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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2:5 주일예배 20211017)

by 온누리선교 2021. 10. 16.

성경본문: 마가복음 2: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설교 :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 분께서 우리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시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라는 분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교회도 괜찮고 해서 그저 그런 좋은 느낌으로 예수님을 대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신 분이십니까? 그 분에 대해 요한복음 5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적의 연못이라는 베데스다에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병자들은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할 때 먼저 그 물에 들어가면 어떠한 병이라도 낫는다는 전설을 믿고 다들 그 근처에 있었습니다. 언제 천사가 내려올지도 모르는 그 이야기에 매달려 밤이 오나 낮이 오나 그 베데스다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38년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가오시자, 자신을 천사가 와 물이 동할 때 데려가 줄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자, 예수님께서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38년된 중풍병자는 병이 나아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은 이 병자에게 오셔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릴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멀리서 지켜보며 신기한 구경거리도 아니십니다. 실제하시고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에게 직접 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에게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란 동네의 한 집에 거하게 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구름떼 같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다 한결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가버나움에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떻게 중풍병자의 네 친구, 서기관, 동네 사람들이 주님의 기적을 목격하였는지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어 축복을 받았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있을 때, 네 사람이 침상 위에 누운 한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메고 찾아왔습니다. 네 사람이 메고 온 것을 보면 이 환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밖에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환자를 주님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없이 계단을 통해서 평평한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뚫어서 무리를 가르치시는 주님 앞으로 그 환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에게 확신이 없었다면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하는 일을 보시고 그들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합당하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 환자의 질병이 죄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먼저 그의 죄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중풍병자를 향해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 주님은 병을 치유하기 전에 먼저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의 율법상, 모든 질병은 죄 때문에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죄용서함은 중풍병자 때문이 아니라 네 친구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죄용서와 함께 병을 낫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 친구의 어떤 점이 과연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요?

 

첫째, 돌아서지 않는 결단입니다. 네 명의 친구는 중풍병으로 반신불수가 된 친구를 고치기 위해 침상채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바람이나 수고, 노력과는 달리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으로 인해 문 앞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망연자실 좌절하거나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다 떠나기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좌절하지도, 돌아가지도, 무작정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뚫습니다.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지붕을 뚫어버립니다.

우리도 이러한 적극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 당당히 나가고 싸우고 매달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목적이 선하다면 좌절해서 돌아서기보다는 벽을 뚫어내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결단이 우리의 삶에 있을 때 놀라운 기적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둘째, 희생을 각오하는 섬김입니다. 네 사람은 집안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자 병이 든 친구를 위해 지붕을 뚫습니다. 남의 집 지붕을 뚫은 네 친구에게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까요? ,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집주인에게 법적인 보상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경우에 기본적인 배상을 두 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남의 집 지붕을 동의 없이 뚫은 네 친구는 지붕에 대한 2배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배상은 그들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중풍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 대가는 좋은 보상이 아니라 집 주인에게 주어야 할 두 배의 손해배상비용이었습니다.

그럼 네 친구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친구를 위해 지붕을 뚫으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가 아는 이스라엘의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의 집 지붕을 뚫습니다. 반신불수의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자신들의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셋째, 믿음의 확신입니다. 지붕에서부터 내려오던 침대는 마침내 예수님 앞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 침대로 인해 예수님은 말씀을 멈췄고 사람들은 웅성거립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긴 문제는 뭐였을까요? 그것은 침대를 본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그 침대는 설교에 집중하던 예수님으로 하여금 설교를 멈추게 만들었고, 조용한 방안을 한 순간에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던 겁니다.

지붕을 뜯어낸 네 친구는 침대를 아래로 내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기분 나쁠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추측이 가능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했던 것일까요? 그들은 예수님은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우리는 예수님께 야단을 맞을지 몰라도, 내 친구만은 반드시 고쳐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내 친구만은 반드시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그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2:11)라고 그에게 명령하시니, 그 중풍병자는 자신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집으로 갔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세 부류의 사람이 목격했습니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들, 서기관들,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서기관들은 그 선한 기적을 목격하고도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7)이라고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또 그 자리에 있었던 동네 사람들은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2:12)라도 말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외국인을 위한 사역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문제 없는 사람들이 제게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들 한국에 살면서 문제가 있어서 제게 상담을 하러 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문제를 상담하러 온 사람들의 생각이 바로 오늘 나오는 세 부류의 사람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서기관처럼 제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떠보려 온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진짜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지 궁금해서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제가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고, 그 문제를 해결안해줘도 상관없어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저라면 어떤 사람을 도와주겠습니까?

 

하물며 저같은 사람도 간절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돕는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의 확신을 가진 네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친구 중풍병자의 병을 낫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중풍병자의 네 친구들과 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붕의 벽도 뚫어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가라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중풍병자의 네친구들이 친구를 사랑하고 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올 때 구경꾼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더라면 용서하여 주시고, 오직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의 구원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