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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아의 축복 (주일예배 20130714)

by 온누리선교 2013. 7. 14.

성경봉독 누가복음 15:11~24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설교: 돌아온 탕아의 축복

한 홍 목사님께서 지으신 [홈, 스위트 홈](두란노 2001)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광활한 미 대륙을 횡단하는 고속버스에 젊은이들이 가득 타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중서부의 한 정거장에서 웬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 한 명이 버스에 탔습니다. 청년은 버스 구석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버스에 있던 젊은이들은 커피와 도넛을 나누어주면서 말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마음이 열린 그 청년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청년은 고등학교 때 집에 있는 돈을 다 훔쳐서 무작정 도시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타향 객지에서 금세 돈을 탕진한 청년은 그 뒤 먹고살기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다가 마침내 도둑질까지 해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이 청년은 자신이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비로소 깨닫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하면서, 하지만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니 용서해 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자기가 출옥하는 날 바로 고속버스를 타면 오후 몇 시쯤에 동네 앞 버스 정거장을 지나게 될텐데, 만약 아버지가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준다면 그 정거장 앞에 있는 은행나무 가지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걸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면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추호도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연을 듣고 난 젊은이들은 일순간 술렁대기 시작했고, 곧 청년의 고향 가까이 모두들 창에 매달려서 문제의 은행나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청년은 너무 떨려서 감히 밖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서서히 커버를 돌면서 마침내 문제의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밖을 보던 젊은이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청년을 일으켜 밖을 내다보게 했습니다. 은행나무 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이 몇 장씩 매달려 있어서 은행나무 전체가 노란 잎으로 출렁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그 앞에 웬 노신사가 엄청나게 큰 노란 깃발을 들고 버스를 향해 힘차게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청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버스가 멈추자, 청년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젊은이들은 꼭 껴안고 울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오늘 이 보다 더 감동적인 성경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1~12절의 말씀입니다.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자기 몫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신명기 21:17절에 보면 장남은 재산 분배시 다른 형제들의 두 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 재산의 삼분의 일을 받았을 것입니다. 재산을 분배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친이 자식에게 주는 은총이요 선물이지 권리가 아닙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 당당히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 요구하고 집을 나가버린 이 아들은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들어 살길이 막막해 졌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돼지를 치는 이방인의 집에 붙여 살게 되었습니다. 즉 더부살이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마저 내주는 사람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제 집을 나가 자기 맘대로 산 이 아들은 완전히 다 잃은 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도 잃었습니다. 배고픔과 가난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 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축복 안에 살던 아들이 이제는 홀로 내버려져서 돼지보다 못한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신세가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도대체 왜 이 아들은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요?

둘째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나 자기 맘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 먼 나라로 가서 맘껏 자기 뜻대로 허랑방탕하던지 어쩐지 간에 살아서 나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자유가 없어지니 교회에 나가기 싫다고 그러는데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주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런데 사람들이 자유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제멋대로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래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에덴동산에다가 두었을까?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 글쎄 선악과를 만들었어도 따먹지 못하게 했으면 됐을 텐데. 왜 자유를 주어서 먹게 했을까?"하고 말을 합니다. 그럼 바꾸어서 우리가 동물과 다른 피조물과 같이 자유의지가 없이 살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짐승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행복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물질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달라하고,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아들처럼 아버지를 멀리하고 돈이나 재산을 통하여 행복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아무리 풍부한 돈이나 재산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돈이나 재산은 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만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13절에 보니,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 13절 "허랑 방탕하다'는 원어의 뜻은 '중심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탕자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그날그날을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곧 탕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아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악 된 세상에 빠져 엉뚱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가리켜 탕자라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세상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을 베풀고 살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교만하게 하는 사람들도 바로 탕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은 늘 낭비하고 소비하는 헛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17~19절의 말씀입니다.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두 가지 형태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가롯 유다 형으로 앞길이 담담하고, 캄캄할 때, 목매달아 죽으러 가는 자가 있고, 다른 하나는 베드로와 같이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다하더라도, 돌이켜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게 보시고 더 큰 믿음으로, 더 큰 은혜로 축복을 주십니다.

은혜는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은혜는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 어떤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오늘 본문의 둘째 아들이 받은 것입니다.

첫째로, 이 둘째 아들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바로,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된 것은 바로 자신 때문임을 인정했습니다. 이 아들은 현재 자기의 처지에서 돼지 치는 일을 불평하거나 곁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먼 나라에 가도록 내버려둔 부모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우리 자신의 심령을 깨닫는 것이 살길입니다. 간혹,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남의 탓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상에 착한 사람도 나에게만 오면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이 되고, 나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용서받고, 치유받고, 해결받지 아니하면, 세상의 그 누구와도 함께 제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하나님을 찾는 길이 축복의 길이요, 은혜의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 없다고 외치는 자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55:6-7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아들은 참으로 회개하였고,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돌아갔습니다. 회개만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돌아가는 행동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회개는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병원에서 병명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치료받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 사람은 죽으러 가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더 이상 죄악의 길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가는 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20~24절의 말씀입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멀리서 아들을 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를 볼 수 없었으나 아버지는 아들을 봤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일보 전진하면 하나님께서는 백보 달려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매일 고대하면서 기다렸기에 비록 아들의 모습이 변했고, 상거가 멀었으나 즉시 알아보고 달려갔습니다. 아들은 서서히 걸어갔으나 아버지는 달려갔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동작은 느리고 하나님은 매우 빠르십니다.

그리고 아들이 죄를 고백하기 전에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벌써 아들의 잘못을 용서한 것입니다.

집나가서 망해가지고 온 이 아들은 다시 둘째 아들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수속도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이렇듯 빠를 수가 없습니다. 물어볼 말도 없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이것 말고 다른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라 불러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용서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하자마자 은혜"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자마자, 우리가 죄를 고백하자마자, 예수님을 향해 "주여!" 부르자마자 주님은 은혜를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믿자마자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기만 하면 과거 현재 묻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럼, 돌아온 아들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아버지는 이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당시 옷은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항상 자신들이 제사장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늘 근엄하고 위엄있는 치렁치렁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좋은 옷을 입혔다는 말은 이제 아버지의 아들로 다시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61:10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셨습니다. 의의 옷을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들은 이 옷 자랑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옷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나타내는 옷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입혀진 옷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그 복된 옷들을 결코 헛되이 벗어버리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둘째로, 이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이 징표는 신분의 확인이고 권리의 확인입니다.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이제 너는 내 아들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반지 사건도 많이 나옵니다. 창41:41절에 보면, 바로 왕이 “내가 너로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리게 하리라”라고 말하면서, 바로 왕이 자신의 반지를 빼어 요셉 손에 끼워주는데 이것은 바로 왕권을 나눠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전 로마시대 때 보면, 반지가 바로 도장과 같은 역할을 하여서 가문의 반지같은 경우, 땅문서, 재산문서에 찍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 반지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권세입니다. 우리는 권세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권세입니다. 형제자매를 위해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지자의 권세입니다. 사단을 물리치며 이 땅위에서 우상을 이기는 것은 왕의 권세입니다. 이러한 권세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안에서 이 권세를 누리며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아버지는 이 아들의 발에 신발을 신겼습니다.

탕자의 더러운 신발을 벗기고 깨끗한 신을 신겼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내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은 '새로운 삶의 출발이요, 사명자의 발걸음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아들이 신은 신발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가라는 신발입니다. 엡6:15절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아직도 세상길에서 헤매는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넷째로, 아들을 위하여 아버지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온 이 아들을 위해서 거창한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송아지를 잡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배설합니다. 잔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잔치는 축제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생명의 축제요 회복의 축제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시고 우리의 인생에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집나간 탕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가정을 잃었고, 재산을 잃었고, 명예를 잃었고, 평안을 잃었고, 행복을 잃었고, 기쁨을 잃었고, 감사를 잃었고,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자 모든 것을 찾았습니다. 가정을 찾았고, 재산을 찾았고, 명예를 찾았고, 평안을 찾았고, 행복을 찾았고, 기쁨을 찾았고, 감사를 찾았고, 소망을 찾았습니다.

오늘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와 잃었던 모든 것을 찾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축복의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가 어리석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루에도 열두번이상 교회에 몸은 있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날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권능의 반지도 끼워주시며, 축복의 신발을 신겨주셔서, 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로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잔치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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