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롬 10:16-18, 주일예배 20250601)
성경본문: 로마서 10 : 16~18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설교: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가 “믿음”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평일에도 우리 교회는 열어 교인 자녀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돌봄만을 바라고 교회에 나오는 부모님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상가 안에는 많은 학원들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 자녀들을 보내고 싶으신 부모님들도 많다는 것도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학원들이 있지만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고 싶어하시는 부모님들이 많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가난한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자니 제일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잠자리였습니다. 가난했던 부자는 가끔 길거리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듣던 성경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그는 호텔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호텔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그는 기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믿음 하나만 가지고 노력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힐튼호텔”입니다. 전 세계 힐튼호텔은 5성급 호텔로 어느 곳에 가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힐튼이 어머니의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또 어머니의 믿음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멋지고 대단한 호텔 사업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어머니를 통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든든한 배경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자녀에게 기독교적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된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도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그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 축복의 말씀을 함께 받으시기 바랍니다.
16~1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고,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시작한 곳은, 이스라엘 땅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제일 먼저 복음을 들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전부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왜 그랬냐면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여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만난 다면 아무리 사람이 착하다 할지라도 그 안에 아담때부터 내려온 죄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심지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 죄에 대해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바로 믿을 수 없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거나 목사나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 때,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우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다’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와 같이 되셨으나 죄없으신 분이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십니다. 가장 큰 죄를 아무 흠없으신 분이 감당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셨다’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중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단이 주는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죽음 앞에 무너지고 지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구원자이시고, 부활자가 되어도 이 사실을 듣지 못하면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알지 못하게 되면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맘대로 살다가 사단에게 끌려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훨씬 전부터 조상들을 통해 말씀해 오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여러번 말하셨고 진짜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에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통해 사도바울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온 세상에 이미 주님의 복음은 널리 퍼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외지인에게 말씀이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래 믿을수록 ‘내가 많은 것을 안다’ ‘내가 뭔가 스스로 한다’라는 거만한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사실 이것은 참으로 조심하기 어렵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 가운데 처음 믿음 사람들 보다 영적으로 더 메마르고 말씀에 둔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말씀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영적인 교만이 우리 안에 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테레사는 이러한 현상을 빛에 비추어진 물이 든 잔에 비교합니다.
해가 비치게 되면 해가 비치지 않을 때 보이지 않던 불순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잔에 담겨 있는 물이 해가 비치지 않을 때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해가 비치게 되면 먼지가 가득함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 영혼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태양빛이 물잔을 비추는 것처럼 우리의 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 꽤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욱 더 조심하라고 합니다. (잠 3:7, 사 5:21, 롬 12:3).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칼 바르트가 그가 이제까지 깨달은 가장 위대한 신학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질문받았을 때 그는 간단히 대답하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바르트는 그가 깨달았던 많은 위대한 지식에 대한 자랑을 거부하며 어린아이 같은 지식에 만족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들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성경말씀을 듣습니다. 그 구원을 함께 누리고자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살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손길을 알게 하옵소서. 그래서 내 자랑이나 낙심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겸손하게 주님의 이름을 우리가 높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