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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1)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수요기도회 20250514)

온누리선교 2025. 5. 13. 23:55

 

성경말씀: 요한계시록 1:1-8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설교: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오늘부터 요한계시록 강해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일들을 쓴 편지입니다. 요한은 스스로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음으로 살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요한은 초대교회 당시 네로의 그리스도인 박해에도, 또한 도미시안의 박해 가운데서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반드시 예수로 읽어야 합니다.’

예수로 읽어야 할 이유를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봄베이(Bombay) O형의 부모가 낳을 수 있는 자녀들의 혈액형은 O형뿐만 아니라 A, B, AB형의 자녀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혈액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배우자를 의심하여 단란한 가정이 파탄날 수 있습니다. 만일 요한계시록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없다면 마지막 때에 부끄러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예수로 읽는다는 것은 예수 이외에는 구원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1세대 제자들 이후로 신비로 덮여져 왔습니다. 그 이해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온갖 해석들이 시도되었고, 수많은 이단 교파들이 본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말씀을 왜곡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이 비록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과 선의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지금은 비록 어둡고 비참해 보일지라도, 최후의 그 순간에 마침내 진정한 왕이 나타나셔서 영광스럽고 찬란한 승리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선이 악을 이기고 우리에게 찬란한 영광의 빛을 비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종말이 와야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 나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참된 진리를 통해 주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는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절의 말씀을 함꼐 봅시다!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보통, 서신을 쓸 때, 먼저 서신을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인사말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한계시록은 이 글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을 먼저 밝히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이며, 더 나아가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는 것부터 밝힙니다. 그리고 그 후에 4절부터 비로소 인사말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요한이 너무도 신비롭고, 크고, 비밀한 것을 본 그 감격을 현장감있게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말씀에 대하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네 번이나 강조되고 있는데, 1절의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 19절의 장차 될 일, 그리고 4:1의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 22:6의 결코 속히 되어질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히 일어날 일'이란 표현은 그 시간의 긴급성보다는 실제로 꼭 일어날 일들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바른 이해일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시간적인 관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 많은 오해를 낳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수차례 말씀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셨습니까?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날과 그 시각은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여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시각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는 베드로의 표현을 통해서도 천 년이 하루 같다는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 개념이 다름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시간적인 의미이기보다는 그 내용의 확실성에 중점을 두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속히 될 그 ''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반드시 속히 될 일'의 구체적인 내용은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다시 말해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요한이 직접 본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넓게는 요한계시록 내용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날짜가 언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이 마지막 날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만큼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하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신뢰할만한 것임을 확신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이기 때문이고, 또 사도요한이 직접 본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상대적인 이 시대에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최종적인 권위이고 또,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우선 하는 권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모든 것이 상대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말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확신하는 믿음,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을 이끄는 능력이요, 교회와 가정과 내가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햇빛처럼 쏟아지는 예배, 말씀의 권위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고, 순복하는 삶이 우리 가운데 펼쳐질 때, 이 삶이 진정 우리를 축복의 삶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4~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보냅니다. 7은 온전한 수이며, 충족의 수입니다. 성경 전체적으로나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의미의 수입니다. 일곱 교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에는 그 일곱 교회의 터전과 흔적이 있습니다. 현실 역사 속 실재했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각각의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기자는 이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습니다. 또한 이 일곱 교회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 모든 교회를 망라하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일곱 교회들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서 등장할 것입니다.

 

요한의 인사말에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인사말을 자주 언급하였던 반면, 요한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오실 이라는 말로 편지의 인사말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어지는 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은혜와 평강을 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바울과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성부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증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도 누구보다도 충성된 증인이십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충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삶으로 말씀을 살아내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이제 장차 오실 분, 바로 그분이 영광스럽고 찬란한 승리의 빛 가운데 지금 우리 가운데 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요즈음입니다. 또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힌다는 것은 세상 가운데 누가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겠노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는 물론, 세상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예배의 생활화와 생활의 예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저 우리끼리 그리스도인들끼리 아등바등 모여서 잘 살다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결코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과 세상 가운데 나아가 바르게 살기 위한 힘을 얻고,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보며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복음이 무엇인지를, 주님을 따르는 자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경험하고, 그래서 나도 그 주님을 따르겠노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이 되시고, 이제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가득하신 하나님!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주님의 피로 저희를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한 우리를 향하여 오고 계신 그 주님과 함께 날마다 동행하게 하여 주옵시고,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오늘 이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