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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강해 6) 선행을 해야하는 그리스도인 (수요기도회 20221019)

by 온누리선교 2022. 10. 18.

 

성경말씀: 디도서 3:1-7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선행을 해야하는 그리스도인

 

런던을 처음 방문해 친구 집을 찾다가 길을 잃은 한 미국인이 있었습니다. 안개까지 자욱해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는데 한 소년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혹시 길을 잃어버리셨나요?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러나 그 길은 너무 멀었습니다. 하지만 남자가 길을 잃을까봐 걱정된 소년은 한 시간이나 걸어 집을 찾아주었습니다. 다시 한 시간을 걸려 돌아가야 할 소년이 걱정되어 남자는 돈을 좀 챙겨주었으나 소년은 거절했습니다.

아저씨 덕분에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소년단은 하루에 한 가지 선행을 반드시 해야 하니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죠.”

그리고는 돈을 받지 않고 뛰어서 돌아갔습니다. 이 선행에 감동받은 남자는 미국에 돌아가 소년이 말한 보이스카우트 연맹을 세웠고, 또 전 세계로 퍼트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소년을 만난 마을에 이런 글을 새긴 들소 동상을 세워주었습니다.

날마다 착한 일을 해야 하는 보이스카우트를 미국에 알려준 한 이름 모를 소년을 위해 이 동상을 바칩니다.”

진심으로 행하는 것은 작은 선행일지라도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진심을 담아 하루에 최소 한 가지의 선행은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보낸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서 세상에서 선행을 행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국가 통치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자세는 복종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라하고 있습니다. 13:1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일 나치의 히틀러나 러시아의 푸친과 같은 경우는 순종하면 안됩니다. 이들은 통치자로서 역할을 바르게 수행하지 않고, 온갖 불의를 행하는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1절 하반절에서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일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3:1-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하라"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기독신자에게 국가와 권세와 정치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주권의 근본은 다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미국 헌법에 '감사하리로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관헌을 택하는 권을 주셨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그 권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주권 정치가 잘 되며 축복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권세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일군됨"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만약 이 책임을 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주권을 옮기시기도 하고 나라를 망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정치가는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하신 것처럼 완전 분리주의는 그리스도의 교훈에도 적합하며 교회는 영적 범위 안에서 완전 자유이고 간접적으로 국가의 정신적 기초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줄 알아 영광을 돌리는 경건한 명령에 순복하고, 공의에 기초하여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국가를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선한 일을 행하여 국가에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2~7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2~3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2절에 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비방은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남에게 비방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마음이 어떻습니까? 기분이 몹시 상합니다. 심장이 뛰고, 분노가 일어나고, 입맛이 떨어지고,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비방은 폭력을 가하는 만큼이나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는 언어의 폭력입니다.

또한 다투지 말며 관용하라고 합니다.

다툼은 정욕에서 비롯되고,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싸움의 결과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싸우면서 좋은 마음이 들기는 커녕 추잡하고 악한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니 절대로 다툼에 휘말리면 안됩니다.. 관용은 다툼과 반대개념입니다. 대부분의 다툼은 잘잘못을 따지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관용은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이기에 관용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는 부드러운 힘입니다. 정말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한한 능력이 있었지만 그 능력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하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서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7절까지 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끝이 아닌,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나라의 선물이자 소망, 기대인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참으로 큰 은혜는 우리의 노력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이 은혜의 동기에 대해서 디도서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 이 사랑하심이 자비와 긍휼이 되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거나 잘해서가 아닌, 악하고 악한 존재인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할 때에도, 우리가 악에 빠져 있을 때도 이 사랑하심이 근심보다 자비를 베풀게 하시며 이것이 구원의 동기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5절을 보면, 이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이끌어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이렇게 값없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 그 은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야 할 자세는 어떤 자세일까요? 오직 기쁨과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돌아보면, 원망과 불평, 누군가에게 그것을 탓하고 내가 가진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바리새인처럼 다 악한 가운데 나만 선하고 옳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과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 안의 열정과 내 안이 헌신과 용기를 이끌어내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며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나타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성도로 사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때로 돌아보면, 우리가 모여있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게 되고 그러한 가운데 돌아가서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러한 말을 했을까 돌이켜 반성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왜 나는 하나님처럼, 예수님 닮은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까 하는 자책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디도서 6-7절을 보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처럼, 나의 힘으로 의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고, 이 성령의 힘을 입어 우리가 날마다 힘을 입어 하나님 뜻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내 노력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 받은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의롭게 사는 삶 자체도 내가 살아내려고, 내가 열심히 내 노력으로, 내 잘함으로 사는 것이 아닌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고 허락하시는 힘과 능력 안에서 그렇게 살아나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로 날마다 거룩한 마음을 좇아가고, 그러한 마음을 소유하고자 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실 줄 믿습니다. 내 결정, 내 의지, 내 열심, 내 어깨에 올려진 힘을 빼시고, 세상에 속해서 살아갔던 옛 모습을 버리시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와 오직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이 주시는 힘과 능력만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 항상 주님의 법을 따르고 주님의 은혜를 받은 것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늘 선행하므로 세상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이게 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