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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4:13-14, 주일예배 20250202)

by 온누리선교 2025. 2. 1.

성경본문: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설교제목: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살다 보면 필요한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갖지 못했다고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것을 추구하느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또 이런 사람은 자신의 것을 바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성령의 하나님이 마음 속에서 쉬지 않는 만족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세상이 해결해줄 수 없는 목마름을 해결받았습니다.

우리도 그 목마름을 이 자리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은 낮 12시쯤 사마리아 수가(Sychar)에 위치한 야곱의 우물가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셨기에 정오의 뜨겁게 내리쬐는 볕과 긴 행로에 목마르고 피곤하셨습니다.

이때 사마리아 여인 한 명이 우물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셨습니다(요한복음 4:6~7). 육신을 입고 등장하신 하나님과 여인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물을 달라는 예수의 요청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던 유대인이 물을 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멸시받는 사마리아 여인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야곱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생명수를 구한다면 주겠노라고 하신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사람이 물을 마시면 순간은 갈증이 해소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을 마셔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심한 갈증이 나고 목마르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는 육적인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실제 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생수를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7)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그 생수를 마시는 조건은 바로 단 한가지,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요, 나의 메시야라는 믿음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입니까?

그 믿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요한복음 41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정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생수는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줄 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의 길과 영생의 세계로 인도해줍니다. 갈증 나서 애가 탄 사람에게 물이 들어가면 그 갈증이 사라지고 새 힘이 솟듯, 예수님은 우리의 심령에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갈라지고, 염려하며, 화가 나고 불안한 마음에 그 분이 공급하시는 생수는 우리 안에서부터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 갈라지고, 메마르고, 녹슬었던 자리가 유연해집니다.

그는 외로움 대신 사랑을, 두려움 대신 담대함을, 분노대신 기쁨을, 염려대신 소망을, 불안 대신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기에 영혼의 갈증에 대해 예수님 외에는 해결자가 없습니다. 세상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그 갈증을 해결해 줄 것 같지만 그것은 생명수가 아니라 이른바 영혼에 해를 끼치는 톡쏘는 콜라나 사이다같은 청량음료일 뿐입니다.

"청량"하다의 의미는 맑고 투명하다라는 의미인데 사이다 광고를 하면서 맑고 투명한 물에 소다 거품을 강조하면서 광고하면서 이름마저도 청량음료라고 지어 놓으니 "왠지 들이키면 시원하고 달콤하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소다음료는 사실 마실때만 시원하고 실재로는 갈증이 잘 가시질 않습니다. 그 속에 있는 당분이 입 안에 남아서 오히려 더 갈증이 납니다.

그리고 그 당분과 소다성분이 합쳐져서 이를 썩게 하고, 위장을 거북하게 하며, 몸의 건강을 해칩니다. 이런 것들이 점점 알려지고 강조되면서 조금만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알아서 소다를 회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청량음료라는 착각에 속아서 들이키게 되면 결국은 건강을 상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착각을 불러 일으켜서 우리의 인생의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라 여기면서 좀처럼 끊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 성공, 명예, 권력, 섹스, 도박, 게임, 쇼핑....등등

사람들은 여전히 이것들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착각합니다.

이것들을 추구하고, 이것에 중독되어 가족, 건강, 그리고 사랑을 포기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청량음료처럼 영육간의 건강을 헤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생수를 찔끔찔끔 주시지 않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정도로 아주 충분히 주십니다.

이것은 제한이 없습니다. 늘 넘칩니다. 늘 끊임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야 합니까?

요한복음 159절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아멘! 여기서 거하라는 것은 방문하라는 것이 아니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 안에서 살아라. 그 분 안에서 살아라. 그 분의 사랑으로 내 집을 삼으라. 그 사랑 안에 거하면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가 그 분 안에서 함께 살며, 안식을 취하고 배고플 때는 그곳에서 밥을 먹고, 외로울 때는 그분의 사랑으로 위로받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염려되는 일이 있습니까?

그러시다면 고통 많은 여러분의 집에서 나와서 그 분의 사랑안에 당신의 집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그 가지는 죽은 가지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나무에 접붙인 바 되면 죽은 가지와는 상관없이 나무의 열매가 나옵니다. 이렇게 주님의 집에 사는 자는 주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분의 열매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열매입니다. 그냥 넉넉히 쌓아놓는 열매가 아니라 때에 맞게, 꼭 필요할 때에 주시는 모자람이 없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생수를 마시려면 바위를 깨뜨려야 합니다. 생수는 파야 나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약점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파헤치는 경험 없이 죄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너무나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파고 또 파헤쳐서 깊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는 은혜의 생수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있는 사람들은 사막을 횡단할 때는 낙타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낙타는 자기 등어리에 큰 물주머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물주머니에 물을 가득 채우면 며칠 동안 물을 안마셔도 사막을 가로질러 갈 수 있습니다.

낙타는 자기 속에 있는 큰 물주머니에서 조금씩 조금씩 끌어내어 마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낙타를 보면서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목마름이 올 때 주님이 주시는 시원한 성령의 만족감을 얻게 되면 세상것을 추구하려던 마음이 싹사라져 버립니다.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세상의 욕심이 몰려올 때에 믿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자기 손에 넣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도둑질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것을 손에 넣어야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마음 속에서 들려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빨리 자기의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죄를 짓는 쪽으로 나가지 않게 됩니다. .

그런데 이러한 일은 그냥 교회만 적당히 왔다갔다하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만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성령의 음성에 예민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누구나 할 것 없이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기에 마음에서 들려오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예민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적 예민함으로 성령님의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성령이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흘러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 생수의 강은 우리를 절대로 목마르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 결코 목마르지 않게 하는 그 생수의 강에서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오셔서 당신의 생수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나를 진정 위로하고 만족케 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우리가 잠시 떠난 것 용서하여주시고, 다시 주께 돌아가는 심령들마다 주님께서 성령충만케 하셔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울지 않게 공허하지 않게 붙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저 천국에서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주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