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5)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설교 20230920)
성경본문: 베드로전서 2:1-8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설교: 보배로우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 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 기록은 변화 산상에서 된 것입니다. 이 기록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그리스도의 본체의 영광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체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모세의 모든 율법과 엘리야의 모든 예언, 그밖에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인데, 이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르러서 완성된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나서 예수와 서로 담화를 하셨는데 특별히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의 장차 죽으실 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하늘의 음성을 듣고 두렵고 놀라서 땅에 엎드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제자들이 일어나 눈을 들고 보니 오직 예수 한 분 밖에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와 엘리야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고 하는 뜻입니다. 히브리서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오직 예수만 하나님의 참된 계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을 의미하며 그 뜻을 우리는 본문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제사장인 우리가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이며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과감히 버려야 할 다섯 가지 목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악독입니다. 악독은 의도적으로 타인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악한 감정이 아니라 악이 습관화된 상태로서 다른 사람들을 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믿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악한 감정이나 해하려고 했던 마음과 행실을 회개함으로 믿음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입니다. 이 세가지의 특징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궤휼은 ‘미끼로 잡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속여서 빼앗기 위해서 흉계를 품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외식은 타인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즉, 겉모습과 마음이 다른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모양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권력과 세상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시기는 타인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셋째, 모든 비방하는 말입니다. 이는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온갖 종류의 중상 모략이나 악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비방하는 말은 남을 나쁘게 말하는 것으로서 악한 말을 지어내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에서 가장 경계하고 있는 인간의 깊은 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육신의 정욕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2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갓난 아이는 방금 태어난 아이를 의미합니다. 막 태어난 아기는 모유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아기기 모유를 사모하는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능인 것입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모유를 먹어야 생명을 지킬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성장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영적으로 막 거듭난 자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습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기에 새로운 내적인 욕구가 생겨나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거듭난 새생명은 갓난 아이들같이 순수하고 영적인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의 의미는 거짓 없는 순수함이며, 영적인 젖인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갓난 아이들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는 자가 되어서, 생명의 말씀을 먹고 자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는 자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다는 의미는 성화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 자라가야 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자라가는 모습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으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5~8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우리는 산 돌(living stone)이신 예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 2:4).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산 돌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산 돌이란 살아있는 돌로서 생명을 주며 공급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분은 살아있는 돌로서 그 분에게 나아오는 자는 생명을 얻고 더 나아가 풍성히 얻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 분이 공급하시는 생명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신령한 집으로 영적인 집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집인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온전히 공동체를 이루게 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3:20-22). 그리스도께서 건물의 기초를 세우는 모퉁이 돌이 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감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거처를 삼으심으로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을 구성하는 그리스도와 같이 산 돌 같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섬겼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만날 때는 빈손으로 오지 않고 희생 제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영적인 제사는 짐승의 희생제물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거룩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구별되어 그 분을 위하여 자신을 드렸듯이,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과 희생적인 헌신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거룩해야 하며, 자신을 온전한 희생으로 드리는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해외여행자들이 영국을 여행할 때 제일 먼저 방문하는 곳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습니다. 리빙스턴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음악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귀족 등 영국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나 비석들이 그 사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일종의 박물관이니까요.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본래는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이 이제는 영국 왕이 취임하는 곳으로, 유명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국의 역사를 보존한다든지 역사를 계승한다든지 또 관람객들에게 영국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원 안에 들어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고 나올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전 안에서 정말 시선을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분, 홀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는 무관심합니다.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는 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배로우시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날마다 예배하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시고 살아계신 주님!
우리가 당신을 다시 무덤으로 몰고 가고 살아계시고 숨쉬고 계신 주님을 무시하고 살았다면 이시간 회개합니다. 보배로우신 주 예수님을 늘 품고 살고 주님께서 우리를 다스리도록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