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4: 1~12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설교: 교회에 덕 세우기 위하여
한 기독교인이 회사의 일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어서 숙소 주변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는 택시기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이 지역에서 제일 좋은 교회로 저를 데려다 주십시오.” 출발을 하여 가는 도중 창문을 통해 주변을 보니 큰 교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그를 내려주지 않고 꽤 멀리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가 별로 크지 않은 교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는 이상해서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오는 길에 큰 교회들도 많이 보이던데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하필이면 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세워주십니까?”
그러자 택시기사는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비록 교회는 안 다니지만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어느 교회가 행복한 교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교인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보면 얼굴이 화사하고 햇님같이 밝답니다. 그러니 분명히 뭔가 있는 교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방언이나 예언이나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고 또 나 자신을 위해 쓰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쓰라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하루하루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말씀을 받고 순종하시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5절입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성령님을 통하여 은사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 은사를 우리가 구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하고 구해야합니다.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지옥갈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을 근거로 해서 구해야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없이는 아무리 은사를 가지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에 구제하는 은사가 있어 부자가 되게 하셨는데, 돈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서 쓴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사랑의 목적에 맞게 써야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은사입니다. 방언의 은사가 중요하지만, 방언이 개인의 덕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면 예언의 은사보다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의 목적은 개인보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개인보다 교회의 덕을 사모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덕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내 자신이 아닌 남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내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영광을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덕을 세우는 것이 왜 필요할까요?
6~12절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한 미국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는 교회의 성장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갱신과 부흥을 염원하며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은 물론 부속성전과 교회 앞 광장까지 가득 메운 2만 2천여 명의 목회자들에게 새들백교회의 사역과 자신의 목회 비결을 소상히 소개했습니다.
워렌 목사는 “교회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강조하면서 “미국 교회도 입만 살아있지 손과 발이 없다”며 “교회가 손과 발을 회복해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해야 하며, 사랑의 실천 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워렌 목사는 “교회가 목적을 회복하면 자연히 성장하게 마련”이라며 예배와 전도, 교제와 훈련, 사랑의 봉사라는 다섯 가지 목적이 교회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느 조직도 할 수 없는 일을 교회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세우신 교회의 목적을 온전히 깨달아야 교회가 온전히 설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은사는 그러기에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피리나 거문고를 비유로 들어 설명합니다. 이 악기들이 올바른 음을 내지 않으면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 소음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의 은사를 받아 방언을 해도 그 방언이 교회생활에서 불필요하면 방언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더욱 거룩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고 예수님 따라 사는 그런 인생을 살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용서 받은 것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온전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방언을 최고의 은사라고 생각하는 고린도 교회에게 방언을 함부로 하지 말고 절제하고 예배의 질서를 세우라고 말합니다.
예전에 일부 순복음 교회에서 방언을 구원의 표시로 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를 어떻게 아냐 하면 방언을 하는지 안하는지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언은 하늘의 언어이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앙적으로 실족하고 미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오해들이 없어졌지만 만약에 이런 일들을 진짜로 믿었다면 성경의 말씀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는 큰 죄를 저질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모든 은사는 바로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고 성장 발전하는데 쓰여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고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목적지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신의 목적지를 확실히 알 때까지 광야에서 고생을 시키며 신앙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 대한 물음에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이라는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이 곧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식구, 한 형제자매가 된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요즘 말하길,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살아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을 힘을 합하여 이룩하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목적을 채우고 만족하려하면 그때부터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죽어가는 교회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은사를 주시고 그 은사를 통해 우리가 주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 우리의 영도 살고 우리의 육신도 사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오니 은사를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 은사를 헛되이 쓰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핏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데 사용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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