 나오는 몸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에 의해서 나의 전부가 죄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모든 죄를 덮으시고 거룩한 자로 여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렇게 우리 몸은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의 영광과 존재 가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 자체가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죄라는 것을 알 때 그리스도의 피로 나를 사시고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붙들리는 것이고, 죄로부터의 해방을 기뻐하며 한 순간도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사는 것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며 성령의 전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있었지만 진정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유명한 사람 한 명을 소개하겠습니다.
28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정치범으로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 후 8개월 만에 사형 언도를 받고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사형 집행관이 마지막 유언을 물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사형 집행장 건너편의 교회 지붕 위 십자가에 반사된 햇빛에 그의 눈이 부셨습니다. 그 때 황제의 특사가 황급히 왔습니다. 사형을 중지하라는 황제의 특명이었습니다. 몇 초만 늦었더라도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수년에 걸쳐 시베리아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시베리아로 가던 중 도스토옙스키는 성경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유배 생활 내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웠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하길, "만약 누군가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성경이 거짓임을 내게 증명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의 말보다 그가 거짓말이라 확신한 하나님 말씀을 믿겠다"라고 했습니다.
이랬던 그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써서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있든 그 그리스도인들 안에 가득차 넘칠 정도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법대로, 뜻대로 살아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안과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성령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세상적으로 사는 것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보이고, 당연하다는 유혹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적당한 선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만이 정답입니다. 예수님의 그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으니, 거룩하게 사는 것은 너무나도 맞는 말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쳐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사단의 유혹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시 큰 고통과 어려움에 맞서서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그 가운데 주 하나님을 또 만나야 합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쫓아오는 이집트 군사들이 다 홍해에 빠져 죽는 것을 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시내산에 간지 39일 만에 금송아지 만들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에 금송아지를 자꾸 만들어 타락하게 하고 더럽게 만들면 우리는 주님께 어차피 나아가야 하는데 돌아돌아 깨끗하게 될 만큼 고난 받은 후 하나님께 가게 됩니다. 산 위에 있는 뾰족한 돌들이 바다에 어떻게 모래알쳐서 곱게 빛나면서 옵니까? 파도와 많은 물살과 거센 바람을 맞아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결코 포기 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잊지마시고 하루하루 우리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의 몸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제 몸이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임을 알게 하시고 그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알아 가게 하소서. 제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순간순간 기억하며, 절제와 선행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