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고린도전서 7:1~9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설교: 혼인과 독신
카톨릭 신부이나 수녀들은 결혼을 안합니다.
왜 안할까요? 1179년에 여러 가지 교회 안의 부패와 사건들로 인해서 사도들의 전통을 순수하고 정결하게 이어가고자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갈 사람을 사제, 즉, 신부나 수녀로 세웠다고 합니다.
카톨릭 교회의 사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에서 사도 베드로는 장모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결혼을 한 사도이고, 반면에 사도 바울은 미혼, 결혼하지 않은 사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보다는 가톨릭 신부 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바울은 독신주의자, 금욕주의자처럼 보입니다. 바울이 선교하느라 혼기를 놓쳐서 본의 아니게 독신으로 산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름대로 신념이 있어서 독신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던 사도 바울의 그 신념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삶이 얼마나 철저하고 어디까지 세세하게 하나님께 맞추며 살아야 하는지 아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이 말씀은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신비로운 은혜를 받고 나서 '나는 결혼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내 몸을 불태우겠다.'라고 서원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은혜를 받아 뜨거울 때 조심해야 되는데,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는 “나는 결혼하지 않고 주님만 섬긴다!”라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부모들이 걱정이 되어 사도 바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 목사님,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까?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까?"
이 질문에 오늘 1~2절 말씀으로 사도 바울은 답하였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혼을 해야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답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결혼하지 않으면 아내나 남편 걱정 없이 하나님만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 같지만,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아내나 남편이 없으면 육신의 정욕의 시험 때문에 고민과 어려움이 더 많아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 없이 혼자 산 사도 바울은 고통이 많았습니다. 시험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몸에 악이 있구나.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구나."하며 고민했습니다.
정욕의 불, 육신의 불이 탈 때는 바울도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는 날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자기의 정욕과 싸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베드로는 그의 몸을 쳐서 복종시켰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곤고한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있는 베드로는 편안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녹도, 모세도, 아브라함도 다 결혼하여 아내와 살면서 하나님을 경건하게 잘 섬겼습니다. 당대 최고의 의인 노아도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면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결혼한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더 의롭고 경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낳은 대 문호인 톨스토이는 하나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위대한 톨스토이가 악한 여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늘 별거 생활을 했는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방해거리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다."
점잖고 고상한 톨스토이도 육신의 정욕이 불 탈 때 그것을 이기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육신의 정욕에 빠지면, 음란에 빠지게 되면 부모도 자식도 보이지 않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음란을 막는 길입니다. 톨스토이도 "음란을 막는 최고의 비결은 결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7~9절 말씀을 보면, 또 다른 사도바울의 답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사도 바울이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도 괜찮다는 말이 나옵니다. '나처럼 혼자 사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사람만 혼자 살아야 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 사도바울은 결혼해서 사는 것을 또 회의적으로 보는 것일까요?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걸까요?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결혼이나 독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은사대로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의 은사를 받은 것이고, 독신은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겁니다. 결혼했다 해서 더 세속적이라 볼 필요도 없고, 독신이라 해서 더 종교적이며 신앙적이라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독신이 더 세속적일 수도 있고, 결혼생활이 더 신앙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독신주의였다거나 금욕주의였다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의 은사대로 산 것 뿐입니다. 자기의 소명대로 지낸 것뿐입니다. 성경에는 독신주의도 없고, 금욕주의도 없습니다. 또한 반드시 결혼해서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존중하면 족합니다. 순리대로 살면 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목회 연륜이 깊어졌을 때 쓴 서신인 디모데전서를 보면 결혼하지 말라는 생각도 또 바뀝니다. 결혼 하지 않고 사는 많은 사람이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실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서약해 놓고 나중에 음란한 죄를 지으니 부끄러워서 교회에도 나오지 못하고 마귀에게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믿음 생활하면서 이 세상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연약함입니다.
예전에 제가 부교역자로 대학부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대학부 아이들 중에 3학년짜리 남자학생과 1학년 여학생이 서로 커플이었습니다. 얼마나 이쁘게 사귀던지~ 제가 맛있는 것도 함께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학년 자매가 매일 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학생이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들 수군수군하는데.. 이러다가 두 학생이 교회에 안나오고 신앙의 길을 포기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학생이 와서 여학생과 헤어지자고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아 고민이라고 저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더 하나님을 집중해서 믿고 싶어서요.”
황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사귀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
알고 보니, 이 형제가 CCC 여름 수련회에 갔었는데 온전한 하나님 섬김에 있어서 생각해보니, 홀로 누구도 사귀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집회때 서원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유로 헤어지자고 한 형제의 말이 얼마나 이 자매에게 충격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서원을 함부로 했으며, 그런 서원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 형제는 헤어졌고, 자매는 1년여년 교회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형제는 끝내 결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혼해서 아이가 둘입니다.
이 두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그 때 그 1학년 여학생 자매였습니다.
제가 우스개소리로 “이 결혼 반대다~!”라고 방명록에 썼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인 우리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사는 것입니다.
혼자 살면서 온전히 하나님께 인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고, 결혼해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어 협력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깨달음을 여기서 끝내지 마시고 저 하나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지키시고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아시고 귀한 말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은사대로 사명대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스스로 과용하여 주신 은혜를 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늘 겸손히 늘 감사함으로 주 하나님을 예배하며 주신 축복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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