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도행전 8:18~20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설교: 욕심과 신앙
오늘 말씀은 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땅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사마리아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지고, 사마리아가 복음화되는 것은 세계 선교로 나아가는 교두보, 시작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마리아는 북쪽 갈릴리와 남쪽 예루살렘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종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섞인 혼혈인종입니다. 종교적으로는 BC 5세기경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성전 건축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을 배제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세겜에 있는 그리심산에 독자적으로 성전을 짓고 그들만의 혼합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수세기 동안 개와 원숭이처럼 서로 으르렁 거리는 관계로 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파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서로 간에 적대시해온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빌립의 사역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분명히,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자신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1:8). 그러나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예루살렘 경계를 뛰어 넘어 이방세계로 나아가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엄두도 못내었던 사마라아 지역뿐 아니라 모든 지역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져서 17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물세례밖에 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세례를 받도록 파송되어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었을 때에, 참으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8~20절의 말씀입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동기가 나쁘면, 결과가 나쁩니다.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행동이 나쁘게 되어있습니다. 시몬은 빌립에게 그리도 혼났으면서도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와서 성령세례를 주자, 그것을 보고, 그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장에서 아무리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주 알거늘,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안주시겠느냐며,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을 구하기만 한다고 해서 온전히 받을 수 없음을 오늘 시몬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하나님께 향하여 있는 자만이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제가 부흥회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작은 교회에서 한 분이 헌금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니까 금방 그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장로가 되고 교회의 재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장로가 교회 건축헌금 전부를 자기 사업에 투자해서 날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시몬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일으키고 자기를 드높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사람에게 “돈이면 모든 것을 하고 돈이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고 교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시몬에게는 자기의 권력과 돈과 인기가 전부인데 돈과 함께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 알았느냐?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 하나님 외에 무엇이라도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 권력과 인기와 지식과 돈과 함께 망한다!”
물론, 23절 이후로 시몬이 바로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시몬의 마음은 완전히 변화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시몬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 성경에는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레니우스라는 초대교회 목사님이 쓰신 글에는 시몬이 베드로에게 혼이 난 후 사마리아에서 두로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사마리아는 남쪽, 예루살렘 인근 지역이고 두로는 북서쪽 해변 지역입니다. 지금은 티레(Tyre)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번 레바논 전쟁에서도 피해를 봤던 지역이지요. 두로로 이사한 시몬은 헬레나라는 창녀를 돈을 주고 사서 데리고 다니면서 “이 여자가 내 생각의 첫 번째 개념이요, 만물의 어머니다. 천사들과 천사장들이 다 이 헬레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잘못되었으니 그 속에서 잘못된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모든 세계의 만물이 되어지는 것들은 천사들이 만든 규율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천사들이 주관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교황의 비서요,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제롬이라는 사람의 글에서도 시몬이 나오는데, 이 시몬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내가 보혜사다. 내가 전능자다. 나는 완전한 하나님이다.”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짬봉처럼 섞어서 제 3의 비슷한 종교를 만들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뿐 더러 이 시몬을 신으로 섬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시몬과 같은 사마리아 사람인데, 로마 클로디우스 황제 때 시몬이 로마에서 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신으로 섬김을 받았다고, 심지어 티베료 강가의 동상에는 “거룩한 신, 시몬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또 클레멘타인의 책에는 베드로와 시몬이 계속 대적했다고 합니다. 마술을 행하는 시몬을 베드로가 비판하고 두 사람은 신학적 논쟁도 했다고 합니다. 시몬은 “두 가지의 신이 있는데 구약의 신은 불완전한 신이다.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고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내가 메시야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마지막으로 뭔가를 제대로 보여 주려고 “내가 이제 부상(浮上)해서 하나님을 향해 갈 것이다. 보라!” 하고 자기를 공중에 붕 뜨게 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자기 몸을 공중에 띄우는 마술사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공중에 떴는데 둥근 테로 앞뒤좌우를 둘러도 걸리는 것 없이 공중에 떠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를 뿐 신기한 환상이지요. 시몬도 날아서 하나님께로 간다고 자기를 공중에 띄웠는데, 베드로가 밑에서 “주여, 떨어뜨리시옵소서!” 기도했더니 시몬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저 사람, 나쁜 거짓말쟁이군!”하며 모질게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합니다. 시몬은 숨을 거두기 전에 “내가 죽으면 무덤에 묻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아직 안 살아났다고 하네요. 시몬은 이렇게 인생을 끝낸 겁니다. 이런 시몬 때문에 ‘simony’라는 영어단어가 생겼습니다.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몬의 이야기는 마음의 동기와 생각이 잘못 되어 불쌍한 인생을 마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따른 사람들이 많았지만 초대 교부인 오리겐은 그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반성하고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저도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알기에 이것을 내 사적으로 이용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공을 위해 주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시몬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봐주시고, 우리를 알아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사단은 시몬과 같은 마음을 우리가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신앙의 길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전에 이런 시몬과 같은 이야기를 전래동화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혹부리 영감이야기입니다. 한 마을에 혹부리 영감님이 살고 계셨는데, 노래를 아주 잘하셨답니다. 이 영감님이 하루는 숲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다가 도깨비들에게 발견이 되었습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도깨비들이 노래를 불러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노래를 잘 부르던 이 영감님은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깨비들이 말합니다. “어찌 그리 노래를 잘 부르느냐? 그 비결이 무엇이냐?” 목소리라로 하면 목을 따갈것 같아서, 벌벌 떨다가 갑자기 자기 혹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이 혹 때문입니다 이 혹이 바로 노래주머니입니다.” 그러자 도깨비들은 그 혹을 팔라면서 도깨비 방망이로 혹을 딱 쳤습니다. 그러자 혹이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영감님은 평생 고통이고 짐이었던 혹도 띠고, 전에 보지도 못했던 금은보화를 도깨비들한테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부자 혹부리 영감님이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디인지, 어떻게 만났는지, 혹부리 영감이었던 할아버지를 불러다 족치고는 그 날 저녁 같은 곳으로 가서 똑같이 노래를 불렀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화가 난 도깨비들은 혹이 무슨 노래주머니냐며, 나타나서는 부자 혹부리 영감에게 금은보화선물은 커녕 가지고 있던 혹을 다른 목에 턱 하니 붙여놓고는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졸지에 혹을 두 개얻고 아무것도 받지 못한 부자 영감은 엉엉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옛말에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내게 무슨 이익이 있고, 손해가 없는지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왜 성령충만하기를 원하는지 말입니다.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지 말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님이 꼭 필요한지 말입니다.
세상 살기 편하기 위해서? 마음 편하기 위해서? 아니면 진정 하나님의 것으로 살기 위해서?
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진심으로 찾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단 한 순간도 재지않고 판단하지 않고 나아오는 자들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주의 사랑을 듬뿍 받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가 겸손치 못하고, 교만하여 늘 주님 앞에서 죄를 짓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충만함을 받기를 원하지만, 연약하게 주님의 능력 안에서 살지 못함 때문에 구한 것이 아니라 내 성공 내 야망을 위해 구하였다면, 이 순간 회개하오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마술사 시몬과 같은 죄의 길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시고, 늘 주 안에서 평안히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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