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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 21) 임박한 심판 (수요기도회 20241110)

by 온누리선교 2024. 1. 10.

수요기도회 20240110

 

설교본문: 베드로전서 4: 17-19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제목: 임박한 심판

 

안티오쿠스 왕은 페르샤에 침입하여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려고 하였으나, 그곳 주민들의 맹렬한 방어전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져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티오쿠스 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유다인들에게 앙갚음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쉬지 말고 병거를 몰아가라고 마부들에게 명령하며, "예루살렘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곳을 유대인들의 공동묘지로 만들겠다"라고 큰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내장이 뒤틀리고 격심한 복통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유대인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폭언을 퍼부으면서 행군을 독촉했습니다. 그러다가 질주하는 병거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들것에 실려 가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의 몸은 썩어 들어가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그는 제 몸에서 나는 악취를 견딜 수 없어하며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죽어야 할 인간이 하늘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치않다"라고 신음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루살렘에 자유를 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은 거두어지지 않아, 그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이국의 산골짜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악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젠가는 심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악을 멀리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7절에서 18절입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 9장에서 이스라엘의 심판을 말하며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고 하신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말하는데, 심판의 시작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심판이라는 단어가 최후의 심판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심판은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현재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심판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며, 최후에 믿지 않는 자들이 당할 심판에 비해 훨씬 강도가 덜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심판을 통해 믿음의 배반자가 걸러지고, 참된 신자들은 정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믿지 않는 자들을 판단하시고 벌하실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설 수 있겠느냐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정결하게 하는 심판을 받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진노의 불심판은 얼마나 두려운 것이겠습니까?

 

18절을 보면,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 서리요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구원받기 위해 이토록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마지막 심판의 때에 믿지 않는 자들은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겪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은 장차 불신자들이 당할 고통의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미래가 이러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들에 대하여 불쌍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성도들답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동시에 부지런히 선을 행하며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영원한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내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절의 말씀입니다.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며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23:46).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뜻대로 고난받으며 선을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탁할지어다라는 말은 믿을만한 자에게 자신의 재산 등을 맡기거나 위임하는 것을 가리키는 상업 용어로 맡기다, 투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계속 선한 일을 하면서 그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투자하라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재산이 조금만 있어도 투자할만한 곳을 찾습니다.

그런데 투자는 항상 원금손실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시대는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에 적절한 투자처를 찾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투자이익이 좀 적더라도 원금보장을 받는 상품들을 선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투자처로서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우선 안정성 면에서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신뢰할 만한 분이십니다.

이는 성경 말씀과 교회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입증됩니다.

잠언 3:5-6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선배 중에 폴리갑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단 한번만 말하면 석방해 주겠다라며 회유했지만 이렇게 고백하며 기꺼이 순교를 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사는 86년간 단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 분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야말로 이 땅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면,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부터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담대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공로로 거저 구원 받았는데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예수님을 본받아 희생하고, 양보하고, 선하게 살고, 나그네와 같이 사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가장 복된 삶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깨우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되,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내 유익을 채우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지, 성령의 권능을 잘못 이해하고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도의 기본자세를 되짚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먼저 고난 받고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에 믿음의 삶을 다시 고쳐 잡습니다. 성도의 삶이 평안하고 형통한 것은 고난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난 중에도 성령께서 동행하시기 때문을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지키는 저희들이 되도록 성령의 권능으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