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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강해 8)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 (수요예배 20180307)

by 온누리선교 2018. 3. 6.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2:10~16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설교: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하는가(박정근 저)에서 나온 글입니다.

 

어느 날 부산역 광장을 지나가다 보니까 한 무리가 트럭을 세워 놓고 대형 비디오를 통해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도 전도지를 나눠 주기에 가 보았더니 이름만 대도 알 만한 기도원의 원장이 어떤 사람을 수술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원장을 보면서 그 원장, 족집게입니다. 제가 몸이 약하거든요. 그래서 갔는데 저를 보더니 오장육부가 약하다고 하면서 맞추시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맞추거나 혹은 앞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해 준다고 하면 신기해하며 난리법석을 떱니다. 그러나 그 핵심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사흘 정도 부흥회를 열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첫째 날에는 반드시 십자가를 설교하고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복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서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이 지날수록 그들의 결론은 복음에서 벗어나 다른 데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했느냐, 전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메시지가 복음을 포함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경고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문제는 복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복음 플러스 어떤 것(something)’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민감하게 깨어 비슷한 복음을 분별하고, 복음의 진리 가운데 바르게 서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하면서 거기에 자기의 욕심, 자기의 성공을 끼어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령의 일을 받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 성령을 깨달아 알 수 있는 말씀을 통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 말씀을 나눌 때 주님께서 깨달아 알게 하시고 또 말씀 하신대로 우리가 하려고 하는 마음과 용기와 능력을 주님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10~11절입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인간의 논리와 설명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과 깨닫게 하심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셔야 우리가 어떤지, 어떠한 상황인지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깨끗하고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 있어야 내가 뚱뚱한지 날씬한지, 얼굴색이 좋은지 나쁜지, 다 알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성령님께서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약해져있는지, 더러워져있는지 알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자들이 정확히 보고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나가는 길거리에도 크고 작은 교회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친구랑 주일학교 안 가본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전도용 커피랑 사탕을 말씀 카드와 함께 안받아본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주님께 와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천 명이 예수님말씀을 들으러 광야로 오고 또 말씀을 들었지만 그 오천 명이 모두 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말씀선포 가운데 성령의 역사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생각과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셔야 그 말씀이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 받아 하나님께 영광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12~14절입니다.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는 상업이 발전한 도시이기도 하였지만 아주 종교적인 도시이기도 하였습니다. 광대한 신전이 열두 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미술사나 건축사에서도 고린도 양식의 건축물은 아주 유명합니다. 신전 기둥들의 화려한 양식들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합니다. BC 5세기경에 세워진 남은 건물들의 기둥만 보아도 당시의 그 도시가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가 3만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지만, 지금부터 2500년 전에는 자유인이 15만 명, 노예와 하층민들이 40만 명이나 되는 큰 헬라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들도 많았습니다. “코린티아조마이”(코린도인처럼 행하다)라는 말은 매춘 행위를 행하다는 뜻을 가질 정도로 도덕적으로 아주 타락한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도 바울은 BC 52년경에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였고 이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서 함께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어떤 지역보다도 타락한 이곳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참으로 영적으로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 사람의 지혜와 성령의 가르침, 육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성령의) 사람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시며,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알 수 있게 해 주셨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의 은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여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교육을 받더라도 성령의 가르침 없이는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은혜와 은사는 오직 성령께로부터 옵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며 가르치시는 성령께 순종할 때, 우리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목사님, 제 왼손의 손가락을 한번 보시겠어요?”

어느 날 제가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는 중에 한 장로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로님의 왼손 손가락 중에 가운데 손가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연을 물어보니 장로님의 기막힌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도박을 밥먹듯 즐겼습니다. 도박을 끊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도박은 계속했지요. 그날도 밤새도록 도박판을 벌이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고 있더군요. 그 순간 제 모습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내가 보는 앞에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부엌에 있는 칼을 들어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성경공부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자 장로님은 내밀었던 잘린 손가락을 감추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속담이 맞더군요. 사흘이 지나자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더니 저로 하여금 도박장으로 떠밀더라구요. 결국 아내 앞에서 한 나의 다짐들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 분이 지났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후로는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아픔도 별 수 없었던 나의 도박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도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만 우리의 옛모든 중독되었던 죄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할 때, 영적으로 바르게 분별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5~16절입니다.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세상은 아무리 지혜로워도 영적인 일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적대적인 세상과 싸우는 대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 하시던 말씀을 기억해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3:34)라고 말씀하신 것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처참한 순간에서도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과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대로 이들 안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아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싸우기 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세상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고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매 순간 기억하게 하소서. 세상에서 더 많이 가지고 더 누리며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은혜와 축복이라고 말했던 것을 용서하소서. 주님이 주신 구원이 은혜와 축복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