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로마서 15: 30~3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설교: 평강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평안하고 강하게 겁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러한 축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부자 한 사람이 누구든지 인생의 참 만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일만 불은 주겠다고 광고를 냈습니다. 지정한 날이 되자 수백 명의 남녀가 이 부자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타볼 욕심으로 서로 다투어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첫번째 사람은 훌륭한 직업을 가졌으므로 만족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두번째 사람은 "나는 훌륭한 부모와 처가 있으니 참 만족스럽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나는 아무 불평거리가 없습니다."했고, 네번째 사람은 학문의 사람인고로 "나는 많은 학문이 있으니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아무도 일만불의 상금을 타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당신의 말대로 당신들이 그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왜 내 돈 만불을 타려고 합니까?"하는 주인의 물음에 대꾸하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불만이 많고 그래서 마음이 평안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만족하여 마음이 편하려니, 몸 안아픈데 있으면 날마다 기분이 좋아서 마음이 편하려니 하면서 삽니다. 그렇지만 한 순간도 사람들은 진짜 평안, 진짜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평강의 하나님을 찾아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깨달아 아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30절 말씀입니다.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사실상 오늘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기도문입니다. 어찌보면 유언과도 같은 구절입니다. 주제는 기도해달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말입니까?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한 기도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 주님의 사역을 위해 서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과 로마교회의 성도들의 주님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로마교회 성도들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같은 피를 나눈 사람을 형제라고 하듯이, 같은 성령을 나눈 성도들 역시 한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서로 기도해줄 때에 그들은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넷째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나와 힘을 같이 해서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기도해서 혼자서 잘나서 혼자서 능력있어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단과 끊임없이 싸우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래서 간절한 중보기도 없이는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자도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병원에서 쓸 돈을 가지고 중국인 조력자와 함께 걸어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질 즈음에도 이들은 아직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이 조그만 야산에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군요"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조력자가 말하길 " 이 야산에는 산적들이 자주 나온다는데 이 돈을 어떻게 하실려구요?" "이 돈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이 돈을 지켜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함께 기도를 드린 후에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들은 자신의 몸과 하나님의 돈이 모두 안전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어떤 산적 두목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의료선교활동을 하던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물었습니다. "혹시 얼마 전에 이러저러한 도시로 가서 돈을 가져온 적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님께서 놀라면서 "네 맞아요.. 어떻게 아십니까?" 그 산적이 말하길, "선교사님은 그 때 호위병들과 함께 조그마한 야산에서 야영을 한 것을 우리 모두가 보았어요." "아니 그 때 나와 함께 있었던 중국사람 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적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누구를 속이려고 하세요? 그 때 우리 동료들이 돈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27명이나 되는 호위병들 때문에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했는데~"
얼마 후에 선교사는 이런 기적같은 이야기를 영국에 돌아와서 자신을 지원해주는 교회에서 간증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때, 이 간증을 듣던 교인 중 하나가 그 야산에 있었던 날짜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일기장을 들추어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때 우리가 기도집회를 가졌었는데, 그 기도회 참석했던 사람은~~~메리, 마리아,,,,,총 27명이었어요!!"
이렇게 중보기도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기도의 힘을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에게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31~32절입니다.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그 기도부탁은 구체적을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로 바울은 유대에 있는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구해달라는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유대에 사는 불신자들 중에는 바울의 반대자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죽이기 위해서 온갖 모략을 꾸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은 매우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예루살렘에 가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유대인들의 손에서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후에 이러한 바울의 기도는 응답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로 인해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려는 결사대들과 통치자들이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둘째로 그는 예루살렘을 섬기는 일에 대한 부분을 기도 부탁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이방인이 보낸 헌금을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헌금을 받는 일은 율법과 전통을 무시하는 듯이 보이는 바울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헌금을 받으면 보수적인 유대인들에게 큰 반발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바울의 헌금을 받지 않으면,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크게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사랑으로 보낸 헌금을 거부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되는 일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자신이 가지고 가는 이방인 교회의 헌금을 기쁘게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후에 이러한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는 바울을 따뜻하게 영접했으며, 이 일은 그들이 바울이 가져간 헌금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가서 함께 편히 지내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기 원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곳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는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후에 그는 이러한 기도처럼 자기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자유로운 몸으로 로마를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방문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에는 특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한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도 선교사로 가기를 원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언어 훈련도 마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네 가정에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아들 셋, 딸 하나를 둔 언니가 그만 병들어 세상을 떠나더니, 곧 그 남편마저 죽었습니다. 졸지에 아이 넷을 떠맡게 된 그녀는 도저히 아이들을 남기고 선교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선교본부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인도 선교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지 못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선교사의 꿈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믿음으로 정성껏 키웠습니다.
25년 후, 4명의 아이들 중 세 명이 인도 선교사를 자원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선교본부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25년 만에 세 배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제 저희 세 자녀를 인도로 파송해주세요.”
하나님의 뜻은 내 뜻과 다를 수 있고, 하나님의 시간은 내 시간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뜻과 다르고 또 그 뜻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손해 보시는 분도 아니고 최고, 최상의 것을 얻으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로마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바랐습니다. 33절입니다.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예순 세 살 난 어느 부인이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찾아가서 마지막 예배를 드렸는데 그 부인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목사님의 손을 잡고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무 살 나서 현금 출납계산원으로 일할 때 10불을 훔친 일이 있는데 목사님께서 그 상점에 가셔서 그 돈을 갚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10불을 내 놓았습니다. 죽기 전에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겠으니 꼭 갚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상점에 가셔서 10불을 갚아 주고는 그 부인에게 “이제는 마음에 평안을 가지시오” 하고 말하자 세상을 떠났다는 실화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믿고 살면서 마음이 무겁다면 바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서서 이리저리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사도 바울의 말,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지어다”라는 말이 바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사는 우리에게도 하는 말임을 잊지 마시고 온전히 주 안에서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옵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인도하시고 또 축복하옵소서~ 우리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 우리를 떠나지 마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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