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온누리선교교회 Onnuri Mission Church Миссионерская церковь Оннур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전서 강해 37) 사람이 자기를 살핀 후에 (수요예배 20181003)

by 온누리선교 2018. 10. 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1:27~34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설교: 사람이 자기를 살핀 후에

 

마음이 착한 늙은 부부의 집에 젊은 식모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식모는 행실이 좋지 못해 이웃에 사는 젊은이와 눈이 맞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녀의 몸에 아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안 노부부는 식모를 나무라지도 않고, 다행히 어린애가 없어 애태우던 터라 친절히 식모를 위로하면서, ‘조금도 걱정말아. 어린애를 나면 우리가 양자로 삼을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달이 차서 식모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노부부는 출산 비용을 전부 부담했고, 출생한 아이를 양자로 삼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자 식모는 또 다시 몸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때도 친절한 노부부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어린애가 하나뿐이면 쓸쓸해 할 꺼야. 동생이 있는 편이 좋아.” 하고서, 두 번째 아이도 양자를 삼았습니다.

식모에겐 같은 일이 세 번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마음 좋은 노부부는 이때도 그다지 화내지 않고 출생한 아이를 또 다시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큰 은혜를 받은 젊은 식모는 산후의 몸이 회복되자마자, 노부부의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노부부가,

대관절 어떤 불만이 있어서 나간다는 거지?”

하고 물으니까, 그 식모는 태연히,

이렇게 아이 많은 집에서 식모살이 할 수는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 자신이 실수로 저질러 놓은 아이 셋을 거두어준 노부부에게 태연히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나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용서해주고 받아들여주니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식모가 얼마나 뻔뻔합니까?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가 이러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겼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잘못하셨나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서 제자삼아 회계를 맡기고 몹시 사랑하사 최후의 만찬 때 아주 좋은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오른 쪽에는 요한을, 왼쪽에 그를 앉게 하고 유대관습에 특별히 귀한 손님에게 하는 떡을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그 축복의 성찬에서 아주 좋은 대접을 예수님께 받았는데, 왜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또 잘 살았으면 몰랐으나 스스로 죽는 그런 비참한 결과를 가룟유다는 살았을까요? 바로 주님 앞에서 자기를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기를 살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꼭 지켜야 하는 일인지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27~29절입니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라. 이를 행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뜻은 떡을 들고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을 읽었습니다. 신장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48세였고,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받은 아들은 빠른 속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왔고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수술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수술 후 3년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부터 하관식을 하는날까지 아들은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은 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아들의 통곡소리 속에는 "엄마, 나 때문에, 나 때문에"라는 절규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 떠난 지 20년이 되어 가지만 주말마다 어머니 묘소를 찾아가 꽃을 꽂아드리고,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엄마, 감사해요. 저 때문에 생명을 버리신 엄마의 그 숭고한 사랑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잊지 않고 살게요. 엄마 천국에서 만나요~" 라고 엄마를 기억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찬식을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나 때문에 죽으셨고, 나는 주님 때문에 생명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그 성찬의 의미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찬식이 더이상 의미가 없고, 기대되지도 않고, 그저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이 먼저 자기를 살핀 후에야 ”(28)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살핀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도키마죠라는 말인데 이 말은 시험하다. 평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회개하지 않고 성찬을 먹는 것이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앨포드는 "주의 죽으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믿음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죄악에 있던 인생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새 생명을 얻고 희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는데, 거기에 더러운 악을 묻히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시 주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성찬을 진지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0~34절 이어서 보겠습니다.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이상하게도 고린도교회에 병든 사람들과 죽는 사람들이 그 당시 많이 있었습니다. “약한 자, 병든 자는 정신적으로 허하거나 영적으로 힘들고, 또 몸에 이상이 있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뜻하고 잠자는 자는 바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상류층이 성만찬의 이유로 집에서 음식과 포도주를 가져와서 취하도록 먹고 마셨을 뿐 아니라, 거기서 가난한 사람들은 끼지 못해서 와중에 굶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만찬의 의미가 사랑하는 주님의 찢어진 몸을 먹고 마시며 기념하는 것인데 오히려 죄를 먹고 마시며 가난한 자를 따돌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죄는 바로 하나님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타락하자 병든 자와 약한 자가 많아졌고 일찍 죽는 자도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하나님의 벌 없이 그냥 넘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의 죄를 깨달아도 무뎌지고 무뎌지면 계속 죄를 짓게 되고 그 때는 진짜 기회도 없이 끝나는 것입니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진짜 영원한 사망입니다.

 

런던에 살고 있는 네 살짜리 한 어린 소녀가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손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울지도 않고 엄마에게 손목을 보이면서 "보세요 엄마, 내 손목이 참 이상하게 구부러졌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전혀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 않고 말입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소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놀라서 가보니, 병원에서는 넓적 다리에 금이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그 소녀는 아픈지도 몰랐습니다.

어느덧 소녀는 열 네 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놀다가 손목이 부러지거나 다리에 금이 갈 만큼 부주의한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따금 손등에 물집이 생기거나 화상 자국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상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소녀는 완전히 고통을 못느끼게 된 것입니다! 내과 전문의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의 병을 고쳐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병은 오늘날 겡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고 부르는 치명적인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치명적이고 위험한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무각감증'이라는 병입니다.

다행히 사도 바울의 이러한 경고와 권면의 말을 듣고 고린도교회가 회개를 했고, 이후 변화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기뻐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찬의 떡은 주님의 살을 기념하는 주님의 떡입니다. 동시에 잔은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주님의 잔입니다.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셔 영이 약해지고 몸이 병들어 다시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진지하고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귀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주님의 것으로 살면서 헛되이 주님의 떡과 주님의 잔을 마셨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연약하여 잠시 사단의 꾀임에 넘어갔던 것이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님만 바라보고 살고 싶사오니, 주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시고, 주님의 뜻을 날마다 이루고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