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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46)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수요예배 20181202)

by 온누리선교 2018. 12. 4.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4: 34~40

 

3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설교: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예전에 중국동포 하나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흑룡강 지역 시골에서 집단농장에 있다가 하도 일도 없고 꿈도 없어서 친척들 도움으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오니 정말로 새 세상이 열린듯했습니다. 한 달 나가 건물 짓는 건축노동하는데 가서 일을 하는데 한 달에 거의 그 당시 200만원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중국과 한국 사이의 돈 가치가 10배정도 되었으니,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첫 월급을 거의 다 브로커나 친척들한테 빌린 돈으로 갚아버렸습니다. 그 다음 달에는 잔업이 많아서 230만원을 벌고, 일이 자꾸 있어서 더 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버니 이 사람이 눈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년내내 밭을 갈아도 일을 해도 벌수 없는 돈을 단 한 달만에 벌어버리니 완전히 꿈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도 얻고 쉴 곳도 먹을 곳도 있게 자리를 잡으니 한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뭐 신기한 물건들도 많습니다. 냉장고도 전화기도 다 중국 것과 달랐습니다. 먹을 거는 얼마나 신기하고 맛난 것들이 많은지.. 햄버거도 피자도 맘껏 돈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맨날 주머니에 빈손만 넣어 다니다가 주머니 가득 달러며, 한국 돈이며 넣고 다니니 천국에 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러한 기분 속에서도 정신을 빠짝 차리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 한순간 정신이 !’하고 돈 것입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돈도 막 빌려주고, ~~주 호탕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중국에 돈도 마구 보내주고 쓸 돈도 마구 넘치니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돈을 쓰고 마구 흥청망청 살면서도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난 내일도 돈을 벌수 있고.. 또 돈이 생길 거고...”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항상 이렇게 살 수 있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집에서 깼는데 일어나지 못하겠는 겁니다. 일터에서는 계속 전화가 오고.. 결국 옆 집 사람 도움으로 병원에 갔는데, 진단을 받아보니, ‘간경화였습니다. 돈버는 재미에 신나는 것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을 함부로 써서 간이 피로에 못 이겨 간이 굳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는 중요하고 누구는 중요하지 않고~하면서 차별하는데 예수 안에서는 다 같고 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성령님께서도 오셔서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전에는 전혀 알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 중국동포가 한국에 와서 돈도 엄청나게 벌고 신기한 것을 알게 되고 좋은 것을 누리듯이 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정신없이 성령의 은사들을 누렸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남들 앞에서 내가 더 믿음이 좋다던지, 내가 받은 은사가 더 좋다고하면서 남들을 상처주기까지 했습니다. 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눈살 찌뿌리게 하는 이상한 행동들도 마구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하면서 도리어 하나님 이름을 이용하거나 깎아먹는 행동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아주 질서가 없어 보였습니다.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정신나가 맘대로 하는 곳으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맞다고 주장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세상에서 인정 받지 못했던 여자 성도들이 아주 심했습니다. 예배 드리다가도 갑자기 일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며 함부로 말하여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주님께서 자신의 핏 값으로 세우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는 지켜야 할 질서가 있습니다. 교회의 질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스려집니다. 모든 교회에는 예배의 전통이 있고 말씀의 지시가 있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라는 말씀은 교회에서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남자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바리새파로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창세기 316절에 보면, “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은 너를 책임져 준다는 말입니다. 사실 여자는 아이를 가지고 낳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책임져 주어야 합니다. 책임져 주는 사람이 자기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아니라며 무시한다면 여자에게도 큰 위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남자가 책임지는 일을 잘할 때, 이끄는 데로 여자는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남성들이 책임을 못한다면요? 그 때는 하나님의 질서가 먼저입니다.

20c 초반에 미국 청교도여성들이 금주운동(The Temperance Movement)를 벌여서 미국 사회 내에서 술을 팔지 못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넘어온 카톨릭 남자들이 술만 먹으면 집의 부인과 아이들을 때리는 사건들이 많아서 영국에서 온 청교도 여성들이 이 카톨릭 여성들을 위해 술을 금하는 기독교운동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그 뜻에 맞추어 하는 여성들의 운동도 있었지만 사도 바울 당시의 고린도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남자들과 달리 항상 사회에 나가 무엇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사회생활 자체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공동체에 와서 남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도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사회생활, 함께 신앙 생활하는 것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35절에 무엇을 배우려거든 남편에게 물으라고 한 것입니다. 왜요? 실수할까봐, 교회에 문제를 일으킬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 여자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언과 방언을 함부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36~40절입니다.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제가 전도사 시절에 섬기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아주 유명한? 권사님께서 계셨습니다. 그 권사님께서는 너무나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예배도 항상 앞자리에 앉으셨고, 성경공부나 성경통독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딱 아쉬운게 있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기도응답에 대해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가끔 장로님에게 가셔서 대뜸 내가 하나님에게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장로님 ~ 회개하십시오. 회개하시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라든지, 심지어 목사님한테 말씀 드릴 것이 있다하면서 상담 들어가셔서 일장 연설과 가르침?을 하고 오셨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을 당하시는 분들이 하나씩 느니, 성도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다른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 하시거나 깨닫게 하실 텐데, 왜 저 권사님한테만 말씀을 주는 건지 모르겠네~”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진짜로 하나님께서 그 권사님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시고,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주셨을지라도 그 권사님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행사는 질서만큼은 지키지 않고 계셨던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도 마찬가지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성도들은 주님께서 주신 성령의 많은 은사를 예배 중에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은사들을 풍성히 받았는지, 왜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를 위해서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해야하는데, 그 일을 위해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느낄 수 있게, 또 영적으로 만족할 수 있게 하려고 그 은사들을 주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방언을 예를 들어 볼까요? 방언을 하면 스스로가 참으로 신기합니다. 내가 전혀 힘쓰지 않았는데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데도 놀라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충청도 시골에 농할처럼 농촌 사역을 위해 과친구들과 함께 어느 교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되어서 같은 과 친구들이 기도를 하러 들어가려는데 어디서 영어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아주 시골인데, 외국인 하나 없는 시골에서 영어가 들리고 그것도 영어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는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알고 봤더니 초등학교도 못나오고 한글도 제대로 못쓰시는 80세 권사님께서 방언을 받으셔서 영어로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도 처음 부임하셔서 그 모습을 보시고 너무나 놀라셨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너무나 신기합니다.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 은사를 받은 고린도교인들은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 어디서든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음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언하기를 원해도 되고 방언도 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해야지 자기를 위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서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주님의 일을 위해 쓰는 귀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저의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예배 가운데,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성령 충만하게 하시고 질서 속에서 은혜를 맛보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안에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