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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강해 11) 서로 위로하라 (수요기도회 20211006)

by 온누리선교 2021. 10. 5.

성경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설교: 서로 위로하라

 

옛날에 어떤 부자가 돈은 많이 있었으나 자식도 없고 별로 웃어 볼만한 일이 없어 하루는 말을 타고 여행을 가는 도중에 앞을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옷은 남루한데 즐거운듯이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그대는 무엇이 그렇게 기뻐서 춤을 추는가?` 한즉 이 거지가 대답하기를,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하등동물로 짓지 않고 사람으로 지은 것이요.

둘째 내가 다행히 한 다리만 절므로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때문이요.

세째 지금 나를 부러워 하는 사람 없으나 내가 죽으면 하나님 품에 안기울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좋아서 춤을 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우리의 소망은 하늘 보좌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이를 사도 바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 소망을 구체적으로 오늘 말씀 가운데 사도 바울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소망에 대해 알아보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닏.

 

13~14절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죽은 자에 대해서 '죽었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자는 자'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것과 자는 것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죽었다면 다시 깨어날 수 없지만 자고 있다면 다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대해서 세상적인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에 가장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세상에서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죽음은 영원한 저 천국에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의 장례식장은 통곡와 절망이지만, 우리 기독교의 장례식은 천국 환송 예배가 되고, 우리는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14절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3일만에 그 모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우리가 장차 어떻게 부활하게 될지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 말씀은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즉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게되면 바로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할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의 모습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실 때,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가장 놀라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은 더 이어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15~1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은 성도에게 소망이 되며 큰 위로가 됩니다.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가실 때의 모습 그대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날 사건의 순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곧 심판의 날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꼭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릴 때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그때 먼저 천사들을 통해 온 세상 모든 곳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마태복음 24:31).

이는 주님께 소환된 모든 자가 사방에서 나아오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주님처럼 새로운 몸으로 부활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2).

이어서 살아 있는 자들도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는 죽었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서 주님을 먼저 만나고, 그 이후에 살아 있던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져서 하늘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의 재림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에게 소망의 날이기에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됩니다(로마서 14:8).

 

이것을 보면, 얼마나 우리가 이 세상의 고통 속에서도 주님만을 따르는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만한 가치를 위해 주님의 은혜 안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서신서를 읽을때마다 이 편지가 쓰여질때 당시의 사람들의 상황이 어떠했을까? 그들은 어떤 형편에 처해있을까?라는 것을 많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찬송가 336, ‘환난과 핍박가운데서의 가사를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그 환난과 핍박을 감히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표현을 해 보자면 당시 예수믿는 사람들은, 초대교회때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가 쓰였을 당시에 이 예수믿는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폭력에 노출된 환란과 핍박. 그냥 아이고 힘들어이 정도 수준이 아니라 늘 위협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데 그냥 약올리기 위해서 던지는 돌이 아니라 죽일려고 던지는 돌을 맞으면서 살아가는 상황이 바로 이 상황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전도여행은 얌전하게 다닌 길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가운데에서 바울의 1차전도, 2차전도 여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데살로니가 전서를 읽으면 그런 감정속에서 여러분 거룩해야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거룩함을 포기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기 가운데 여러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옆에 누가 보이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런 편지를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 절 18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라고 표현합니다 이정도의 위로를 받아야 할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힘든상황에 처해있다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4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박해가 있었던 교회, 환난과 핍박이 있었던 교회, 고난이 있었던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란과 박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 견디고 있어서 사도들이 자랑할만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현재상황은 어떤 상황이냐면 죽음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바라보는 것. 죽음에 직면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 그들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빨리 다시 오셔야 합니다. 죽을 것 같으니까. ‘죽어서 끝나버리면 어떻게하지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정말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처절한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비전의 사람들입니다. 부활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속에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한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런 은혜를 누리고 살게 될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소망되시는 주님이시여!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세상 앞에 당당함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부활신앙을 소유한 자로서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소서. 고단한 제 삶에서 가장 큰 위로와 소망은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임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활의 산 소망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죽음 앞에서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인내하며 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오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