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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주일예배 20160828)

by 온누리선교 2016. 8. 27.

성경본문: 마가복음2:13~17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설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우리가 교회다니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이요? 성경말씀이요? 찬양이요? 아닙니다.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교회 목사님께 실망할 수도 있고, 여러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지도자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 나간다고, 혼자 하나님 섬기겠다고, 세상에 나가 더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과 살겠다고 말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아주 완벽한 거룩한 교회는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굳이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바로, 초대교회 일 것입니다. 초대 교회 중에서도 가장 영적이고 모범적인 교회 중에 하나가 저는 에베소 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이상 머물며 개척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목사님으로 모셨던 교회. 그것도 짧은 기간이 아니라 3년 이상. 바울이 아마 한 장소에 제일 오래 머물러서 집중적 선교를 했던 곳은 이 에베소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괜찮은 교회, 좋은 교회 아주 좋은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25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이런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25.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자 자기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26.화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곧 화를 푸십시오.

27.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기회를 주게 됩니다.

28.도둑질하는 사람은 이제부터 도둑질하지 말고 제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9.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을 하십시오.

거짓을 버리라고 합니다. 도둑질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화내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 중에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 있고, 화를 내는 자들이 있었으며, 도둑질도 하는 자들 뿐 아니라 더러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 안에서 거짓말쟁이, 도둑, 사기꾼, 욕쟁이들을 만나도 너무 놀라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들은 초대교회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21세기 우리와 함께 교회 안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났으면 무엇이라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까? 그 답은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의 치유와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해보고 그 안에서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1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오늘 본문은 레위라 불리는 마태를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가장 큰 주인공은 바로 세리 마태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꼭 이 이야기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경 안에서 소개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2장을 보면, 1절부터 중풍병자를 고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네 사람들이 메고 온 중풍병자가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자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가 누인 상을 매달아 예수님 앞에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중풍병자를 살릴 수 있다고 믿어 이렇게까지 하는 그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기관들이라고 하는 종교지도자들 몇몇이 불행히 살던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따스한 믿음으로 고쳐지는데도 불구하고 의심을 가지고 딴죽을 걸려고 준비하였습니다. 7절을 보면 서기관들이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근거로 한 모세의 율법의 관습에 따르면, 병이 있거나 불치병이 있다는 것은 부모나 조상의 죄에 의해서 병이 났거나 아니면 본인의 죄로 인하여 병이 났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병이 낫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함이요, 그 죄사함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의 관습에 의하여 예수님을 이상하고 괴이한 사람으로 율법을 어긴 사람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하며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세를 보고, 하나님께 그들 모두가 영광을 올리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을 선포하고 다니시던 중에 또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리인 알패오의 아들 레위였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이 사람이 바로 마태복음을 저술한 세리 마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이 레위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태는 본래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BC 169년 안티오쿠스 4세의 대박해 때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갈릴리로 대거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난 간 레위지파들은 본래 성전을 지키던 자들이라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고기를 잡을 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 레위사람들은 관청에 들어가 일자리를 얻기도 하고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걷는 일에도 동원되었습니다. 그래야 먹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리는 유대사람들에게 커다란 죄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속국, 식민지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속국의 주민들을 고용하여 해당지역의 세금을 거둬들이게 하거나 통행세를 직접 거두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우리나라 옛날 친일파들처럼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동족들에게 지나치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였을 뿐 아니라, 관청에 보고하고 남은 여분의 세금을 자기의 몫으로 착복하였습니다. , 당시 세리들은 로마에게 아부하고 자기 동족을 희생시켜 부를 축척한 변절자로서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던 거룩한 지파 레위족속들은 이제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타락해버린 세리가 되어 이제는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동족과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돈을 걷고 있는 세리 일터에서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세관에서 돈을 세고 있는 마태를 보고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태의 반응이 더 놀랍습니다. “일어나 따르니라예수님을 찾아간 것도 아닙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죄를 지으며 돈을 세며 살아가고 있던 마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고, 따라 오라고 했는데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혹시 주님께서 마태와 같이 나를 따라오거라라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사실 죄인이라면 이러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죄를 끊어버리고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면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회를 주셨고, 마태는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가려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축복이 있습니까?

15절의 말씀입니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세리들과 죄인들도 마태의 집에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 것입니다. 예수가 마태 자신의 집에 영원히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구제불능이며 대대로 타락해 버릴 데로 타락해버린 세리 마태를 예수님께서는 부르시고 마태의 집에 가서 거하시며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 뿐 만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어주시며 이야기도 나누시고 즐겁게 지내주셨습니다. 이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그의 집에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위로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16절에 보면, 율법을 잘 지키고 거룩한 삶을 산다는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구원을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이간질을 합니다. “어찌 너의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도 먹고 함께 있느냐거룩하고 훌륭하다는 너의 선생이 어찌 율법에 어긋난 죄인들과 함께 하며 더럽혀지고 있는가? 진정 너의 선생이 메시아며 구원자인가? 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에 혼란스러워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도 함께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능력과 존귀가 가득하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더 가까이 가시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의사도 전문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은 특별한 분야의 전문의를 찾아가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이것과 같이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의인이 되려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움이 필요한데 유일하게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이 세상에 바로 딱 한분이십니다. 바로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 이 예수님께 중풍병자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고 또 영혼의 의사되신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인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입술에서 죽겠다죽겠다라는 말보다 살겠네 살겠네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내 모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다 싫은 것이 다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내 생각모두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로부터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구원받아 저 천국이 약속되어있으니 행복하다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는 건강한 사람이 가질 수 없고, 오직 나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다라고 인정하는 병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한 죄인을 예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고 기회를 주시며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겸손하고 가난하며, 이 감당하기도 해결하기도 어려운 죄를 대신 감당하여 용서하여주실 분을 간절히 찾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13~14)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죄인으로 살아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교회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러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와서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인 우리는 예수님께 그만한 사랑을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하며 늘 주 예수님의 은총과 축복 아래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세상이 알수도 없고 줄수 없는 큰 사랑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믿음으로 나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되시고 우리의 든든한 백이 되어주실 것을 압니다. 우리가 늘 믿음으로 그 큰 사랑에 덧입혀져 주님과 함께 동행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