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요 10:26-29, 주일예배 20221023)
성경말씀: 요한복음 10: 26-29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설교: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릭 이젤이 쓴 [위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리스 브라간은 테네시주 교도소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교도소가 특히 몸집이 작은 사람들이 지내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개 교도소 안에서는 덩치가 큰 죄수들이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브라간은 체구가 작은 젊은 죄수 두 명이 교도소 마당을 겁 없이 거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다른 죄수에게 “왜, 아무도 저들을 괴롭히지 않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 젊은이들의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소?” 그 젊은이들의 아버지는 테네시 동부에서 온 거대한 몸집의 터프가이였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경찰에 잡혀 교도소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그는 아들들을 응석받이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이 사내답게 행동하기를 원했고 동시에 아들들을 보호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죄수들에게 자기 아들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 후 삼 년이 흘러,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아들들만 감옥에 남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버지가 언제라도 다시 감옥에 돌아와 보복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아들들을 위해 교도소에 들어온 헌신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하나님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거인들로 가득한 세상에 사는 죄수들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이라는 감옥에 보내 거인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셨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리는 관심 있게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확실한지 함께 확인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6-27절의 말씀입니다.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유대인들이 주님을 에워싸고 물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여기서 마음을 ‘의혹하게 한다’라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 ‘아이로’는 ‘들어 올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얼마나 더 우리 속을 뒤집어 놓을 작정이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좌우를 살피면서 조그만 소리로 “예, 맞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서도 이런 식으로 대답하신 적이 없습니다. “Yes”와 “No”를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상대방에게 여지를 남기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이용해서 상대방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대화가 썰렁하게 거기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4:10) “이 우물이 이렇게 깊고, 당신은 두레박도 없는데 어떻게 생수를 준다는 것입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은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시는 스타일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목적을 가지고 대답을 강요하는 유대인들을 대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 때문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져서 주님께서 그리스도라면 분명하게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진실을 믿기 위해서 그렇게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미리 단정지어 놓고 주님으로부터 ‘아니다’라는 대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전에 말하였지만 너희는 믿지 않았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나의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 내 양은 나의 음성을 듣고, 나도 내 양을 안다. 내 양은 나를 따른다.” (요 10: 25-27)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내가 지금까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했는데, 너희는 그 일들을 보았으면서도 내가 누구냐고 질문을 하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주님은 많은 표적과 강론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보여주신 일들은 주님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를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주님의 양과 그렇지 않은 부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므로 주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향해 ‘내 양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실까요? 만약에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이러한 차가운 영적 상태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를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뜨거웠던 주 예수님과의 첫사랑은 잊어버리고 “왜 하나님 나의 인생에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지요?” 또는 “이건 하나님도 못 해, 우리 주님이 이걸 어떻게 허락하시겠어?”라며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밀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양이 목자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아니하고 양이 목자에 대한 사랑이 식어져 버린다면, 양은 배회하고 굶고 유리되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은 살려면, 목자의 보호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만나야합니다. 의지해야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동자는 엄청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과의사들은 우리의 눈동자가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말합니다. 가령 사람의 눈에 먼지나 모래와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려고 하면 어느새 눈꺼풀이 검겨 눈동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가능한 것은 눈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구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람의 눈에는 자그마치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그 무엇이라도 눈에 들어오려고 하면 이것을 눈동자가 감지하고 눈꺼풀에게 지시하여 자동으로 감겨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양들은 목자의 엄청나고도 완벽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양들은 자신들이 보호받지 않고 있고, 떠나려하고 유리되어가고 있어도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 보호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언제든, 양들이 자신의 음성을 듣고 달려만 오면 그 완벽한 보호를 준비하여 시행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말씀의 근거는 28-29절 말씀에 나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 (privilege)입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알고, 선한 목자의 인도를 받는 이상 아무도 우리에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그분이 자기 양들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1~39)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은 꼭 지키시고 책임지신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또 승천하셨을지라도 우리와 성령을 보내셔서 함께 하시며, 반드시 주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 있으시던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목자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양이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축복 가운데 살지 알았으니,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 하나님! 목자되신 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늘 따스한 봄날처럼 푸른 초장에서 베풀어주시는 꼴과 시냇물로 늘 만족케 하옵소서. 우리가 늘 주님으로 인하여 응답받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이러한 축복을 날마다 허락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