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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이루기 위하여_성전입성과 고난 (요 3:16~17 주일예배 20190414)

by 온누리선교 2019. 4. 13.

성경본문: 요한복음 3:16~17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_성전입성과 고난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또 고난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한주간이 교회력으로 보면 가장 화려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예루살렘성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열광했고 환호했고 요란하게 맞이했냐면 모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옷을 벗어 땅에 깔고 그 위로 지나가시도록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종려나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무성하고 크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일명 야자 대추나무라고 하는데 그 나무에서 야자 대추가 열립니다. 왜 종려나무가지인가? 그것은 바로 종려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로서 왕권을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성전에, 벽돌에, 문에, 손잡이 등에 이 종려나무 가지를 새겨 넣었고 동전에도 이 나무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종려나무는 왕권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2천 년 전 오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했던 것입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예수를 왕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은 우리의 메시야입니다, 당신만이 오늘 우리를 로마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왕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성 안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메시야,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인기나 기대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기도 하고 나쁜 마음을 품고 망하는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환호성이 짜릿하고 또 자기를 바라보는 존경과 사랑의 눈빛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만하지도 딴마음을 품지도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장사꾼들이 들끓는 것에 분노하시며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내쫓으셨습니다. (2:13-22) 또 예루살렘 성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할 끔찍한 고난이 다가옴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26:36-46) 피하고 싶지만, 그리고 안 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라고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가롯 유다가 은 30에 배신한 것을 아셨지만 그대로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가십니다. 그 이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아무 죄를 예수님에게 찾지 못하였지만,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봐 가장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형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골고다에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스승을 잃는 아픔이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아들이 고난 받으며 죽어갈 때 어디선가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아픔을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다구라라는 신학자는 이런 십자가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 신학을 그는 아픔의 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골고다는 아픔의 현장입니다. 억울함과 고통의 현장이고 힘든 고뇌의 현장입니다. 하늘과 땅과 예수와 하나님이 함께 아픔에 떨었던 현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없었다면, 그 예수님의 고통이 없었고, 또 예수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다시 사심도 없었습니다. 그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구원도, 천국도, 부활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고난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고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함께 읽겠습니다. 16절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통해 간혹 잊어버리게 되는 예수님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010절은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알려줍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죄에 빠져서 하나님과 상관 없는 존재, 하나님과 완전히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하나하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3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단언합니다. 로마서 623절은 죄의 결과를 알려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으로부터 사람은 죄를 온 세상에 가져왔고, 이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래부터 가져오셨던 그 관계를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좋은 관계,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죄를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5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3-4절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알고 믿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은 친히 요한복음 146절에서 자신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구원을 선물로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에서는 이렇게 보여줍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사도행전 1631절은 이를 매우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2:8-9).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확실히 알고 믿고 또 전해야 합니다.

 

존 맥닐 박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목회자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곧 급행열치가 지나갈 기찻길에 술에 깊이 취해 잠들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목회자 모임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한 사람이 선뜻 대답했습니다.

"그를 기찻길에서 끌어내야할 겁니다. 곱게 다룰 수 없겠죠. 아마 불러서 걸어 나오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칠게 움켜쥐고 질질 끌어내다가 마침내 지쳐서 그 옆에 앉아 있게 되더라도 온 힘을 다해 끌어낼 겁니다."

그 때 맥닐 박사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상태가 바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상태입니다. 기차 선로에 쓰러져 잠에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 열차는 이제 곧 당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 옵니다. 악한 세상에 하나님께서 하실 것은 심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이라는 기차가 마구 급하게 달려오는 그 기찻길에 사단의 죄에 흠뻑 취해 누워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17절입니다.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 한 사냥꾼이 독수리를 잡기 위해서 나무에 앉아있는 독수리를 응시하며 화살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수리는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뱀을 잡기 위해서 눈독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이 뱀을 보니까 그 뱀은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또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뱀은 개구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를 보니까 죽을 줄도 모르고 또 뭔가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당벌레는 또 죽을 줄도 모르고 눈만 껌뻑껌뻑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사냥꾼이 슬그머니 화살을 내려놓고 자신의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나도 누군가 뒤에서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까 누군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죽음이었습니다.

지금 그것도 모르고 뭔가를 더 먹어보겠다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깨우쳐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죽음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살려내서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천국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우울하고 침울하게 고난주간을 지내기 보다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 갈보리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실 것도, 사랑하고 믿었던 자들의 배반도 아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언덕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르셨음을 기억하시면서 이 고난주간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느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또 주님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온전히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에게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전하게 하옵시고, 주님의 구원을 함께 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