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복음 7:37~39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설교: 생수의 강
재산이 많은 어떤 부자가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에 만족하며 산다고 한다고 자신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자기의 만족함을 증명한다면 그 사람에게 만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만달러의 상금을 받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 와서 자기가 얼마나 만족하며 사는지를 증명하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어서 행복하기에 세상에서 더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은 유명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지금은 높은 학위를 가지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와 사는 아내가 너무나 완전해서 흠잡을데가 한군데도 없기에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들이 행복하며 만족한 삶을 산다고 나름대로 증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금을 타려고 응모했던 사람들 중에 상금을 타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광고주가 던진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그렇게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왜 내가 주겠다는 만 달러에 욕심을 내고 찾아 왔나요?” 이 말은 거기에 일만 달러를 타기 위해 찾아 왔다는 그 자체는 삶에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진짜 자기의 삶에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만달러에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해도 또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리며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혹시 아직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목말라하며 방황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이것 저것을 하며 자기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방황하고 있지는 않나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에 마음에 만족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목말라하는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죄로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자꾸 우리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무엇인가를 가져야 만족할 수 있다고 부추깁니다. 자꾸 세상의 쾌락을 즐기고 싶어하도록 만듭니다.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므로 다른 사람을 끌어 내려서라도 만족감을 차지하고 싶어하도록 만듭니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할 때 일어나는 증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살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십시오. 아니, 반대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때와 멀리 떠나 소위 평범하게 지낸다는 세상의 삶을 비교해보십시오. 회사동료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보람을 느끼면서 또한 회식까지 해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들어온 다음 당신이 하루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어떠한 느낌이 듭니까? 더 같이 더 함께 한 시간들 이후 더 큰 공허함이 오는 것을 종종 느끼셨을 것입니다. 위로의 말을 들었고, 사랑의 따스한 언행도 느꼈지만, 마음이 허하고 밀려오는 외로움의 공포는 어느 누구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의무감으로 간 예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은혜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예배를 드린 분들은 그 잠자리가 평안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에너지는 사람의 에너지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의 따스한 영향을 온전히 부어주시지만 사람들은 종종 위로받으러나갔다가도 도리어 상처만 입고 오는 경우도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공허함을 느끼며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더 나아가 마치 목말라서 물을 간절히 찾듯,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무엇인가를 얻어 우리 자신을 채우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과의 단절임을 외면한 채 그것을 자녀가 나에게 만족함을 주지 못한다, 남편과 아내가 내게 정을 주지 못한다, 친구와 사회가 나를 따돌림하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부모가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 등등 여러 이유와 변명들로 포장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에서도 만족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나를 만족케하며 목마르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나의 자녀가 나의 말에 순종하고 1등 아들, 딸이 된다 할지라도, 나는 더욱 더 큰 것을 자녀에게 요구할 것이고, 결국 그 욕심은 더 갈한 목마름만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에 쓰여 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것은 바로 ‘죄’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1장에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9). 라고 쓰여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모른다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죄인데 인간들이 목마름을 느끼며 사는 것은 이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마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함께 37~38절 읽으시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거절할지라도 주님은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영접하기 힘들다 할지라도 주님은 영접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종종 우리 성도 여러분들 중에는 자신의 발로 자신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예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미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떤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나를 영접해 주신다는 진리를 굳게 믿고 사시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목마르거든”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목마른 자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이 목마름은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라 영혼의 목마름을 말합니다. 목마르다는 것은 일종의 결핍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적인 목마름도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만이 느낍니다. 우리는 때로 말씀을 통해 가슴이 시원해짐을 맛봅니다. 기도를 하면서 영적으로 채워짐을 느낍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갈증을 느낍니다. 기도를 해도 예전처럼 시원하지 않고, 말씀을 들어도 냉랭한 것 같을 때면 내가 왜 이런가 고민이 됩니다. 이처럼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3-6)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목말라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나오라는 말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 오라는 말씀은 단지 교회만 참석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옳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되심을 확실하게 믿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은 바로 나를 위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부활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내리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자신을 드리겠다고 결단 내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오시면 우리 속에 있던 죄악된 마음을 의롭게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살다 보면 필요한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갖지 못했다고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것을 추구하느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대신 자기를 드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성령의 하나님이 마음 속에서 쉬지 않는 만족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막을 횡단할 때는 낙타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낙타는 자기 등어리에 큰 물주머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물주머니에 물을 가득 채우면 며칠 동안 물을 안마셔도 사막을 가로질러 갈 수 있습니다. 낙타는 자기 속에 있는 큰 물주머니에서 조금씩 조금씩 끌어내어 마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낙타를 보면서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목마름이 올 때 주님이 주시는 시원한 성령의 만족감을 얻게 되면 세상것을 추구하려던 마음이 싹사라져 버립니다.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세상의 욕심이 몰려올 때에 믿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자기 손에 넣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도둑질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것을 손에 넣어야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마음 속에서 들려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빨리 자기의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죄를 짓는 쪽으로 나가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그냥 교회만 적당히 왔다갔다하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만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성령의 음성에 예민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바로 우리의 양심을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마음에서 들려오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예민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성령이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흘러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오셔서 당신의 생수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나를 진정 위로하고 만족케 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주를 잠시 떠난 것 용서하여주시고, 다시 주께 돌아가는 심령마다 주님께서 더욱 충만히 성령부으셔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울지 않게 공허하지 않게 붙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저 천국에서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주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강해 34) 돌을 내려놓는 은혜 (수요예배 20121024) (0) | 2012.10.24 |
---|---|
요한복음강해 33) 죄때문에 분열하는 사람들 (주일예배 20121021) (0) | 2012.10.20 |
요한복음강해 31) 예수님을 향한 세가지 질문 (주일예배 20121014) (0) | 2012.10.13 |
요한복음강해30)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수요예배20121010) (0) | 2012.10.10 |
요한복음강해29) 진실로 당신은 예수님에 대해 아십니까? (주일예배20121007) (0) | 2012.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