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출 17:10-16)
성경말씀: 출애굽기17: 10-16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오늘 말씀은 르비딤에서 발생한 두 번째 사건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족속과 싸운 최초의 전쟁입니다.
이것은 광야생활에서 나타난 하나의 위기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급습한 것입니다. ‘광야 생활’ 이 계속적인 위기와 시험의 연속임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전에는 그들이 원망과 불평을 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홍해”를 앞에 두고 우리를 이집트에 매장지가 없어 이 광야에서 죽이느냐고 원망합니다.(출 14: 11)
또 그들은 “마라”에서 물이 쓰다고 원망합니다.(출15:23-24)
그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신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합니다.(출 16: 2-3) 그리고 “르비딤”에서 마실 물어 없다고 다툽니다.(출 17: 2)
그들의 계속적인 원망이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원망이 아말렉 군대와의 전투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는 하나님! 물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신앙이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길에는 위기, 고난,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삶을 파괴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을 통해서 배울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세워 가십니다. 위기 속에서 ‘원망이 불평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하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지할 때 어떠한 승리를 주시는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보시면서 더욱 더 믿음을 굳건히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악연의 관계를 맺게 되는 대상은, 아말렉 족속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말렉 족속은 전쟁을 하게 됩니다. 8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아말렉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마주보고 광야에서 전쟁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이쪽 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아말렉 사람들이 긴장 속에 서 있고 이후, 큰 함성 소리와 함께 전쟁을 한 것처럼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의 실상은 아말렉 사람들의 일방적인 습격이었습니다. 아멜렉 사람들은 광야 길에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갑자기 공격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신명기 25장 17절, 18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명기 25:17-18)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에 지쳐, 피곤에 절어있을 때 아말렉 사람들은 몰래 습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격을 한 대상도 광야 길을 걸을 때 뒤쳐진 연약한 사람들, 즉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을 제일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아말렉 족속이 매우 비열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신명기 25장 18절 말씀 중의 끝 부분을 보면, 아말렉 사람들에 대한 신앙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신명기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그런 족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자손들이었습니다. 창세기 36장 16절 말씀을 보면, 에서의 손자 중 ‘아말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후손들이 모여서 이룬, 족속의 이름이 ‘아말렉 족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족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들의 조상인 에서가 하나님을 섬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에서가 섬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느 정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말렉 족속은 자신들의 조상이 섬겼던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연약한 자들인, 노인과 어린 아이들을 습격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말렉 족속은 역사 속에서, 아주 질긴 악연 의 늪으로 빠져 듭니다.
우리도 보면, 예전에 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 했던 사람들이 더 전도하기 어렵고 더 힘듭니다. 하나님도 압니다. 예수님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들을 귀라도 있고, 겸손합니다.
전에 교회 다녔던 사람들은 사람이 실수한 것을 하나님께 떠넘기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대해 관심도 없고, 섬겨봤자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을 아주 유치하고 어리석고 멍청한 짓인 것처럼 여깁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더 무섭고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하나님의 적으로 서는 것이 더 불행한 일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0~1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편에 서십니다. 직접 하나님께서 싸우셨다고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말렉 족속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아주 독특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아말렉 족속과 직접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승패는 여호수아에게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산꼭대기에 있는 모세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가 팔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해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면, 전세가 역전되어 아말렉 족속이 이기는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산위로 올라간 아론과 홀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세의 팔을 붙잡고 높이 올렸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산 아래에 있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기도하는 모세에게 달려 있었고,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 달려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모세 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1 차 세계대전말기에 영국의 경건한 기독교도였던 알렌비 대장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의 일입니다. 알렌비는 영국 정부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정복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이슬람교도들인 터키 군대가 예루살렘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군대가 그들을 함락시키는 데 어려웠습니다. 포격을 하면 쉽게 점령할 수 있었지만 알렌비 장군은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곳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임을 생각하고는 그곳에서 피 흘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공격 결정을 유보하고 영국 왕에게 피를 흘려서라도 점령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영국 왕 역시 피 흘리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알렌비 대장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의 뜻을 기다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한편 그 시기에 예루살렘 성 안의 터키 병사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러 온 사람이 알렌비 대장이라는 말을 듣고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알렌비’라는 말이 터키 언어로 ‘하나님이 대항하신다’,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성을 포위한 채 공격은 하지 않는 영국 군대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국 병사보다 더 용맹하기로 유명한 터키 병사들이 알렌비장군이 이끄는 영국 군대에게 큰 두려움을 느끼고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터키 군대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무조건 항복’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국군은 총 한 방도 쏘지 않고, 알렌비 대장을 선두로 영국군대들이 모자를 벗어 들고 찬송하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였다’는 역사에 있는 진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구 때문에 승리한 이야기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면서 나아간 알렌비 대장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 모든 전쟁을 맡기고 친히 싸워주시기를 믿고 맡긴 영국 왕과 영국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멜렉과의 전쟁이 끝난 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15~16절입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모세는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주께 전쟁의 승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에 응답하십니다. 16절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맹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들려주신 당신의 맹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래서 실제 구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말렉 족속과 싸우십니다. 민수기 24장 20절 말씀을 보면, 발람을 통한 하나님의 예언이 나옵니다. 발람을 통해 하나님은,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 왕이 아말렉 족속을 크게 멸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남은 아말렉 족속은 페르시아 제국의 땅에서 에스더 왕비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오늘 출애굽기 17장에서 맹세하신 내용을 나중에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사람들에게서 저주스럽게 끊어지지 않는 불행을 완전히 끊어내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전혀 끊기지도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그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 악한 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쓰러뜨립니까?
하나님께 믿음으로 그 악한 것들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시고 믿음으로 그 사랑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그의 영혼을 살리시고, 모든 일을 다 잘되게 형통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이 믿음의 손을 세상을 향해 번쩍 드시기 바랍니다. 홀로 들기 힘들다면 아론과 훌과 같은 도움의 손길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믿음의 손을 드시고, 믿음의 손을 드신 분들과 함께 늘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면서 "여호와닛시!"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능력과 축복의 하나님! 우리가 여호와 닛시의 신앙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무릎꿇리고 괴롭힐 때 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기고 서기를 원합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두 손을 들어 주님의 행하시는 일을 기대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큰 승리를 보게 하시고 주님께 의지하며 사는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여호와 닛시를 외치며 살도록 능력의 손으로 붙잡아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