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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95)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수요예배 20160406)

by 온누리선교 2016. 4. 6.

성경본문: 사도행전 22: 17~21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설교: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님의 “왜 예수인가?”입니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 중에 재미있는 목사님의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아내 잡으러 갔던 온누리교에서 마흔 일곱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유명한 방송국의 기자출신이었던 이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나자 촌지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월급가지고는 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후배가 알려준 정보를 갖고 처음으로 주식을 사고 팔았답니다. 처음으로 꽤 큰돈이 생겼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께서 생각하길, “아~ 하나님께 돌아오니 촌지 안받고 바르게 살려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큰 용돈을 주시는 구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감사헌금도 하고 선교헌금도 통크게 내고 그랬답니다. 쉽게 돈을 벌고 보니 더 큰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답니다. “ 하나님, 이번에 올인하겠습니다. 올인해서 돈이 생기면 반은 하나님께 드릴께요. 하나님은 그 헌금을 북한 선교하는데 사용하세요. 나머지 반은 제가 가족과 함께 쓰겠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가진 돈은 물론이거니와 장모님의 돈도 가져오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 주식을 샀습니다. 전망좋은 은행의 주식을 올인해서 샀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난 뒤 며칠 뒤에 뉴스가 나오는데 그 은행이 다른 은행과 합쳐져서 그 주식이 몽땅 휴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라지는 은행의 주식은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 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은 직장생활동안 월급과 퇴직금을 모아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목사님은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나만 잘살자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을 만드셨습니까?”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9개월 뒤에 목사님의 가족의 모든 은행통장에 계좌추적이 들어왔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당시 청와대 출입하던 기자들을 조사하던 중에 몇 명을 본보기로 처벌할 기회를 노린 것이었습니다. 막상 조정민 목사님의 가족들의 계좌들을 조사해도 빚밖에 없어서 정부가 포기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만약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면, 20년 기자생활은 물론이고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간증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지? 하나님 섬기면서 사는데 왜 안 믿고 사는 사람보다 더 축복이 없지?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면 이것이 바로 말할 수 없는 고민이고, 또 가끔 신앙을 떠나고 싶어하는 갈등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에서 이 해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눈을 다시 뜬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속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울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을 사용하시기 위해 부르시고 새롭게 눈 뜨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멀리 이방인에게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복음을 보다 넓게 확산시켜야 할 목적으로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적절한 인물을 주님께서 찾아내신 것입니다. 정말로 유대인이고 또 유대인을 위해 태어났던 바울이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뜻을 아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17~18절입니다.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이미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주님의 뜻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또 주님을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가끔 저는 “집에서 기도해요~, 늘 마음으로 시시때때로 기도해요”라고 말씀하시는 성도 분들을 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왜 이 땅에 만드셨을까요? 그것도 주님의 핏값으로 말입니다. 기도하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우리 영혼의 호흡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물리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기도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성전에 나와서 작정기도하신 분들을 보면, 많은 기도제목들이 응답받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 권사님께서도 빌라 경매문제 해결 받으셨고, 황벨라 성도도 국적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성전에서의 기도가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을 보여주는 많은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으로 오셔서 주님과 고요히 만나시고,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능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환상 중에 본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18절입니다. “속히 예루사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인 바울입니다. 율법과 유대인문화에 대한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또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을 만큼 헬라문화에도 능합니다. 거기다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우리 생각에 이러한 바울이 예루살렘에 남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다고 한다면 당연히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9~20절입니다.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예수 믿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바울이 과거에 핍박했던 일을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바울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배교자요 반역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상상치도 못한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뿐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세력 또한 잘 아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들은 생각한데로 계획한데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전에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소년은 학교에 갈 만큼 넉넉하지도 못했고, 어느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 만한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진술을 배워 사진 기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술을 엮어 놓은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서점의 착오로 사진술에 대한 책은 오지 않고 발성법에 대한 책이 온 것입니다. 이 소년은 너무 가난하여 그 책을 돌려보낼 만한 우송료로 없었거니와 반송하는

 

법도 몰랐습니다. 소년의 실망은 너무 컸지만 소년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저 실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발성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된 ‘차리 멕카시’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꿈을 결코 한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을 부르십니다. 21절입니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했다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말합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평생 유대인이었기에 결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었습니다. 뼛속부터 선민 유대인이었기에 이방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것이라면서 이방인들에게 보내겠다고 주님은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순종은 해야겠는데, 너무나도 황당하기도 하고 겁이 날 것입니다. 그동안 준비해놓은 모든 것이 날라갈 위기에 처해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이방인에게로 보내니라” 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하였기에 바울은 사도로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리면서 죽어서도 지금까지도 주님을 증거하는데 그의 순종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저한 순종은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데 가장 귀하게 쓰입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아이성의 이야기는 가장 대표적입니다.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군사작전을 짰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다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청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성은 완전히 무너져 불에 탔으며 아이성 왕은 산채로 사로잡혀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5:22절 말씀에 "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더 기뻐하시겠느냐? 보라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말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를 지켜보시고 참고 계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러하시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십시오.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13:6~9)

아무리 좋은 나무일지라도 열매가 없다면 찍힘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에게 이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자꾸만 미루고 거부한다면, 주님의 때가 왔을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다 잃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워놓으신 이 교회 안에서 그 분이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의 예루살렘에서 속히 나가십시오. 그리고 축복의 이방으로 보냄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능력의 주님이시여!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온전히 순종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게 하옵소서! 세상을 벗하지 말고 주님의 축복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온전히 주님을 따르기에 우리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늘 생수로 채워주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