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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29) 육신에 따르지 않는 온전한 복종 (수요예배 20191113)

by 온누리선교 2019. 11. 1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10:1~6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설교: 육신에 따르지 않는 온전한 복종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더 큰 자유를 위해 보호받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복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보다 지시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두 번째나 세 번째가 아닌 첫 번째가 되기 원합니다. 복종은 분명히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항목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러한 모든 계산적인 생각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의지를 아버지의 계획과 목적 아래에 두고,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복종하심으로 세상의 구주가 되셨고, 영원한 기쁨뿐 아니라 모든 것을 얻으셨습니다. 위대한 설교가 마이어(F. B. Meyer)는 말합니다. “인생의 많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견디거나 행하는 것에 자신을 복종시킬 때, 이 땅의 혹독한 상황들이 달콤하게 느껴지고 어려운 일들이 쉽게 변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지금 당신이 마주한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입니까? 고통과 싸우고 옳은 일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것은 그 동기가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복종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마이어는 하나님이 우리를 현재 상황에 놓아두신 것은 그분의 약속대로,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 그분의 시간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이 온전한 복종하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의지를 그분께 맡기고,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그가 고린도교회를 세운 뒤 그곳을 떠나 에베소에서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일년 반이나 수고하여 든든히 세워놓았던 고린도교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분란을 일으켜놓았습니다. 그 결과 그 성도들 간에 다툼이 생겼고 분파가 생겼습니다. 그들 중 일부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사도 바울의 자질과 인격도 비난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서 그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멀리서 그런 혼란스런 모습을 듣는 사도 바울의 마음은 큰 근심과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을 노릇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말도 안되는 말을 지어내는 자들을 심판하고 그들의 악한 행동에 대하여 맞대응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심스러웠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달려가서 교회 재판을 열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을 저지른 자를 향하여 무서운 종교적 판단을 내리게 되면 연약한 자들이 이로 인하여 아예 자빠지고 말까 염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성도들 역시 이런 분란 속에 지나친 엄격한 심판이 내려지면 이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아예 교회를 떠날까 염려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첫 번째 편지에 이어서 이렇게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내면서, 그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그들을 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온유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그들에게 온유하고 관용을 베풀며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자기가 낳아 길러놓은 많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자기를 향하여 비난을 퍼부어댈 때 조용히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생각하며 그대로 행할 것을 작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육신적인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의 출신 성분, 자기의 족보, 자기의 학식, 자기의 말주변, 자기의 과거 공적들을 과대포장하여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비난하며 그는 정식 사도도 아니라고 비난하여 사람들의 의심을 부추기기도 하는 비열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넘어갔습니다.

 

그런 일을 만나면 사람들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대응하기 쉽습니다. 육신의 방법을 동원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3절에서 말하는 육신을 따라 싸우는 것입니다. 고소 고발을 하고, 내 편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기억하면서 그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는 육신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지 않고 영적 무기를 가지고 싸우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온유함으로 이 억울하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렸을 때부터 온유하고 성숙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으로 이삭이 있습니다. 그의 온유한 성품은 자기를 제물로 드리려는 부친 아브라함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짐짓 결박당해주는 모리아 제단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요즘 젊은이 같으면 어림이나 있는 일이겠습니까? 온유하고 성숙한 성품을 가진 이삭은 그의 성품과 같은 평생을 순탄하게 살아갔습니다. 같은 신앙의 소유자인데도 성품이 억척스럽고 욕심 많은 야곱의 파란 많은 생애와 비교가 됩니다. 이렇게 온유하고 성숙한 성품의 소유자는 그 생애도 부드럽고 순탄하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어서 4~6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사단의 세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견고한 진을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견고한 진이 무엇일까요? 전쟁이 터지면 지휘부는 벙커 안의 튼튼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 사단을 부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나라를 부수는데 사단과 직접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자 강력한 힘이 생겼습니다. 그 강력한 힘은 바로 성령이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단을 이기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하고 또 성령의 역사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아온 교육이나 사회 분위기가 헬라철학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철학은 인간은 위대하며 하나님 없이 스스로 완전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성경말씀을 가장 높은 하나님의 지혜로 알고 그것을 알면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온전한 복종만이 가장 큰 하나님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복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무기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내리고 나의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옳은가 그른가는 살펴보지도 않고 판단내린 마음대로 입술을 통하여 쏟아버립니다.

"목사란 사람이 뭐 저래? 목사가 어떻게 교회보다 자기 아이를 더 생각해?"

"장로란 사람이 주일에 교회에 빠졌어? 아니 무슨 장로가 그 모양이야?"

"저 사람은 권사라고 하는데 물건값을 그렇게 비싸게 받을 수 있어?"

 

일의 앞뒤는 살펴보지도 않고, 성경말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준과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혀를 놀립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자기의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판단하고 행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분별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늘 영적인 싸움을 합니다. 영적싸움은 헛된 이론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높아진 사상을 무너뜨려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높아진 이론과 사상을 무너뜨려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신에 따르지 않는 온전한 복종입니다. 이 복종을 기꺼이 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능력의 주님이시여!

우리가 세상의 법에 빠져 육신의 생각으로 주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면 이 시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온전한 순종과 복종으로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고 행하면서 주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영광을 높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