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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 6)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수요예배 20161026)

by 온누리선교 2016. 10. 25.

  

성경본문: 로마서 2: 1~8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설교: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우리가 가장 쉽게 하나님 앞에서 짓는 죄는 바로 판단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가볍게 생각하고 짓는 큰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해서 무조건 판단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요, 용서하는 법을 세우시고 얼마든지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죄를 짓는 우리는 이러한 법을 세우시고 끝까지 기다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믿음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는 자를 진리대로 판단하십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가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을 자기가 먼저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하여 남을 판단하는 일이다. 자기 허물은 숨기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그 자체가 형제를 해코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니 그 마음은 사단에 속한 마음이 됩니다.

우리가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판단이 가져다주는 크나큰 영적 공격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의로운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깁니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반드시 만들어냅니다. 물론 우리가 지혜와 무지를 분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별과 판단은 다릅니다. 분별은 영적인 지혜에서 오는 것인 반면, 판단은 분노의 영과 미움의 영을 불러옵니다. 분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이지만 판단은 나의 의()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재는 것입니다. 판단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잘못을 따지기만 하지, 스스로 책임 지려하지 않습니다. 비난만 하지 어떻게 하던지 용서하려하지 않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단의 영은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는 그제서야 우리의 잘못을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올바로 하나님의 진리를 알려면 판단하려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만약에 이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3~5절입니다.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판단하는 죄를 짓는 그 즉시 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도 안됩니다. 심판의 날에 그 모든 죄를 합해서 내리십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인자하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말씀대로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있다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무능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하는 자는 날마다 진노를 받을 일을 심판의 날까지 쌓아가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의 하나님의 진노하신 손에 붙들린 죄인이란 설교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인데 마치 우리가 죄가 없어서 그냥 계신 것처럼 착각하여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그 죄가 쌓여갈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나옵니다. 거기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외에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란 스스로가 선악을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즉 선악과를 따 먹은 행위는 하나님이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가 판단의 주체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는 한 우리는 영적으로 순결해질 수도, 건강해질 수도 없습니다. 판단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면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판단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하나님은 과연 선한 분이시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 때, 하나님이 옳은 분인지 그른 분인지, 신뢰할 만한 분인지 아닌지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려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성경에서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속으로 여러 가지 판단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당시 사람을 죽여 제사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방 종교의 풍속이었습니다. 사람을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계시가 왔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리 저리 재지 않고 많은 경우의 수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참으로 은혜로운 주님의 답이 나옵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판단하고 괴로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나를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반드시 평온을 되찾을 것이고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입니다.

 

이어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6~8절입니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를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에서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이 유행이 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에서 이 말의 뜻에 대해서 물으니, 요즘 교회들에 대한 비판으로 의도적으로 썼다고 말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대사가 나온 상황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옥살이하는 주인공을 보살펴온 전도사가 두부를 건네자, 두부를 바닥에 버리면서 한 말이 너나 잘하세요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님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기도 합니다. 내 눈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뺄 수 없습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면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려면 자기 잣대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우리가 어떻게 누구를 판단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판단을 늘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는 대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분노로 갚으시는 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의로운 판단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이러한 죄 때문에 서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선교사 김순효 선교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그들을 쉽게 판단하고 비방하지만 사실 내가 정죄하고 돌을 던진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또한 이웃이 아니라 바로 가족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을 공유하고 있는 형제인 것이다.” (김순호 선교사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기초중에서)

 

형제의 허물을 보고 안타까움이 아닌 판단이 앞선다면, 위로의 손길이 아닌 비판의 혀가 움직인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 안의 그리스도의 생명이 희미해져 감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그 생명이 여전히 첫사랑 그대로 남아있다면 우리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형제의 흠을 보고 비판하기 전 우리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었던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 사랑으로 감싸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십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사랑에 빚진 자 된 저와 여러분들이 판단이 아닌 영분별로 주님의 큰 사랑과 은혜 안에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주위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거짓에 속아 그들을 비판하는 마음을 품지 말게 하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본받게 하소서.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름 앞에 순종하게 하소서. 제 생각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판단의 기준을 주의 말씀으로 삼게 하시며, 주의 뜻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