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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 16)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하는 표 (수요기도회 20231206)

온누리선교 2023. 12. 6. 08:39

 

 

본문: 베드로전서 3:18-22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설교: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하는 표

 

영국의 한 목사가 죽어가고 있던 여신도에게 어디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목사에게 찢어진 종이를 보여 주었는데, 그 종이는 영국의 스퍼젼 목사의 설교를 실은 미국 기독교 잡지에서 찢은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국으로 올 때에도 이 종이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 스퍼전 목사의 설교를 읽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찾은 셈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즉 영국에서 행해진 설교가 미국에서 인쇄되었고 그 중 일부가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서 찢어진 종이로 영국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는데, 이 영국 여인은 이 종이를 통해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인쇄매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종교 잡지들과 성서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괜찮아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다 잘될꺼야라는 말보다 나도 너와 같은 상황에 있어 우리 같이 힘내보자라는 말일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7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그 방법을 우리도 함께 말씀을 통해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18절의 말씀입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우리의 삶에서 아무리 많은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죽음보다 더 큰 고난은 없습니다. 지금 너무 힘들고 무너질 것 같은 고난이 있더라도 그것이 절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보다 크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설명하며 성도들의 고난이 그들에게만 있었던 고난이 아니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반복적이지 않고, 단번이었습니다. “단번에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독특함과 충분하고, 완료된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고난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불의한 자들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남을 위해서 자신이 대신 고난을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 일대에 흩어져 고난 받으며 살던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을 잃지 않고, 잘 견뎌낼 것을 격려하기 위한 서신입니다. 베드로는 박해 받는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도 고난 받으셨음을 설명하며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하나님 앞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지만 예수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도 고난 당하셨음을 설명하며 현재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베드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하며 베드로는 자신이 믿고 섬기는 예수님에게는 고난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혹은 구세주에게는 고난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 21이하)

베드로는 이 일 이후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였고, 그 경험을 뒷받침 하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이고, 단번에 이루어 졌으며, 고난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목적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있는 고난의 목적 역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본문은 그 이후의 예수님의 행적을 설명합니다.

19~20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19절에 나오는은 어디이며, 영들에게 선포하셨다고 했는데 이들은 누구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외면하다가 모두 멸망당해 죽었습니다. 바로 그 영들이 갇혀 있는 ’, 다시 말해 지옥에 예수님의 영이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6절에서도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으로 선포하신 예수님을 설명한 후 베드로는 시선을 돌려 다른 주제를 다룹니다. 바로 노아의 방주에 대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노아의 방주는 그 길이가 300규빗이고 넓이가 50규빗이며 높이가 30규빗인 삼층으로 된 배를 말합니다. 한 규빗은 남자성인의 중지 끝에서 팔굽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평균치로 약 45센티미터를 잡으면 길이가 135미터, 폭이 22.5미터, 높이가 13.5미터나 되는 거대한 방주를 상상해볼 수 있다. 게다가 지붕이 있고 창문이 위에서 한 규빗 밑으로 났기 때문에 아무리 비가 많이 쏟아져도 그 물이 배안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도록 안전하게 설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방주는 잣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그 연결부위를 모두 역청으로 빈틈없이 칠해서 빗물이 조금도 스며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노아의 방주는 한 마디로 구원의 방주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의 방주는 순수한 믿음의 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지어지는 기간이 얼마입니까? 무려 120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은 기다려 주셨습니다. 심판이 결정 된 이후에도 하나님의 기다림과 인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과는 다르게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적은 수의 사람들이지만 당대의 의로운 남은자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흩어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받고 있는 박해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만 노아의 방주 말씀을 통해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구원을 얻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 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 삶에도 고난이 다가올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랜 기다림의 끝은 주님과 함께하는 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은 다수결을 말할지라도 구원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사람과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로서 올바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때 불이익을 당하고, 고난 가운데 있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노아 시대의 그들의 가족처럼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오랜 기다림 끝에는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1-22절의 말씀입니다.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베드로는 노아의 홍수와 교회의 세례를 연결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표이며, 그것이 세례라고 말하는데, 물 자체에 사람을 구원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물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을 통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 받은 것처럼 세례를 통해 성도들은 새 삶을 살아가며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씻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다는 표현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40일 동안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간 것처럼 세례를 받은 성도들도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여정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옛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죄 된 생황을 그치도록 하는 것이 목적에 전부가 아닙니다. 자유함을 받는 것도 목적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성도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 악을 만나도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는 고난을 통해 그들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셨고, 우리는 그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하루를 세상에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구원을 귀히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며 매일의 삶에서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