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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란 (잠언 10:22, 주일예배 20240121)

by 온누리선교 2024. 1. 28.

설교본문: 잠언  10:22

주의 복, 그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그분께서는 그것에 슬픔을 더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설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특별한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태양이 일 년에 한 번만 뜬다고 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은 그 해를 보고 감탄할 것이며, 해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뜹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감사할 것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아주 자주 불평 거리만을 찾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는 축복에 익숙해져 있는 마음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 유일한 치료 방법은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신 모든 것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보고 듣는 것마다 신기해하며 놀라움을 발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평범한 은혜와 생활의 위안,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 좋은 음식과 옷, 따뜻함과 빛, 그리고 공기, 가정의 평화와 사랑의 신성한 끈 등 우리가 해야 할 감사는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아주 진지해져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일들은 우리 주위에 항상 있습니다.

미국선교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미의 미개척지에서 선교사님 한 분이 매우 중한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슬픔이 더 하였던 것은 그녀에게 돈이 도착하지 않아서 자신이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날마다 오트밀과 깡통에 든 우유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점차 회복이 되었으며 꾸준히 30일 동안 오트밀 음식을 먹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송금한 돈을 받게 되었고, 다른 것들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휴가 때가 되자 그녀는 이 시련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간증을 듣던 사람 중에 한 의사가 그녀의 병의 증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는 심한 소화불량이 있었다는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돈이 빨리 도착했었더라면 당신은 오늘 나에게 여기서 말할 수 없었을 거요. 우리가 그 병을 위하여 항상 처방하는 음식이 바로 30일간의 오트밀 식사랍니다."

그녀의 고난이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은 축복을 싸고 있는 보자기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자 합니다. 그 은혜로운 뜻을 알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시는 저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0장 22절의 말씀입니다.

주의 복, 그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그분께서는 그것에 슬픔을 더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하게 한다는 말씀을 영어로 보시면, rich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주변 환경으로나 아주 풍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슬픔이 더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힘을 얻어내는 물질과 부유함에는 슬픔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온전하며 슬픔이 더해지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구약에서의 복과 신약에서의 복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던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습니까? 네,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야곱도 부자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 역시도 부자였습니다. 다윗도 부자가 되었고, 솔로몬도 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사람으로 오실 때부터, 남의 집 마구간 말구유에서 오셨고,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을 만나고 더 부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다 버렸습니다.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자기에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더 가난해졌습니다.

이것은 아주 큰 흐름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정말 가난하였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대언자였지만, 가난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신실한 대언자였지만 감옥신세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또 신약시대에도 부자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습니다.또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믿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교회의 역사를 볼 때도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의 진젠돌프 백작도 부자였고, 스탠리 탬도 하나님께 신실한 사업가이자,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특수한 몇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면 만수르나,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은 물질적인 번영이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물질적인 보상과 영광은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에서 주어질 것입니다. (엡 1:3)

즉,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복은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입니다. “영적인 복”이라는 것은 먼저 죄들이 용서받고 가려진 복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은혜와 평강과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영적인 복”은 어떤 힘을 가질까요?

일본에 사는 “미우라 아야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일생, 77년 동안 그녀는 병과 싸웠습니다. 그녀는 24세부터 결혼하기 전 37세까지 13년 동안은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는 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의 비극은 자신은 억울하게 고통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어느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이러한 깨달음을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일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돼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고, 문제 해결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삶의 위기가 있을 때에도 우리는 주의 은혜에 감사할 것이고,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곧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이 있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마귀와 질병과 저주는 순식간에 결박당하고 그의 앞길에는 축복의 대로가 활짝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 있는 것이 바로 “영적인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길로 나가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 “언약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어떤 이가 목사님을 찾아와 항의를 했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교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에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인 우리에게 그 아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눈만 뜨면 무섭게 달라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지난해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성도님 살아있는 교회는 헌신을 요구한답니다. 죽은 교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헌신의 요구에 대해 응할지 말지는 성도님의 몫이랍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로 살 수 있을까요? 신명기 30장 20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아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그 축복의 세계에 머물 수 있는 비결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삼은 언약의 관계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축복의 세계에서 사시는 분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축복 가운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시는 주 하나님

우리는 오늘 만복의 근원되시는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길 가운데에는 슬픔이 더해지지 않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